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 무의도행
“너는 청라까지만 와. 우리집에 주차하고 내 차로 무의도에 가면 돼.”
바다에 가고 싶어서 경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친구가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걸 말하면 경이는 바로 해결해 준다.
“뭐가 걱정이야?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하면 되지.”
경이가 잘 치는 대사다.
우리는 세상에 할 수 없는 일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도, 까짓거 말로는 지르고 본다.
경이에게는 결과가 불확실한 바람을 털어놓아도 부끄럽지 않다.
대무의도에서 소무의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곳에 가면 2층 카페에 앉아 하늘로 덮인 산과 바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경이를 마지막으로 본 건 작년 봄, 경이 시아버지 장례식에서였다.
시댁 식구들 사이에 있는 경이는 내가 알던 경이와 조금 달라 보였다.
얌전히 두 손을 모아 잡아서 어깨가 좁아 보였다.
내가 어색하게 애도를 표했던 일을 기억한다.
경이가 아파트 출입구로 마중을 나왔다.
지하 주차장에서 경이의 차로 옮겨 탔다.
우리는 들뜬 목소리로 서로 안부를 물었다.
나는 올가을에 조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우리는 아쿠아리움에 놀러 갔을 때 어린 조카가 울음을 터뜨렸던 일을 얘기하며 웃었다.
“야, 바다 봐. 바다.”
무의대교를 건너며 경이 재촉했다.
“어, 잘 안 보이지만 아무튼 바다네.”
강한 빛 때문에 바다가 뿌옇게 보였다.
광명항으로 들어가는 길은 확장 공사 중이었다.
나무를 밀어버려 흙더미로 변한 산을 검은 막으로 덮어 놓았다.
“길이 다 망가졌네.”
멋진 경치를 잃어버린 길을 지나며 아쉬워했다.
“공사가 끝나면 섬에 들어가기 더 쉬워질 거야.”
그래, 망가진 게 아니라 달라지는 중이다.
광명항 근처 갓길에 차를 댔다.
차 문을 열자 더운 열기가 훅 들어왔다.
“소무의도로 가려면 꽤 걸어야 하는데 괜찮겠어?”
나는 실눈을 뜨고 경이를 보았다.
“야, 너무 더워서 못 가겠어.”
경이가 망설였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뭐야, 만조를 보러 가야지.”
나는 경이의 등을 밀었다.
경이는 흐느적거리며 걸었다.
대학교 2학년 여름, 경이가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자기 집은 진짜 시골이라면서.
나는 방학이면 시골로 돌아가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나보다 더 넓은 세상에 사는 것 같았다.
수학여행을 빼면 나는 그때까지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경이 덕분에 난생처음 진짜 시골에 가게 되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경이를 만나 또 버스를 탔다.
공동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양쪽으로 논밭이 펼쳐진 길을 지나가니 마을이 나왔다.
마을 뒤로 그리 높지 않은 산등성이가 겹겹이 이어졌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마른 흙 마당에 누렁이 다섯 마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햇빛이 강해 마당과 개가 하얗게 보였다.
새끼처럼 보이는 강아지 한 마리가 느릿느릿 다가와 알은체를 했다.
경이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시고 집에 할머니만 계셨다.
모시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방 안에서 마당으로 시선을 두셨다.
경이 말에 의하면 할머니는 기억을 많이 잃으셨고 누가 말을 걸면 웃음을 멈추지 못해 곤란하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고개 숙여 인사하고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메리….”
할머니가 희미하게 불렀는데 누렁이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나도 모르게 따라 일어났다.
개들이 제각각 꼬리를 흔들며 방 앞으로 달려왔다.
할머니는 아기를 어르듯 손바닥을 펴 잘게 흔드셨다.
할머니가 나를 반겨주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집에서 개는 다 메리야.”
경이가 한 녀석을 번쩍 들어 안았다.
죽은 듯이 늘어져 있던 개들, 고요히 손짓하던 할머니, 그리고 경이와 내가 하나의 장면 속에서 이어져 움직였다.
몸짓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손을 잡고 원무를 추는 어느 화가의 그림이 겹쳐졌다.
그때의 낯선 장면은 내 머릿속에 한세상의 축소판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는 해안선을 따라 걸었다.
오후의 태양이 어깨와 목덜미를 뜨겁게 내리쬐었다.
바람이 자주 불었다.
땀이 무척 많이 나서 오히려 시원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우리 앞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사진에 담았다.
나와 경이의 키가 비슷해 보였다.
도로로 나와 인도교를 건넜다.
소무의도로 들어가 카페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우리는 2층 창가에 앉았다.
만조가 되어 순식간에 갯벌까지 물이 차올랐다.
바람이 불어 빛을 받은 잔물결이 팔딱거렸다.
작은 물고기 떼가 꼬리치며 군무를 추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