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5일
누나는 오늘 퇴근 시간, 피곤한 기색도 없이 상사를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줬다. 이 작은 풍경은 얼핏 보면 그저 윗사람에 대한 예의 혹은 직장 생활의 일환쯤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만들어진 선함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삶을 살다 보면 마음 한편에 ‘나는 사실 좋은 사람인가?’ 하고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런 의문은 일상의 작은 행동들을 통해 조금씩 답을 드러낸다.
소설가 백영옥은 “선함은 결코 목소리를 높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정확히 이 문장을 썼는지 아닌지 기억이 분명하진 않지만, 그녀가 여러 글에서 일상의 숨은 가치를 포착하고, 그 가치를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을 조명해온 것은 분명하다. “당연함에 대해 의심해봐야 한다”고도 말했던 그녀의 이야기를 떠올리면, 누나가 퇴근 길에 상사를 태워주는 행동 역시 사실은 당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퇴근 후에는 누구나 지친다. 하루 종일 쌓인 업무와 스트레스, 종종 들이닥치는 뜻밖의 일들에 시달리다 보면, 빨리 집에 가서 몸을 뉘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클 것이다. 그럼에도 누나는 자신에게서 조금 더 노력을 쥐어짜 상사를 태우고 간다. 가끔은 그 길이 돌아가는 길일 수도 있고, 더 늦게 귀가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번거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남에게 베푸는 선함이란 대체로 내가 조금 더 불편해지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의 선함은 어디쯤에 놓여 있을까. 별다른 악행 없이 그저 '무해(無害)하게' 지내는 것은 선한 삶을 뜻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일 뿐, 누나처럼 마음속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호의, 그리고 그 호의를 행동으로 옮길 용기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한 철학자는 일상의 사소한 선택이 바로 그 사람을 정의한다고 말해왔다. 아침에 무심코 한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고, 퇴근 후 자투리 시간에 자발적으로 행한 작은 친절이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가끔은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질문이 주위에서 들려오기도 한다. 어쩌면 효율적으로 살고, 자기 몫만 감당하기에도 벅찬 세상에서, 더 나아가 타인을 위해 헌신하는 일은 어색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함이란 결국 삶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토대가 된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그리고 내 안에서 그 선함을 발견할 때마다 세상이 조금씩 살 만한 곳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안다.
누나가 퇴근 길에 상사를 태워주는 것은 대단한 미덕을 과시하려는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누나가 가진 선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순간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순간들을 보면서, 내 안에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조금 더 불편해질 마음이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선함은 언제나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존재한다’고 누군가가 말했듯, 누나의 선함은 매일의 일상에서 그 빛을 찾기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