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일흔 한 번 째 글 - 인쇄술

인쇄술은 어떻게 양극화, 박해, 폭력을 부채질했나

by 이준
최초의 기계식 인쇄기를 만들어 180권의 라틴어 성서를 인쇄했을 때, 그의 발명품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이바지할 신의 선물이라고 칭송받았다.
그러나 인쇄기에 내린 교황의 축복은 이내 저주로 판명됐다. 필경사가 일일이 손으로 써서 사본을 만들던 오래된 필사 문화가 사라지고,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진 인쇄기가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놓고 도전하는 이단의 교리까지 퍼뜨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이상 마녀를 믿진 않지만, 마녀사냥이 낳은 낚시성 유혹은 지금도 여전히 소셜미디어 뉴스피드에 넘쳐나는 자극적 제목과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ets, '여러 관점이나 사실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대립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나,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대안적 사실'이라 표현해 논란을 일으킨 뒤로 신조어처럼 쓰임)
선의의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사회 양극화를 초래할 잠재력을 품고 있음을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도구를 만들고 나면, 그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

- <내일을 위한 역사, 로먼 크르즈나릭>'



과거 인쇄술은 중세시대의 소셜 채널에 가까웠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준다는 관점에서, 하나의 네트워크가 되었으며, 그래서 '글을 빠르게 쓸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의 일부였다.


1명의 글은 헛소리일지언저, 10명의 글은 소문이 되고, 100명의 글은 사실이 된다.

인터넷이 일상화된 이래,넷상의 헛소리와 인격을 숨긴 날카로운 말들은 상대방을 상처입히고, 나아가 현실 세계의 존재에 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접촉을 통해 인류가 가까워질수록, 네트워크상에서 사실과 진실을 구분할 능력이 필요하다.

오히려, 글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의 실타래를, 잘못 엮은다면 다시 인류는 멀어질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