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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톨로지 Mar 06. 2017

'저염식',신화는 없다

언제부턴가 다이어트에서 저염식은 절대 부정할 수 없는 건강의 필수요소가 됐다. 몸짱 열풍이 불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저염식은 몸 만들기의 필요충분조건의 자리에서 건강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지침의 왕좌를 넘보고 있다. 과연 저염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효과적인가.

다이어트의 관점에서 보면 저염식은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중량급 보디빌더들의 경우 대회 시즌이 다가올 때와 아닐 때의 체격에 심한 차이가 나는데, 이는 근육을 유지하면서 지방을 걷어내는 운동과 식이요법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상당 부분 염분을 제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즉, 염분을 어느 정도 제한하기만 해도 몸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건강 차원에서도 저염식은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쌀로 대부분의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동아시아 문화권 중에서도 한국은 특히 국과 탕 문화가 발달했는데, 국물의 맛을 내기 위해 소금이나 간장 같은 나트륨 계열의 조미료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다. 집밥을 먹지 않고 매식을 주로 한다면 국밥 한 그릇에 나트륨 일일 권장량인 2000mg은 우습게 비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나트륨 섭취는 고혈압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위암의 발생 원인 중 하나가 나트륨의 과도한 섭취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먼저 건강 문제다. 고혈압은 나트륨과 상관관계가 있고, 동물실험을 통해 신장을 망가뜨려 염분 배설을 제한하면 혈압이 오르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건강한 사람이 염분을 조금 많이 먹는다고 해서 염분 배설능력을 잃어버려 고혈압이 되는 건 아니다. 나트륨을 많이 먹어서 고혈압이 생긴다면 한국인은 고혈압 환자가 넘쳐나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약 2배에 가까운 나트륨을 매일 섭취하고 있지만, 2013년 한국의 만 30세 이상 고혈압 유병률은 30.4%로 미국의 33.5%에 비해 낮다. 나트륨 섭취를 고혈압과 바로 연관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여기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설정한 나트륨 일일권장량 2000mg은 단기 임상연구를 바탕으로 설정된 값으로, 대규모의 통계적 조사를 통해 기준을 새로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몸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의 세포는 염분의 미세한 변동에도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염분이 많으면 물을 빼앗겨 찌그러지고, 염분이 적으면 물이 들어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를 막기 위해 우리 몸은 나트륨 섭취가 늘면 염분 농도를 맞추기 위해 물을 최대한 흡수한다. 일상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예가 바로 라면을 먹고 잔 다음날이다. 짠 음식을 잔뜩 먹고 자면 다음 날 얼굴이 붓는 건 우리 몸이 염분 섭취에 대응해 물을 최대한 끌어들였기 때문이지, 살이 찐 것이 아니다. 반나절 동안 소변 몇 번 보면 다 빠져나갈 수분에 불과하다.


염분 제한이 다이어트에 적용되는 건 이러한 농도 균형의 원리 덕분이다. 계체량을 앞둔 격투기 선수나 대회를 몇 주 앞둔 보디빌더들은 이렇게 해서라도 몸의 부피를 줄이고 무게를 걷어내야 하지만, 이렇게 해서 없어지는 무게는 지방이 아니라 물 무게다. 저염식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그 무게로 돌아가게 된다. PT를 받을 때 간혹 저염식을 강요하는 트레이너들이 있는데, 이는 운동과 저염식을 병행하면 체중계의 숫자를 드라마틱하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염식을 끝내면 수분 무게만큼의 체중을 회복하고, 그러면 다이어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 채 다시 같은 사람에게 PT를 받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저염식을 다이어트의 기본적인 규칙 정도로 생각해 왔지만,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이어트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되고 건강 차원에서도 큰 도움은 안 된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었던 관점에서는 그렇다. 저염식을 해야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위암의 예방과 식사량 감소다.


위암을 일으키는 원인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흡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와 같은 세균과 함께 과도한 나트륨 섭취가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은 일본인과 함께 세계에서 위암 유병률 1, 2위를 다투는 국가인데, 이러한 높은 유병률에는 생활습관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트륨이 많이 포함된 음식 중에 특히 깍두기와 같은 뿌리채소 절임과 국물만 어느 정도 줄여도 위암 예방 차원에서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저염식은 기본적으로 맛이 없다. 우리는 흔히 맛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맛은 우리가 음식을 선택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 중의 하나이다. 간이 돼 있지 않은 퍽퍽한 닭가슴살에는 맛이 없고, 맛이 없으니 적게 먹을 수밖에 없고, 적게 먹으니 자연히 칼로리 섭취가 줄어든다. 애초에 우리에게 맛이라는 감각이 발달한 것은 먹을 것이 항상 모자랐던 진화의 역사 속에서 최대한 먹을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먹을 것이 넘쳐나는 지금도 맛있는 걸 찾아 헤매다 보니 다이어트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다이어트의 핵심은 칼로리 제한이고, 맛없는 음식을 먹는 건 자연스럽게 칼로리를 제한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요컨대 다이어트에서 저염식은 잠깐 눈속임으로 체중계의 숫자를 낮출 목적이 아니라 장기적인 칼로리 감소의 초석을 만들기 위해 실시해야 한다.

우리는 한때 지방을 건강의 적으로 규정하고 몰아세우기 바빴지만, 지방에는 사실 별 죄가 없었다. 나트륨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나트륨은 우리 몸속의 무기염류 중 그 양이 가장 많다. 우리 뇌가 정보를 교환할 때, 심장을 뛸 때, 근육을 수축시킬 때, 배속에서 영양분을 끌어들일 때 나트륨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 저염식의 건강 효과에 함몰되다 보면 정작 우리 몸에 필요한 나트륨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심각한 불균형에 빠지게 된다. 지방이 쓰임새에 따라 약이 되고 독도 됐던 것처럼 나트륨도 적당히 섭취하는 게 좋다. 건강과 다이어트의 필수요소로 여겨지던 저염식의 신화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 중요한 건 얼마나 먹는가이지, 무엇을 먹는가가 아니다.


-피톨로지, 동아일보 건강칼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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