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
누나가 오늘도 탄핵 집회 취재를 가야 하는데 가지 않아서 너무 좋다. 이 겨울, 바람에 얼굴이 베이지 않고, 손끝이 얼어붙지 않으며, 거센 인파 속에서 휩쓸리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스럽다. 집회 현장의 차가운 공기, 무거운 압박, 긴박한 순간을 기록해야 하는 무게가 오늘 하루만큼은 누나에게서 벗어났다. 나는 그게 좋다.
좋아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고, 아프지 않으며,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는 마음. 일이 끝나고도 그녀가 숨을 몰아쉬지 않고, 예정된 휴식 없이 다음 일정으로 몰아붙여지지 않는다면 그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마음. 나도 지금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집회라는 일에서 빠져나와 하루쯤은 따뜻한 방 안에서 몸을 녹일 수 있다면, 그게 누나에게는 작은 휴식이고, 나에게는 안심이다.
기자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기록의 과정에서 종종 자신을 지우는 법을 배우곤 한다. 이병주가 ‘기자는 단 한 문장도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듯, 누나나 나나 늘 현장에서 목격한 것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궁금했다. 그런 누나도 날씨가 춥다고, 사람이 밀려들면 두렵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기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 힘들지는 않을까.
학자들은 인간의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조너선 하이트는 도덕 감정이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고, 마사 너스바움은 감정이 곧 인간의 합리성을 구성하는 핵심이라고 보았다. 감정이 인간을 흐트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창이 될 수도 있다고. 그렇다면 나는 지금 단순한 감정의 발현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누나를 걱정하는 자연스러운 사고의 과정을 밟고 있는 것 아닐까. 덕질이든 가족애든, 결국 본질은 비슷하다. 좋아하는 존재가 다치지 않기를,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오늘 나는 행복하다. 집회 속 인파를 뚫고 가지 않아도 되는 누나, 따뜻한 방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을 누나. 기자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잠시쯤은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는 누나. 그런 누나를 보면서 나도 마음 놓고 숨을 돌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