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3일
이야기는 단순했다. 친구가 누나에게 ‘형’이라고 불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어쩐지 조바심이 났다. 나도 그렇게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게 입 밖에 내지는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호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을 부르는 방식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다. 어떤 관계에서든, 호칭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거리를 결정짓고, 관계의 온도를 설정하는 작은 장치다. ‘누나’라고 부르는 것과 ‘형’이라고 부르는 것, ‘이름’만 부르는 것과 ‘선배’라고 부르는 것, 혹은 그냥 아무 호칭 없이 부르는 것. 같은 사람을 부르는 말이 달라지는 순간, 그 관계는 조금씩 다른 색을 띠기 시작한다.
덕질하는 사람들에게 호칭이란 그 자체로 작은 권력이 되기도 한다. 그들이 아이돌을 ‘오빠’라고 부를 때, 혹은 배우를 ‘님’이라고 부를 때, 호칭은 단순한 호칭을 넘어, ‘나는 이 사람과 이런 관계를 맺고 싶다’는 선언이 된다. 누군가는 같은 배우를 ‘배우님’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오빠’라고 부른다. 때때로 호칭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이고, 관계의 결이 달라진다.
애칭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애칭이란 애정이 담긴 호칭이지만, 모든 애칭이 모든 관계에서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상대의 이름을 짧게 줄여 부르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전혀 엉뚱한 단어를 붙여 부른다. 어떤 애칭은 쉽게 만들어지지만, 어떤 애칭은 특정한 순간에만 탄생한다. 그리고 한 번 정착된 애칭은 오래 남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형’이라는 호칭에 마음이 흔들렸을까. 그것은 어쩌면 친구가 누나와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단순한 장난처럼 보였던 그 한마디가, 내가 알고 있는 관계의 형식을 살짝 무너뜨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호칭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다. 하지만 어떤 관계에서는, 그것이 관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언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이름을 부르는 방식을 고민한다. 친구에게는 ‘야’라고 부르지만, 선배에게는 ‘누구누구 선배’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에게는 쉽게 ‘누나’라고 부를 수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끝내 이름조차 쉽게 부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여전히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도 쉽게 부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나만이 부를 수 있는 애칭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호칭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애칭은 관계 속에서만 태어나고, 오직 특정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암호 같은 것이니까.
그때가 되면, 나는 자연스럽게 부를 것이다. 그게 ‘형’이든, ‘누나’든, 혹은 그 어떤 이름이든. 그리고 혹시 그 호칭이 나만이 부를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