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완성되는가?
존 로크는 17세기 후반 영국 철학자입니다.
철학을 깊게 이해하진 못하지만, 우연히 만난 철학 서적은 종종 '나'에 대한 존재와 '사회'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더라고요. 나에 대한 이해는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때로는 심리적인 고통의 원인을 철학적으로도 해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글 서두에 언급했던 로크는 인격이 갖는 '자기동일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학자인데요.
''나'란 존재는 어떻게 보여지는 가?'에 대한 고민의 이해를 도와주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오늘 내용은 <대학생이 알아야 할 리얼철학> 이라는 내용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로크는 기억의 지속성을, 근대적 법질서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인격을 필수불가결한 자기동일성의 근거로 보았다.'
말이 참 어려운데요.
범죄를 저질렀 던 과거의 '나'와 법정 앞에 서 있는 '나'가 동일하다고 인식해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서는'어떤 의도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 지'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이죠.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전 과거의 '나'가 저지른 행위에 대해 처벌을 받는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작 <수단의 굶주린 소녀> 라는 사진입니다.
한번쯤은 어디선가 마주친 기억이 있는 사진이실텐데요.
이 사진의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도 알고 계신가요?
1. 카터는 난민캠프에서 <독수리와 소녀>를 촬영하여 내전 상태가 있는 수단의 참상을 보도했다.
2. 카터는 <독수리와 소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한편, 각 방면에서 자신의 보도 자세를 비난받았다.
3. 카터는 다른 사람들의 이해구하기를 단념하고, 자살했다.
1~3에 이르는 과정에서 카터는 어떤 법률도 위반하지 않았고, 기억의 지속성도 잃지 않았습니다. 일관되게 인격으로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했죠.
하지만, 1번의 카터와 3번의 카터 사이는 심경의 차이가 있었을 것입니다.
2단계가 전환점이 되었겠죠.
이 때 '정체성의 위기'가 일어났다고 추측할 수도 있습니다.
게오르그 헤겔이라는 철학자는 '자기의식은 타인을 필요로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발언과 행위에 대해 타인의 반응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이나 행위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 자신이 생각한 그대로의 자신으로 인정받았는 지를 알 수 있고, 따라서 자기의식은 다른 사람의 승인으로서 성립되는 것이다고 보고 있습니다.
1번의 카터는 내전 상태를 알리는 종군기자로서 퓰리처상을 받아 훌륭한 사진 기자였을 것입니다.
2번의 카터는 스스로 정의한 종군기자의 모습이 마치 명예를 얻기 위해 소녀의 목숨을 바친 사진기자가 되어버렸죠.
소녀를 공격하지 않는 독수리, 주변에 어머니가 지켜보고 있었던 주변 환경은 관심이 없고, 오로지 그 상황에 대한 정체성 공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과 타인의 시선의 간극이 큰 고통으로 만들어낸 것이죠.
철학이 인간의 심리를 해석해주는 학문으로 생각한다고 글을 시작했었는데요.
직장 동료간에도, 친구 관계에서도 이 정체성 차이를 승인받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받고 고통스로워하기도 하는 제 모습이 생각났어요.
인간의 섭리로 해석이 되더라고요.
타인에 의해 승인받기 바라는 점이 스스로를 작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의 증거로도 보이더라고요.
같은 고민과 고통의 감정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