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9일
어제 나는 누나에게 주고 싶은 목도리를 누나 자리에 조용히 숨겨두었다. 언젠가 “뭐야?” 하는 반응을 기대했다. 그런데 날이 조금씩 쌀쌀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모른 척하는 건지 진짜 모르는 건지 헷갈린다.
어쩌면 내가 뭔가를 기대하고 있는 티가 너무 났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조급해지면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은근슬쩍 “오늘 목이 춥지 않아?” 같은 말들을 건네며 힌트를 주고 싶어지니까. 하지만 누나는 태연하게 “아직 견딜 만해”라고 대답할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왠지 심통이 나서, “도대체 언제쯤 그걸 발견할 셈이야?”라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도 같다.
그러나 사실 문제는, ‘내가 준비한 목도리’를 누나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보다도 내가 그런 반응을 은근슬쩍 바라면서 덜덜 떨고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이 작은 기대와 서운함 사이에서, 나는 매번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걸까?” 하고 고민한다. 가령 누군가는 차라리 직접 건네는 게 속 편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냥 주면 되잖아!” 하지만 나는 왠지 누나가 직접 발견하고 반가워해주길 바란다. 마치 보물찾기처럼, 우연한 순간에 발견해서 기쁨이 배가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끄러우니까.
문제는 계획대로 흘러가긴 쉽지 않다는 거다. 내가 생각하는 누나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물건도 필요한 순간에 확실하게 찾아 쓰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목도리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어쩌면 내가 숨겨둔 위치가 누나에게 크게 의미가 없는 공간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아하, 누나는 저기서 뭔가를 찾을 일이 거의 없겠구나.” 그러니 일단 방법을 바꿔보는 수밖에.
생각해보면, 누나는 ‘의미 있는 물건’이 눈에 띄면 반드시 한 번쯤 들어서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 자기가 관심이 생기면 금방 반응하는 사람이다. 반대로 전혀 관심이 없으면 가방 속에 쑤셔 넣은 채 며칠이 지나도록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까 목도리를 ‘딱 누나의 시야 안으로’ 자연스럽게 놓아두는 전략이 필요할 것 같다.
이를테면, 누나가 자주 쓰는 핸드크림 옆이나, 가까운 수납장 위라든지. ‘이건 뭐지?’ 하고 궁금해질 법한 위치 말이다. 그렇게 우연을 가장해놓으면, 누나는 “이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하면서 폭신하게 접혀 있는 목도리를 들춰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반문이 떠오른다. 누나가 알아채주면 너무 좋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누나가 좋아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한 선물 아닐까. 그리고 언젠가 어찌 됐든 간에, 이 목도리는 누나 손에 들어가게 될 테니 말이다.
때로는 상대가 특별히 크게 반응해주지 않아도, 내 마음의 선물은 이미 충분히 주인을 찾아간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기대하는 반응이 크면 클수록, 누나는 쉽게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누나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딱히 표현하지 않는 건 아닐까? 혹은, 그냥 딴 생각에 잠겨서 아직 발견 못 했을 수도 있지.
그래서 결론은 이렇다. “언젠간 보겠지, 뭐.” 뭔가 계획을 열심히 짜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누나가 발견하기를 기다려보려고 한다. 발견하면 그때가 적절한 타이밍일 테고, 만약 한참이 지나도 못 찾는다면 나중에 차라리 웃으며 “에이, 내가 사실 이런 걸 준비했었어” 하고 직접 건네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비밀은 조그만 기대와 불안함을 동반한다. 그 사이에서 생기는 묘한 스릴을 즐기는 것도 좋다. 그러니 나는 조금 더 기다려보려고 한다. 누나가 문득 그 목도리를 발견하고, 예쁜 목에 두르고 환하게 웃는 그 순간. “오, 이거 진작 봤어야 했는데!” 하고 말해준다면, 내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질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좋다. 결국에는 누나가 이 목도리를 발견하기만 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