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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거리, 머물고 싶은 순간

2024년 12월 13일

by 양동생

가끔 드라마에서 본 장면이 머릿속을 맴돈다. 한 달에 한 번, 보름마다 꾸준히 만나면 결국 상대와 익숙해진다는 전략. 허황된 이야기 같지만, 묘하게 현실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익숙함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익숙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누나는 늘 같은 모습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조용하고, 차분하고, 가끔 피곤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누나에게 보름의 한 번 만나는 일이 가능할까? 어쩌면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니면, 너무 인위적인 관계가 되어버릴까.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가는 법이 필요하다.


얼마 전 동기가 누나에게 대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화가 났다.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 내가 누나 대신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애매한 감정. 분명 누나는 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불편했다. 인간관계란 원래 그런 것이다. 직접 당한 일이 아니어도, 가까운 사람이 겪으면 마음이 요동친다.


누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어떻게 풀까. 혼자 조용히 책을 읽을까. 아니면 산책을 나갈까.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아갈까. 아마 집에서 휴식을 취하겠지. 그런 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다. 특별한 것이 아니어도, 조용히 옆에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면.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꼭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같은 공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할지도. 그럼에도 아쉬운 건 맞지만.


나는 고민한다. 누나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말을 걸어야 할까,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할까. 보름의 한 번이라는 전략이 여기에서도 유효할까. 사람 사이의 관계는 논리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적절한 거리, 적절한 타이밍, 적절한 온도가 중요하다. 그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더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 그리고 결국, 그 고민 자체가 누나를 향한 작은 애정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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