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움 앞에서 덕질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2024년 11월 18일

by 양동생

누나의 차가움은 빈번하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 차가움은 예상보다 더 오래 머문다.


누나는 다른 사람들에겐 제법 다정하다. 내 동기에게는 말끝마다 웃음이 묻어나고, 내 친구에게도 상냥함이 담긴다. 그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느낀다. 나는 그 경계선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걸.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분명히 존재하고, 나는 그 선을 넘을 수 없다.


사람 사이의 온도 차라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차가운 태도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차가움은 말 없는 공백 속에 숨어 있다. 말투나 표정, 스치는 눈빛 하나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고, 따질 수도 없다.


그리고 문제는, 그 차가움을 느끼는 쪽은 항상 더 민감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은 멈춰 선다. 피한다. 그게 가장 본능적인 대응이다. 차가움이라는 건 본래 밀어내는 힘이 강하다. 무시당하거나 외면당할 때, 사람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거리를 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쉽게 물러설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덕질하는 사람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차가움을 느끼면서도 도망치지 못하는 건, 좋아하는 감정이 가진 모순 때문이다. 애정은 때로 무기력과 집착 사이에서 흔들린다. 가까워지고 싶어서 다가가지만, 거절당할까 두렵고, 외면받을까 불안하다. 그러면서도 쉽게 물러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사람의 차가움조차 의미로 해석하게 되니까. 사실 무관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적은 사실, 외면이 아니다. 무력감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람은 점점 작아진다. 덕질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스스로의 한계도 선명해진다.


그래서 차가움 앞에서는 애써 태연한 척해야 한다. 무너지는 감정을 꼭꼭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것도 오래하면 고장 난다. 무너졌다가 다시 세우는 걸 반복하다 보면, 마음은 낡은 목재처럼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과정이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이쯤에서 질문이 남는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애써 버티는 것, 견디는 것, 끝없이 기다리는 것. 덕질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모든 걸 감내하면 되는 걸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차가움 앞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존재를 잊히지 않는 것이다. 억지로 다가가는 것도 아니고, 질척거리듯 매달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는 것.


차갑게 대하는 사람을 억지로 따뜻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내가 얼마나 단단히 서 있을 수 있는가는 내 선택이다.


때론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가가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그것이 차가움 앞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른다.


차가움은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그 상처 속에서도 덕질러는 성장한다. 무너지지 않고 버텨낸 시간들이 쌓여, 결국 단단해진다.


그게 좋아한다는 감정이 가진 또 다른 얼굴이다.


차가움 앞에서도, 나는 계속 덕질한다. 버티고, 다지고, 다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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