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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쿠폰을 선물한다는 것에 대하여

2024년 12월 22일

by 양동생


여러 선물들을 줬지만 선물이란 대개 상대방이 원하는 것, 혹은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보다 더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막 깨달았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 그 마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지, 그리고 그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까지. 선물은 단순한 물질의 이동이 아니라, 감정과 시간이 스며든 행위다.


영화 쿠폰을 선물하는 일도 그렇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는 교환권이 아니다. 영화 쿠폰은 하나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선물이다. ‘이 영화를 보고 싶다면 언제든 볼 수 있어.’ ‘네가 좋아할 만한 순간을 위해 남겨둔 작은 선택지야.’ 라고 말하는 방식.


보통 선물에는 ‘당장’이라는 시간이 붙어 있다. 생일에 받는 선물, 기념일에 주고받는 것들, 모두 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 쿠폰은 다르다. 지금이 아닐 수도 있고, 한참 후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손 안에 든 쿠폰을 꺼내드는 순간, 그제야 비로소 선물은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영화 쿠폰을 선물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어쩌면 나는 ‘지금’이 아니라 ‘언젠가’를 위해 선물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나가 어느 날 문득 영화를 보고 싶을 때, 어떤 하루를 영화 한 편으로 정리하고 싶을 때, 혹은 그냥 예고편을 보다가 마음이 동할 때. 그때 내 선물은 조용히 효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니 영화 쿠폰을 준다는 것은, ‘네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을 미리 걸어두는 행위다. 선물한 순간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언젠가, 아무렇지도 않은 어느 날, 이 선물이 조용히 살아날 순간이 온다는 걸 아는 것. 그때 영화관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혹은 스마트폰 작은 화면을 통해, 이 선물은 자기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쿠폰을 건넨다는 건 일종의 예고편 같은 행위다. ‘언젠가 즐거운 시간이 올 거야.’ ‘그때, 이걸로 좋은 영화를 보면 좋겠다.’라는 작은 기대를 걸어두는 것. 선물이란 결국, 상대의 시간 속에 스며들기 위한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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