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생각한다

2024년 11월 24일

by 양동생

태국이 떠오른다. 누나가 가 있으니까. 갈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문득문득 머릿속에 스친다. 툭, 하고 떨어진 단어 하나가 파문처럼 번지며 온갖 이미지를 불러온다.


뜨거운 공기에 젖어 흐릿해진 도시의 윤곽, 늘어진 오후의 시간, 거리마다 퍼지는 향신료 냄새.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음악 소리도 있다. 태국을 생각하면 항상 저녁 무렵이 떠오른다. 오렌지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바쁘지도 한가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길거리를 걷는다. 그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평온하고, 그 자체로 완성된 듯한 느낌.


태국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묘한 감정이 인다. 어떤 장소는 가본 적이 없어도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낯익다.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된 풍경이 있을까. 이상하리만치 익숙하고, 쓸쓸하면서도 따뜻하다.


혼자 카페에 앉아 창밖을 바라볼 때면 그런 풍경이 떠오른다. 창 너머로 스며드는 겨울 햇살이 마치 동남아의 한낮 햇살인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목적 없는 순간의 여유.


사람들은 여행을 떠날 때 목적지를 정하지만, 사실 정말 중요한 건 그곳에 도착하는 게 아니라, 길 위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장면들이다. 우연히 발견한 골목의 작은 카페, 이름도 모르는 거리의 간판, 따뜻한 공기 속을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 그런 것들이 여행을 완성시킨다.


어쩌면 인생도 비슷할지도 모른다. 꼭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길 위에서 마주치는 풍경들이 훨씬 더 선명하게 남는다.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들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삶을 채운다.


나는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가끔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어딘가에는 무더운 공기 속에서 게으른 오후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 시간은 나와 아무 상관 없이 흘러간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준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지금 그곳 어딘가에서 누나는 걷고 있을지도 모른다. 바쁘지도, 느긋하지도 않은 걸음으로, 그냥 그저 그런 하루의 풍경 속에서.


그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다.


누나는 거기서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있겠지. 그 모든 경험이 누나를 조금 더 깊게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


태국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누나가 편안하기를 바란다. 모든 소풍은 결국 끝이 나고, 사람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누나가 돌아올 그날이 오면, 아마 조용히 물어볼 것 같다.


“거기는 어땠어?”


그리고 아마도, 누나는 잠깐 생각에 잠긴 후 이렇게 말할테다.


“그냥, 괜찮았어.”


그 대답이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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