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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도리가 지어줄 작은 집

2024년 12월 18일

by 양동생

요즘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문을 열고 바깥 공기를 확인하곤 한다. 낮게 깔린 찬 공기가 밀려들어오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오늘은 드디어 준비한 목도리가 필요하겠군.” 나는 며칠 전 신사동의 어느 편집샵에서 발견한 ‘카리나 목도리’를 떠올렸다. 이 목도리를 두른 누나가 얼마나 귀여울지 생각하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


나는 원래 목도리라는 물건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추운 날씨에 목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단순한 도구일 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카리나 목도리를 발견한 순간, 머릿속 어딘가에서 “아, 이건 조금 다른 물건인데? 누나랑 잘 어울리겠어”라는 신호가 분명히 울렸다. 부드러운 질감은 물론, 눈에 띄지 않게 세련된 패턴,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폭이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목도리라고 해봐야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내게, 그 사소한 디테일들이 의외의 매력을 뿜어냈다.


누나에게 이 목도리를 건네준다면, 과연 누나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해본다. 아마 “예쁘네”라고 덤덤하게 말하면서도, 조금 쑥스러운 듯이 웃거나 혹은 “비싸게 산 거 아니야?” 같은 걱정을 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누나는 귀여운 사람이니까, 그런 순간을 맞이했을 때 특유의 멋쩍은 표정만 지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목도리를 빙 두른 채로, 마치 겨울 아침 햇살처럼 환하게 웃어주면 좋겠다.


목도리가 주는 느낌이란, 마치 사람이 두 번째 집을 마련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추운 바람에 노출된 목 주변을 부드럽고 포근한 천으로 감싸주면, 순간적으로 ‘여기가 내 안전지대’라는 기분이 든다. 마치 작은 집 한 채를 목 언저리에 짓는 느낌. 이 집은 이동식이어서, 누나는 이 집을 두르고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지하철이든 버스든, 길거리에 서 있든, 목을 스치는 차가운 공기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테니까.


사실 내가 이런 목도리를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결국 누나가 귀여워 보일 거라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동시에 “누나가 좀 더 따뜻하고 편안했으면 좋겠다”라는 소박한 소망 때문이기도 하다. 누나가 웃을 때마다, 그 무심한 표정 아래 숨어 있는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게 나는 좋다. 그리고 어느 날엔가 목도리를 두른 누나가 내게 “오늘 바람이 꽤 차가운데, 목도리 덕분에 괜찮아”라고 말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하루가 훨씬 충만해질 것 같다.


최근 들어, 나는 어디를 가든 누나 생각이 난다. 카페에 들러 새로 나온 시즈널 음료를 보면 “누나도 좋아하겠지?” 싶은 마음이 들고, 책방에서 예쁜 엽서를 발견하면 “이걸로 편지를 써볼까?” 하는 충동이 올라온다. 마치 몸 속에 숨겨진 감각 기관이, ‘누나 레이더’를 작동시키는 것처럼.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아마도 그 이유는, 내가 ‘누나가 기뻐할만한 순간’을 찾는 데서 묘한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해, 누나를 신경 쓰고 보살피는 행위 자체가 나를 즐겁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할까.


그리고 이 목도리에 대한 집착(?)도 같은 맥락일 테다. 카리나 목도리가 특별히 화려한 디자인도, 엄청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이걸 보면 “누나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마치 문득 “누나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하고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어쩌면 이런 마음이야말로, 내가 누나를 좋아하고 있음을 세상에서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조그만 집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목도리를 선물해 목 주변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어 하듯, 다른 사람의 삶을 조금이나마 안락하게 해주고 싶은 욕구 말이다. 누나가 이번 겨울, 이 카리나 목도리를 두르고 귀여운 웃음을 지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겐 충분한 보답이 될 것 같다. 거기에다 “이 목도리 정말 괜찮네!”라는 칭찬이라도 얹히면, 난 아마 당분간 또 다른 아이템을 찾아 헤매겠지. “이거면 누나랑 잘 어울릴 거야” 하고 말이다.


결국, 목도리에 대한 시시콜콜한 고찰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하지만 목도리가 가진 의미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냥 적당히 따뜻하고, 때로는 귀엽고, 또 누나가 썼을 때 그 모습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창밖으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보면서, 지금 다시 한 번 상상한다. 카리나 목도리를 두른 누나가 회사 앞 골목 어귀를 돌아 들어올 때, 세상이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 순간, 내 마음속 작은 집도 덩달아 환하게 밝혀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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