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8일
오늘은 누나와의 특별한 나들이를 약속한 날이었다. 내내 기다려왔던 순간이었다. 오늘만큼은 누나와 함께 멋진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그간 이어지던 날씨가 달라졌다. 원래 가기로 했던 서울 인왕산 숲 속쉼터는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누나에게 불편함을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그곳을 포기해야 했다. 나는 갑자기 어쩔 줄 몰라했다. 누나에게 좋은 시간을 선물하고 싶었고, 그것이 내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급하게 다른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누나는 이미 차에 올라타 있었고, 나는 내내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싶은 욕구에 휘둘리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친구의 추천으로 김포 라베니체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그곳은 내가 기대했던 풍경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본떠 만든 곳이라고 해서, 물이 흐르고 배도 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떠났지만, 겨울에는 물이 빠져버린 공간이었다. 나는 그 순간,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이곳은 차가운 바람과 텅 빈 풍경만이 가득했다. 물이 빠져버린 운하는 그저 죽은 듯이 비어 있었고, 그곳에서 배를 탈 수 있다는 기대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곳의 분위기는 너무 적막하고 쓸쓸했다. 나는 바로 그때, 앞으로 누나와 사실상 놀 일이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멋진 곳에서 누나와 좋은 시간을 보낼 거라는 계획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그저 텅 빈 장소에서, 그런 시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다는 사실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누나와 나는 그곳에서 샤부샤부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음식이라도 맛있기를 바랐지만, 그 맛은 나를 위로하기엔 부족했다. 식사 중, 이후 카페에서 누나와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지만, 그 대화조차 허전하게 느껴졌다. 내가 얼마나 실망했는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왜 이렇게 엉뚱한 선택을 했을까? 왜 누나에게 이런 별 볼 일 없는 풍경을 보여줘야 했을까? 그저 내가 준비한 것들만큼 중요한 시간들을 함께 보내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엔 공허함만 남은 것 같았다. 누나는 그 상황에서 나를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아, 나쁘지 않았어”라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그런 말들이 나를 위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말들이 오히려 더 큰 절망으로 다가왔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김포에 오기까지 차가 너무 막혀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두 시간 넘게 걸렸다는 점이었다. 길 위에서 시간을 다 보냈다는 사실은 내게 큰 부담을 주었다. 나는 하루를 어떻게든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그저 고단한 교통 체증과 허무한 풍경 속에서 하루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차가 막혀 이동하는 동안, 내가 누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 내가 준비한 것들이 모두 사라지고, 그 무엇도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 길 위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무리 좋은 계획을 세우고, 아무리 그날이 특별하길 바랐던 마음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허상일 뿐이었다. 우리가 간 곳은 그저 텅 빈 공간,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누나와 함께한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순간들이 너무 아쉬웠다.
수원으로 돌아가는 길은 금방이었다. 그러나 그 빠른 길도 내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 이미 그날의 기억은 내 마음속에서 깊이 새겨졌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실망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누나는 그날을 돌아보며 “오늘 좋았어, 드라이브도 즐거웠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은 내게 조금 위로가 되었지만, 그 위로는 내가 바라는 것과는 달랐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아무리 누나가 좋다고 말해줘도, 나는 그날 내가 누나에게 보여준 것에 대해, 그 실망감에 대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책을 멈출 수 없었다.
누나는 그날의 모든 일들을 훌훌 털어내고 긍정적인 말들로 나를 다독여주었지만, 나는 그런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음엔 더 좋은 시간 보낼 수 있을 거야”라는 누나의 말도, 내 마음속에서 쌓인 실망을 덮을 수는 없었다. 나는 그날, 누나에게 나의 기대와 계획이 모두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았다. 결국, 그날 우리가 얻은 것은 그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텅 빈 공간에서,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았던 하루 속에서, 나는 그저 누나와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내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며 “다음에는 더 좋은 시간 만들자”라고 말해주었다. 그런 누나에게 나는 고마운 마음을 갖고 싶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오늘의 허탈함이 계속해서 나를 붙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