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 가르치는 사람

2024년 11월 25일

by 양동생

오늘, 동기가 작은 투덜거림으로 하루를 열었다. “선배가 보도자료 대신 써달래…” 그의 목소리 끝은 불평의 꼬리를 물었지만, 그 순간 나는 묘한 감정의 파동을 느꼈다. 질투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어렴풋한 그리움일까. 동기에게 그 부탁을 건넨 ‘누나’는, 나에게는 선생님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니까.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시절, 누나는 나에게 거대한 지도였다. 일이라는 복잡한 지형 속에서 나는 늘 길을 잃었고, 누나는 조용히 내게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실수가 예상되면 먼저 다가와 조용히 알려줬고, 질문을 던지면 성실함이란 이름의 답이 돌아왔다. 누나가 쓰던 기사 한 줄, 조언 한 마디에서도 느껴지던 그 야무진 에너지. 한 기수 차이의 선배였지만 그 어떤 선배보다 단단한, 그런 역설 같은 사람이었다.


일을 잘한다는 건 그냥 결과로 설명되는 게 아니었다. 누나는 과정 자체로 증명했다. 일하는 태도, 말투,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까지. ‘일 잘하는 사람은 이런 거구나’ 하는 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해줬다. 부탁을 잘 하지 않는 것도 누나의 특징이었다. 어쩌면 스스로의 무게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자신이 맡은 책임의 울타리를 결코 넘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지에서는, 낯선 공간이라는 허술한 경계 덕분에 드물게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누나가 나에게 준 영향은 말보다 더 깊었다. 누나는 직접적인 조언을 하지 않았다. 대신 ‘태도’로 말하고 있었다. 한결같은 성실함, 작은 일도 흘려보내지 않는 꼼꼼함. 무심한 듯 자리를 지키면서도 스스로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는 모습. 이런 것들은 강의실에서 배울 수 없고, 책에서 찾을 수도 없다. 그냥 옆자리에 앉아 누나의 ‘존재’를 바라보며 배운 것들이다.


대학 시절 배웠던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의 사회 학습 이론이 떠오른다. 사람은 직접적인 가르침보다 주변의 행동을 관찰하며 배우는 존재라고 했다. 나는 누나 옆에서 무의식적으로 배웠다. 성실함이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선택하는 일상의 태도라는 것. 작은 실수 앞에서 피하지 않고 바로잡는 용기, 어떤 상황에서도 책임을 다하는 모습.


때로 사람은 직접적인 말보다 존재로 더 큰 영향을 준다. 누나의 한결같음, 성실함, 묵묵한 책임감은 나에게 말보다 더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다. “너도 할 수 있어. 그렇게 해봐.” 그런 무언의 응원이 내게 자양분이 되었다. 누나는 가르치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배울 수밖에 없었다.


누나의 태도는 마치 자장(磁場)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아무리 일을 못 해도,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누나는 선생님이었다.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밝은 방향을 가리키며 주변을 물들이는 사람.


누나의 완벽함이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나는 끝없이 부족하고 서툴렀지만, 그 옆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오늘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었다. 누나가 내게 요청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누나의 태도는 제법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하기도 했다.


누나는 앞으로도 똑부러지게 자신의 길을 걷을 것이다. 의존하지 않고, 투덜대지도 않고, 자신의 책임을 묵묵히 지키면서. 그리고 나는, 여전히 누나의 뒷모습 속에서 자라고 있다.


내게 ‘일을 잘한다’는 건 이제 누나의 모습과 닮은 무언가가 됐다. 그건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로 증명되는 것. 나는 오늘도 누나에게 배운 그 자장 속에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러니까, 누나는 내게 오랫동안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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