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팬케이크의 철학

2025년 2월 4일

by 양동생

팬케이크를 처음 만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오늘처럼 팬케이크를 ‘제대로’ 만들었던 날.


팬케이크는 겉보기에는 단순하다. 밀가루, 우유, 계란, 설탕, 그리고 약간의 베이킹파우더. 재료를 섞고 팬에 부으면 끝이다. 하지만 이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큰 함정이다. 팬케이크는 대충 만들면, 정말 ‘대충’ 만들어진 맛이 난다. 반죽이 뻑뻑하면 퍽퍽해지고, 너무 묽으면 팬에서 넓게 퍼져버린다. 온도가 맞지 않으면 속이 익지 않고, 너무 오래 익히면 딱딱해진다.


그래서 팬케이크는 ‘감각’이 필요한 음식이다. 반죽을 저을 때의 점도, 팬에 기름을 두르는 타이밍, 첫 번째 면을 뒤집을 정확한 순간. 하나라도 틀리면 결과물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설프게 부풀어 오른 팬케이크는 애매한 인생을 닮았다.


나는 팬케이크를 몇 번이나 실패했다. 반죽이 망가지고, 너무 익히고, 덜 익히고, 뒤집다가 팬 바깥으로 떨어뜨리고. 하지만 실패는 이상하게도 좌절감을 주기보다는 흥미를 자극했다. ‘이번에는 더 나아질까?’ 이 생각이 나를 다시 주방으로 이끌었다.


팬케이크는 조급해지면 실패한다. 약불에서 서서히 익혀야 하고, 한쪽 면이 완벽히 자리 잡을 때까지 절대 뒤집어서는 안 된다. 성급하게 뒤집으면 중심이 무너진다. 관계도 그렇다. 조급하게 다가가면 쉽게 틀어지고, 충분한 시간이 지나야 적절한 형태를 갖춘다.


그리고 나는 이걸 떠올린다.


누나는 팬케이크를 좋아할까?


그렇다면 어떤 팬케이크를 좋아할까? 폭신하고 두꺼운 일본식 팬케이크일까, 아니면 바삭하게 구운 프렌치 스타일 크레페일까? 아니면, 팬케이크 따위는 전혀 관심 없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팬케이크를 만들면서 배운 것은, 결국 관계도 요리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때로는 기다려야 하고, 때로는 조심스럽게 뒤집어야 하며, 너무 집착하면 태워버린다.


팬케이크는 완벽하게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기껏해야 몇 분 안에 사라질 음식인데.

마찬가지로, 어떤 관계들은 완벽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중요할까? 때로는 서툰 채로 남아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내일도 팬케이크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누나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너무 오래 익히지 않도록, 적당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조급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이전 28화사라진 인사, 남겨진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