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다양성을 위협이 아닌 자연스러움으로
도시 생활의 직접적인 접촉은 사람들이 서로 공통점을 인식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이 아닌 자연스러운 차이로 여기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관대함의 밑바탕을 이루는 심리 현상은 '접촉 이론'이 잘 설명해준다.
서로 다른 집단들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 접촉하고, 상호작용하고 협력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경우, 일반적으로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여타 크고 작은 분열이 감소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내일을 위한 역사 중 관대함을 키우는 방법, 로먼 크르즈나릭>
접촉은 인류에게 동질감을 바탕으로 같은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게 한다.
그렇다면, 반례로서 인류에게 접촉이 없다면, 물리적 경계뿐 아니라 다른 존재로서 인식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역사적으로 종교,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인류가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공통 언어와 종교의 자유 덕분인 것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주효했던 것은 도시생활에서 강요하다시피한 친밀함이었다.
문득, 최근에 우연히 봤던 기사 하나를 읽었다.
과거에는 종교, 문화적으로 차이가 있는 인류가 공존하기 위해 도시생활을 하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친밀함이 유지되었다고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접촉을 단절함으로서, 서로의 인생에서 접촉의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공존보다는 작은 생태계를 구축을 하려하고 있다.
안드로이드폰의 범용성보다 애플의 폐쇠적인 생태계로 변화하는 것만 같다.
이런 변화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애플의 성공처럼, 작은 생태계에서 만들어내는 혁신이 가능할까?
하나의 검증 사례(부동산 매매가와 같은)는 상급지를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로 교육 입지가 크게 반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생태계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다음 세대의 문화와 역사를 만들어나갈까?
만약, 내가 자녀가 생긴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애플이 되어야할까, 안드로이드가 되어야 할까,
안타깝고 위험한 현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폐쇄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추종하는 슈퍼 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슈퍼팬이 되기 위한 조건도 비교적 어렵지 않았다.
인간의 접촉 경계를 작게 가져간다는 것은 다시금 차별의 역사를 되새기게 될 것이다.
인종, 연령 등을 넘는 사회적 차별이 또 다시 생겨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