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3일
퇴근 인사를 하지 않은 지 이틀째.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누나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고, 나 혼자 꼴값 떨고 괜찮은 척하고 있으니까. 그런데도 이틀 만에 허전함을 느낀다. 그게 문제다.
관계에서 사라진 것은, 남겨진 것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쉽게 잊지 못하는 건 새롭게 주어진 것보다, 손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간 것들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사소한 ‘퇴근 인사’ 하나가 남긴 공백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인사 그 자체가 아니다. 그것이 상징하는 관계의 거리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관계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누구일까?’
아마도, 관계를 더 깊이 기대하는 사람일 것이다. 같은 관계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가볍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무겁게 받아들인다. 관계의 무게가 다르면, 실망하는 쪽도, 서운해하는 쪽도 늘 한 사람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 사람은, 더 많이 좋아하는 쪽이다.
누나와 나의 관계에서, 나는 분명 더 무거운 쪽이었다.
"말 놓는 건 안 돼."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왜 안 되는 걸까?
나는 어떤 이론을 적용해서 분석해 보려고도 했다. 사회적 범주화 이론, 손실 회피 이론, 심지어 행동경제학까지 가져와서 관계의 본질을 따져 보려 했다. 누나가 나를 왜 특정한 거리 바깥에 두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이틀 동안 퇴근 인사를 하지 않으며 깨달은 게 있다.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논리적으로 따지기 전에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관계는 머리로 조합하는 공식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는 감각이다.
누나는 나를 멀리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본능적으로 그 거리를 유지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했던 걸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거리와, 상대가 원하는 거리는 다를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나는 다시 퇴근 인사를 하게 될 것이다. 이틀 동안 안 해보니, 내가 더 불편했다. 하지만 예전처럼 쉽게 던지진 않을 것이다. 그 인사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위한 것이 되려면, 나는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한다.
"말을 놓는 건 안 돼."
그 말을 들었을 때처럼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거리감을 인정하면서도, 나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사실, 나는 여전히 누나가 나를 좀 더 알아봐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바란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관계는 얻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니까.
그러니 나는 오늘 이 결론을 내린다.
"조급해하지 말 것. 억지로 관계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 것. 그리고, 내 감정을 강요하지 말 것."
이제야 조금, 관계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이틀 만에 퇴근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이렇게 많은 걸 가르쳐 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관계의 무게는 다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 내일은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퇴근 인사를 할 것이다.
그게 누나에게 중요하지 않더라도,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