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일
나는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흐려진다는 건 뭘까. 사라진다는 뜻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투명한 존재가 된다는 뜻일까. 나는 흐려지고 싶지 않았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 존재하고 싶었고,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남아 있고 싶었다. 하지만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려면, 어쩔 수 없이 흐려지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그래서 오늘은 퇴근 인사를 하지 않았다.
아마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다시 돌아갈 것이다. 다시 말을 걸고, 다시 웃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멀어지기로 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누나는 내가 뭘 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퇴근 인사를 해도, 하지 않아도, 하루에 한 번 말을 걸어도, 일주일에 한 번 말을 걸어도. 누나는 언제나 같은 속도로 살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조금은 흐려져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데 왜 누나는 나를 흐려지게 만들까.
친구는 말했다. “ISTJ는 과도한 관심을 반기지 않는 성향이야.”
ISTJ. 신중하고, 논리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 감정보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고, 관계에 있어서도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려 한다. 상대가 나를 좋아하든 말든, 그 관심이 커지면 부담스러워진다. 거리를 두는 것은 곧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은 곧 안정감을 얻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누나는 처음부터 거리 두기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계속 다가가고 싶었고, 결국 가까워질 수 없다는 사실에 제법 시렸다.
관계에는 온도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따뜻하고, 어떤 사람들은 차갑다. 어떤 사람들은 가깝고, 어떤 사람들은 멀다. ISTJ 유형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성향을 가진다. 그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너무 많이 쏟아부으면, 오히려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다. 관심이 과하면 부담이 되고, 그 부담이 쌓이면 결국 거리가 더 멀어질 수도 있다.
나는 누나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하지만 누나는 그 거리를 조정하고 싶어 했다. 나는 관심을 표현하고 싶었고, 누나는 그 관심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감정적으로 움직였고, 누나는 논리적으로 반응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ISTJ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조용히, 서서히, 자연스럽게. 과한 관심을 줄이는 것. 그게 흐려진다는 의미일까. 아니면 단순히 거리를 조절하는 방법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흐려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흐려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 관계가 무너지지 않고, 내가 상처받지 않으니까.
그래서 오늘은 그냥 조용히, 퇴근 인사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