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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구겔호프—누나를 위해 굽는 시간

2024년 12월 24일

by 양동생

케이크를 굽는 것은 단순한 요리가 아니다. 그것은 시간을 굽는 일이다. 밀가루와 달걀, 버터를 섞고 반죽을 부드럽게 치대는 과정은 어떤 기다림과 비슷하다. 그리고 오븐 안에서 케이크가 부풀어 오르는 동안, 그 기다림은 천천히 현실이 된다.


구겔호프는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케이크다. 둥글고 깊은 틀에 반죽을 채워 넣고, 오븐 속에서 오래 익히는 이 케이크는, 어떤 기념일에 잘 어울린다. 시간을 들여 만들어야 하고, 쉽게 완성되지 않으며, 그것을 건넸을 때 “이걸 언제 만들었어?”라는 질문을 듣게 되는 케이크. 크리스마스엔 그런 케이크가 필요하다.


크리스마스 에디션으로 만들기로 했다.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가루 설탕을 뿌리고, 반죽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입혔다. 크리스마스엔 어쩐지 특별한 색이 필요하다. 흔한 초콜릿 케이크도, 딸기 케이크도 아닌, 오직 이 계절에만 구워지는 케이크. 그러니까 이 케이크는 ‘누나에게 줄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누나에게 선물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건 그것이 ‘무엇’인지보다 ‘누나가 받을 때의 순간’을 상상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케이크도 그렇다. 내가 고른 재료와 색,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 속에는, 누나가 이걸 받았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내 마음이 담겨 있다.


누나는 이 케이크를 받고, 조용히 칼을 넣어 조각을 낼 것이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겠지. 부드럽게 씹히는 반죽과, 어쩌면 안에 들어간 견과류의 작은 바삭함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거기엔 내가 넣어둔 시간과 마음이 함께 있다.


나는 누나가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좋다. 누나가 뭘 먹든, 맛을 알아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이 케이크를 건넬 때 더 조심스럽고, 더 기쁘다. 마치 작은 선물을 숨겨둔 아이처럼.


크리스마스의 구겔호프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기억이 된다. 단순한 케이크가 아니라, 크리스마스에 구웠다는 사실 자체가 남는 케이크. 눈이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케이크 위에는 눈이 내렸다. 그리고 이걸 누나에게 건넬 순간이 오면, 내 안에도 조용히 크리스마스가 내려앉을 것이다.


누나를 위해 케이크를 굽는다는 건, 결국 “이 순간을 기억해 줘”라고 말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한 조각의 케이크가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 순간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이 케이크를 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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