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팅 선생님 미안해요
학원을 인수한 후 2, 3년 정도 지났을 때였나.
일을 막 시작한 20대 후반, 모르는 게 많아서 다 아는 줄 알았던 그때는 내게 학원이 세상의 전부였다.
내가 아는 것만 하니, 하면 되던 시절이었다.
1997년 IMF가 오기 전까지, 교육청 인가 최저 평수 학원에서 그 나이에 만들법한 세계를 이뤄 나갔다.
정규 수업 외에도 무료로 보충 수업을 했다.
학교 정기 시험을 치를 때는 학원에서 밤새워 아이들이 시험 준비를 하도록 도왔다.
아이들의 미래를 내가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들의 성적표에 나온 숫자를 보고 같이 웃고 울었다.
그 작은 세계에서 최고의 가치는 등수였다.
오랜만에 쉬는 토요일이었다.
시험이 끝난 주였던 모양이다.
학원 철문을 양쪽으로 활짝 열고 대청소를 했다.
청소가 거의 끝나가면서 기운이 빠져 대걸레로 슬렁슬렁 복도 바닥에 물 칠을 하고 있었다.
“뭐하냐?” 고등학교 동창인 하늘이가 입구에 서 있었다.
집에서 입던 채로 나온 듯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보면 모르냐?” 그날 하늘이는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들고 왔다.
영화「죽은 시인의 사회」.
우리는 철문을 잠그고 학원 골방에 앉아 VHS 플레이어로 영화를 재생했다.
하늘이와 나는 보통 때와 달리 입을 다물고 영화에 집중했다.
나는 키팅 선생이 되었다가 토드 앤더슨이 되었다.
영화 마지막 장면, 토드 앤더슨이 책상 위로 올라가며 선생에게 경의를 표할 때 눈물로 함께 했다.
하도 울어서 벌개진 눈으로 우리는 웰튼 아카데미에 가기로 했다.
영화 속 배경인 미국의 버몬트주 어딘가(실제로는 델라웨어주) 가을 단풍이 멋진 그곳에 꼭 가자고 했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해서 10년짜리 계를 조직했다. 계원이 단 두 명.
계원을 모으자는 둥, 계를 따로 타니 같이 가긴 글렀다는 둥 하며 낄낄거렸다.
우리는 불가능한 계획을 세우면서 있지도 않은 웰튼 아카데미로 가는 꿈을 꾸었다.
진정한 자유는 보이지 않았고 견고함을 둘러싼 배경은 아름다웠으므로.
그 시절 우리에게 웰튼 아카데미는 무슨 의미였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게 마음 깊은 곳에서 상류층이 모인 최고의 공간을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당장 공부해라.”
나는 아이들에게 현재를 잡으라고(Seize the day) 했다.
규율에 잘 길들여진 카메론의 뒤통수에 대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속삭이던 키팅 선생처럼.
물론 내 언어의 의미는 키팅 선생의 그것과는 달랐다.
나는 거대한 삶의 목적이 뭔지 몰랐다. 그게 최선인 줄 알았다.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성과를 내는 유능한 강사가 되고 싶은, 그저 하나의 인생이었다.
IMF가 왔다.
동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졌고 학원비를 내지 못하는 집이 하나둘 늘었다.
경영이 서툴렀던 나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IMF 시기가 끝날 무렵 더불어 학원을 접었다.
그후 다른 학원에서 입시 전문 강사가 되었다.
하늘이는 유학생과 결혼하는 바람에 미국으로 가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는 웰튼 아카데미에 가지 못했고 영화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았다.
최근 넷플릭스 알고리즘에서 내게 「죽은 시인의 사회」를 추천했다.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보았다.
3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감동 드라마였으나 우리의 선장, 키팅 선생은 예전만큼 존경스럽지 않았다.
그는 나처럼 불완전한 어른이었다.
이상을 제시하면서 폭풍이 닥칠 수 있다는 걸 비밀로 하고 싶은 어른.
아이들에게 멋진 말을 던졌으나 정작 수단은 자신도 모르는.
영화에서 총명한 닐 페리는 죽음을 선택했다.
선택은 자유이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해도 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바다로 나가기 위해서 먼저 벽을 부수라고 닐에게 귀띔이라도 해 줬다면 어땠을까.
꿈을 실은 작은 배는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우리는 덜 슬펐을지도.
선생은 휘트먼의 시, ‘오, 나여! 오, 삶이여(Oh, me! Oh, my life)를 인용하여 학생들에게 시와 아름다움, 낭만, 사랑이 삶의 목적이라고 가르친다.
화려한 연극은 계속되고 그들은 한 편의 시가 된다고(the powerful play goes on, and you may contribute a verse).
아이들은 ’화려한 연극’이라는 표현을 ‘파란만장하고 격동적인 삶’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은 아직 알 수가 없다.
언어가 우리를 기만할 때가 있다는 것을.
화려한 연극 뒤에 안타까운 죽음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키팅 선생에게 일말의 책임을 묻고 싶은 나는 아무래도 꼰대인가 보다.
자신의 배를 직접 몰아봐야 항해법을 터득하며 각자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의 항해에 일일이 참견하고 싶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실수하면서 나아가는 과정을 인내심 있게 지켜본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학생들을 흔든 대가로 선생은 학교에서 쫓겨나는 모습을 보인다.
내 눈에 왠지 도피의 모습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는 틀림없이 자신에게 책임을 물었을 것이므로 아이들을 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선생이 고개를 돌려 자신들에게 답할 기회를 준다.
책상 위에 올라서 경의를 표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도 마음속으로 경의를 표했으리라.
“오. 캡틴, 마이 캡틴(Oh, captain, my captain).”
나는 지금도 작은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여전히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자’라고 말한다.
틈틈이 잊지 않고 공부의 의미에 대해서 부연한다.
젓가락질을 배우는 것, 온라인 게임 규칙을 이해하는 것,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것 - 살아가기 위해 하는 모든 것, 삶 자체가 공부라고.
나도 계속 공부하는 중이라고.
아이들은 머지않아 규칙과 서열이 지배하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크고 작은 파도와 바람을 통과해야 할 것이다.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우회하면서.
각자만의 항로를 개척할 그들의 배가 단단해 지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내가 그들에게 작은 부품이라도 하나 보탤 수 있다면 나름대로 내 배도 순항 중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