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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누나 알고 싶다는 마음

2024년 12월 28일

by 양동생

오늘도 누나와 주말을 함께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사랑이라고 하기엔 분명 카테고리와 결이 다르고, 그렇다고 단순한 호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마음. 꼭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은 것에 가깝다.


함께 영화 따위는 보지 못해도 밥을 먹고, 어쩌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마실 수도 있다. 길을 걷다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저 조용한 시간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 자체다. 그리고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이런 마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누군가를 떠올릴 때, 우리는 종종 감정을 정의하고 싶어진다. 좋아한다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존경한다면 어느 정도의 강도로 존경하는지, 혹은 그저 좋은 감정이라면 어디까지가 적당한 선인지. 하지만 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다. 어떤 감정은 특정한 이름을 가질 필요 없이,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말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그렇다. 그건 꼭 사랑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같이 있는 시간이 좋을 것 같은 좋은 사람이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랑이 아니면 안 되냐고 묻는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은 충분히 소중하니까.


하지만 그 마음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것 이상일지도 모른다. 직장에서 마주치는 모습, 업무 중에 짧게 오가는 대화 속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사적인 시간 속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지, 어떤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것들을 보고 웃고, 무엇에 집중하는지. 그것들을 알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사람은 공적인 자리와 사적인 자리에서 미묘하게 다르다. 그리고 나는,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고 싶다. 업무라는 틀 안에서 정제된 말과 계산된 표정이 아니라, 일과 상관없는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얼굴을 보고 싶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마음 자체는 분명하다.


어쩌면 이 마음을 정의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주말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사람과 무엇을 하든 좋은 시간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는 것. 그 정도면 충분하다.


감정은 때로 이름 없이도 유효하다. 그리고 나는 이 마음을 굳이 규정짓지 않은 채,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말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으니까. 자기 위로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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