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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의 긴 머리와 원피스를 보지 못한 슬픔에 대하여

2024년 12월 21일

by 양동생

가끔은 어떤 장면이 실제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속에 새겨질 때가 있다. 실재하지 않는 풍경, 눈앞에 없었던 순간인데도, 그것이 아득한 그리움처럼 남는 날들이 있다.


얼마 전, 누나가 결혼식장에서 머리를 풀고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은 내가 직접 본 장면이 아니었다. 하지만 들려온 이야기만으로도 내 머릿속엔 선명한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부드럽게 흩날리는 머리칼, 그 아래로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원피스 자락, 그리고 그 장면을 보았던 사람들이 “꽤나 예뻤다”라고 말할 때의 작은 흥분과 감탄까지.


문제는, 나는 그 순간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예쁜 모습을 놓쳐서가 아니다. 그것이 ‘나에게만 허락되지 않은 순간’이라는 사실이 슬펐다. 마치 어떤 소설의 중요한 장면을 단 한 장 남겨둔 채 책장을 덮어버린 기분이었다. 이미 다 읽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처음부터 되짚어볼 수도, 그렇다고 마지막 장을 내 손으로 넘길 수도 없는 상태.


세상에는 한 번 지나가면 되돌릴 수 없는 장면들이 있다. 그것들은 때로 사소한 일상 속에서 스치듯 지나가고, 때로는 아주 특별한 날에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누나의 머리 푼 모습과 원피스 차림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이토록 슬픈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 장면을 볼 기회는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기록되지 않은 순간은 사라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했을 때 내가 가질 수 있었을 감정이다. 그날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놀람이었을까, 감탄이었을까, 아니면 무언가 말할 수 없는 따뜻함이었을까. 상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결국, 나는 그날을 놓쳤다. 하지만 어쩌면 ‘놓친 순간’ 또한 하나의 기억이 된다. 보지 못한 풍경을 상상하며 떠올리는 감정도, 어쩌면 직접 본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어떤 아름다운 순간을 놓쳤다는 이유로 나처럼 슬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놓치는 순간들에 대해 조금 더 담담해지기로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여전히 아쉬울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하지만 어쩐지 너무도 선명한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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