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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슬픔과 덕질러의 역할

2025년 2월 5일

by 양동생

누나는 슬프다는 말을 쉽게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걸 알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누나는 웬만한 감정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차분한 사람이다. 흔들리는 순간이 있어도, 결국엔 다시 중심을 잡고 가만히 균형을 유지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슬퍼.”라는 말은 쉽게 나올 수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젯밤 12시, 누나가 술을 마시다가 슬펐다고 했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술을 마시다가 문득 슬퍼진 걸까? 아니면 이미 슬픈 상태에서 술을 마신 걸까? 혹시 낮에 차장님이 뭐라고 한 게 영향을 미친 걸까? 아니면 전혀 다른 이유일까?


무슨 이유였든, 나는 새벽 2시에 깨어 있었다.


잠을 깬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전화를 해야 하나?’였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누나는 이미 잠들었을 수도 있었다. 괜히 전화했다가 더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참았다. 하지만 참는 동안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덕질러는 이런 순간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누나가 슬퍼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누나가 슬퍼할 때 나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게 더 맞는 말이었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일까? 단순한 위로나 공감이 도움이 될까? 누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나는 누나가 나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웬만한 일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감정을 쉽게 터뜨리지 않는 사람. 그런 누나가 슬픔을 입 밖으로 꺼냈다는 건, 어쩌면 예상보다 더 큰 일이었을 수도 있다.


나는 누나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 적어도, 기쁘게 만들고 싶다.


이것이 덕질러로서 나의 가장 근본적인 고민이다.


누나가 좋아하는 걸 주고, 누나가 힘들 땐 도와주고, 누나를 웃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누나가 항상 기뻐할 수는 없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언젠가는 슬픈 순간이 온다.


그러니 나는 고민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누나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묵묵히 기다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답이라면, 나는 지금처럼 초조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행복을 만들어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때로는 좋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 예쁜 선물을 주는 것,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삶에 작은 여유를 주는 것 아닐까.


누나가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라도 숨을 돌릴 수 있도록, 피곤한 하루 끝에 조금이라도 기분이 나아질 수 있도록. 나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오늘 가방을 샀다. 언제 줄지는 모르겠다. 누나가 받을 준비가 됐을 때, 그때 주면 된다. 하지만 단순히 물건을 주는 게 아니라, ‘이걸 받았을 때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을 담고 싶다.


관계도 그렇다.


준비가 되었을 때, 적절한 타이밍이 왔을 때, 자연스럽게 한 걸음 다가가면 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단순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이 왔을 때 누나를 웃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는 덕질러로서 다시 한번 다짐한다.


누나가 슬픈 순간을 맞이할 때, 나는 단순히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결국 덕질이란, 내가 아닌 상대를 생각하는 일이다.


누나가 더 자주 웃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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