척수손상 회원님과의 상담 이야기
"저희 아이 걸어야 해요..."
내 숨까지 막히게 한 이 한 마디는, 얼마 전 3년 전 교통사고로 경수 5-6번에 손상을 입게 된 20대 초반 남성 회원님과 어머님이 함께 상담을 하러 오셨을 때 나온 말이었다.
그동안의 내 회원님들 중에는 뇌성마비의 분포가 더 많았었는데 부쩍 연초가 되고 나서 척수손상 회원 유입이 늘고 있다. 어느 정도 나이대가 있으신 분들은 혼자서 오시지만,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회원님들의 경우에는 활동 보조 선생님들이나 부모님이 함께 상담을 오시곤 한다.
부모님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가슴이 아팠던 경험을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 공유하고자 한다. 이 글을 읽게 모든 분들에게 한 번쯤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는 글이 되길 바란다.
척수손상 회원님과 부모님이 상담을 오셨을 때, 운동 목적을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 것 같은가?
대부분 코어 강화, 상지 근력 강화, 목-어깨 통증완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하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운동 목적이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내용이 아니라 화자가 누구이냐는 것이다.
운동을 진행하는 것은 회원 본인이지만 보통 부모님들이 먼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상담 진행자가 부모님의 의견이 아닌 당사자에게 물었을 때 그제야 회원 본인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부모님들의 목적 간 괴리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얼마 전, 3년 전 교통사고로 경수 5-6번에 손상을 입게 된 20대 초반 남성 회원님과 어머님이 함께 상담을 하러 오셨다. 보통 경수 5-6번이라고 하면 어깨, 팔꿈치, 손목 기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C5 손상은 어깨와 이두근 제어가 가능해 식사 등 일부 일상생활이 가능하며, C6 손상은 손목 제어력(손목 펴기)이 생겨 휠체어 조작, 독립적인 식사 및 식사 보조기 사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이 회원님의 경우에도 손목 신전의 기능은 나오고, 만세를 할 경우 우측 상지에서는 문제가 없었으나 좌측 팔꿈치 밑 전완의 동반이 어려운 케이스였다. 그렇지만 흉추 3-5번 정도까지 몸통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정도의 기능이 나와 사실상 손상부위보다는 기능이 잘 나오는 쪽에 속한다고 보면 되는 정도였다.
간단한 통증 여부와 유입 경로 등 상담을 마쳐갈 때 즈음 이들에게 운동 목적을 물었을 때,
누가 어떤 목적을 이야기했을 것 같은가?
내 예상과 동일하게 부모님께서 먼저 이야기를 하셨고 먼저 나온 대답은 나의 숨까지 막히게 했다.
"저희 아이 걸어야 해요..."
이 이야기를 듣고 난 사고 당사자의 표정부터 살폈다.
"불완전손상이실까요?"
"아니요, 완전 손상이에요"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던가요..?"
"손상된 기능보다는 더 잘 나오는 편이라고는 하는데..."
"어머니 마음은 너무 이해하지만, 완전 손상의 경우 걸을 수 있게 되는 건 희박해요.. 이런 말씀드려서 너무 죄송해요"
부모의 기대, 당사자의 기대 그리고 현실을 더해 중화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나였다.
내가 자신이 없어서 이렇게 이야기했을까?
못해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야 하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이 전의 글들을 봐 온 사람들이라면, 난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트레이닝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와 같이 말을 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그에 대한 근거이자 사례로
내 회원 중에는 경수 손상임에도 불구하고 독립 보행까지 이끌어낸 회원이 있다.
그 회원이 그렇게 될 수 있기까지는 3가지의 전제조건이 필요했다고 보는데,
첫 번째, 경수 불완전 손상
두 번째, 센터 오픈 전부터 병원에서의 지속적인 물리치료
그리고 진취적이며 나와 재활 가치관이 잘 맞는 치료사 선생님과의 시너지.
마지막으로, 센터 오픈부터 지금까지 그 회원님과 그룹 수업 이후 개인 수업까지 내 손을 타게 된 기한 자그마치 3년이라는 시간이었다.
어머님의 마음을 공감하지만 이 내용들도 어쩔 수 없이 현재 회원님과의 상황을 함께 이야기드렸다.
그렇다면
"어머님 말고 회원님께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운동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했을 것 같은가?
회원님에게서 가장 먼저 나온 이야기는 어깨운동, 가슴운동처럼 상체 근력을 키우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회원과 어머님 니즈의 괴리가 이런 것이다.
다시 돌아가서,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고 내가 당사자의 표정부터 살핀 이유는 이와 같다.
나는 사고 이후 본인의 몸 상태에 대해서 다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람은 사실 부모님보다 본인이라고 생각한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당사자로서는 부모님께서 나에게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받을 상실감이나 스트레스는 없었을까, 누구보다 걷고 싶은 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마음도 이해하는 당사자일거란 생각이 든 나로서는 당사자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업 내용에는 3명의 니즈가 충분히 녹아들어 갈 수 있게끔 진행하겠지만
나는 회원님의 니즈를 가장 크게 보고 수업을 한다고 말씀드렸다. 핸드폰 번호도 상담문의를 주신 어머님이 아닌 회원님의 번호를 다시 물으며
"앞으로 수업 계획이나 수업 일정 조율은 누구랑 할까요?"를 물었을 때
회원님께서 조금은 머뭇거리며 "저.. 랑 하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괜스레 저 대답을 듣고 나는 속이 편해졌다. 그리고 약간은 밝아진 회원님의 얼굴을 보며 뿌듯했다.
나는 사람의 전반적인 그리고 순간적인 기분을 파악하는 데에 굉장히 기민하다.
정말 많은 서비스직을 경험했고, 특히 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 능력치가 높아지게 되었는데,
이 능력이 향상되면서 피곤해질 때도 많지만 이런 경우에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의 수업이 어떻게 될지 그리고 또 알고 보니 어머님의 바람처럼
걷게 될 수 있을지 사실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병원일지라도.
그렇지만 나는 최선을 다할 거고 계속해서 회원님의 얼굴에 비친 약간은 들뜨고 밝아진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노력하려고 한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