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디 병 너머의 고요

2024년 12월 2일

by 양동생

아무 일도 없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특별히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커피를 내리고, 무심코 창밖을 바라보며 흐린 하늘을 확인한다. 손끝이 약간 시린 걸 느끼며, 아, 겨울이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책상 위에는 어제 받은 리젠시 브랜디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선물을 받는 순간이란 건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처음엔 약간 당황스럽고, 곧이어 감사하고, 그러고 나면 묘한 공백이 생긴다.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이 몸에 익지 않은 공기처럼 서서히 스며든다.


브랜디 병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면, 어쩐지 어제의 감정들이 천천히 식어가는 기분이 든다. 선물이라는 건 단순히 물건을 주고받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시간 속에서 나를 잠깐이라도 떠올렸다는 증거다. 그 짧은 순간이 어떤 경로를 지나, 이 작은 병 안에 가라앉아 있다. 마치 바다에서 떠밀려온 작은 병 속 쪽지처럼.


생각해보면, 사람의 기억이라는 건 꽤 이상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별 의미 없는 일상이 기억의 깊은 곳에 남아 있기도 하고, 반대로 의미 있어 보였던 순간들은 스치듯 사라지기도 한다. 어제의 선물처럼 작고 단순한 사건이 오늘은 묘하게 무게감을 가진다.


왜 그런 걸까. 아마도 인간은 때때로 사소한 것들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날에, 의미 없는 것들이 주는 위로.


책상에 놓인 브랜디 병을 손에 들어 올려 본다. 열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마시지 않고 그냥 거기에 두는 것도 괜찮다. 마치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를 억지로 꺼내지 않듯이.


이따금 아무 일도 없는 하루가 이상하리만큼 편안할 때가 있다.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 세상이 특별히 나를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해방감. 그런 날에는 별 의미 없는 선물조차도 마음속 어딘가에서 잔잔히 울린다.


아무 일도 없는 오늘. 그러니까, 이 조용한 공백마저도 어쩌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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