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30분 남았다.
2023년이 30분 남았다.
거참, '왜 내 삶은 왜 이렇게 괴로울까' 생각했던 한해가 끝났다.
어느 날 사주가에게 저 말을 꺼냈을 때, 삶이란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것이라며, 힘들어도 잘 버티면된다했다. 그리고 버틴 건지 시간에 버텨진건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산다.
가장 큰 일을 뽑으라면, 역시나 회사가 바뀌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바뀌면서 환경이 변하고, 이야기 주제가 바뀌며 고민거리가 바뀌었다. 어디가 더 힘들고, 덜 힘들고, 후회하고 안하고는 이제 무의미하니 차치하고,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되새겨 본다.
조금 더 나이 숫자가 작았던 때는, 내가 조금은 남들보다 특별한 줄 알았다. 그래서 난 언젠가 특별한 일을 할 것 같았고, 언젠가 난 늘 흥미로워하며 꿈꾸며 살 줄 알았다. 그 때는 미래를 살았다. 지금 내가 이것을 하면, 나중의 나는 무엇을 하겠지. 그 때 난 정확히 무엇인 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나'를 즐거워하며 살겠지라며 그 보이지 않는 특별함이 흥미로웠다.
언제부터인가,
나 스스로 특별함에 흥미를 잃었다. 아니, 정확히는 특별함의 정의가 바뀌었다고 할까. 과거 특별함은 무언가 반짝이며, 재능으로 세상의 스포트라이트 중심에서 시선을 받는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특별함이란 재능보다 노력과 열정의 산물이라는 것에 가깝다. 근면, 성실 그 평범하고도 모두가 노력하면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은 그 단어는 생각보다 무겁고, 손에 쥐기엔 매우 까다로운 존재였다.
그 까다로운 존재를 손 위에 자유롭게 두는 것. 재능보다 큰 무게를 거머쥐는 것. 특별함이란 그런 것이었다. 끊임없이 철을 두드리며 날카로운 칼을 만드는 것. 그 칼이 언제 쓸모있을 지는 몰라도 손에 쥐었을 때 더 큰 빛을 바라도록 하는 것. 그 두드림이 특별함이었다.
또 한 해가 간다.
잃어가는 흥미에 사라진 미래는 오늘을 살게 만든다. 내일의 내가 기대된다기 보다 오늘의 나를 온연히 잘 보내는 것이 도전이다. 철을 제련하는 것은 미래의 내가 아니라 오늘을 잘 보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 압박감과 지루함을 이겨내기 쉽지 않다.
무언가 엄청 위대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위대한 일이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니까. 특별하지 않더라도 난 내가 여전히 쓸모있는 존재이기를 바란다. 사회적인 쓸모를 넘어 누군가에게 '나'란 존재가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작은 축이라도 말이다.
무언가 재밌는 일이 있으면 이야기해주고 싶은 사람,
흥미있는 일이 있으면 같이 해보고 싶은 사람.
어려운 일 있으면 같이 말해보고 싶은 사람.
슬픈 일은 같이 털어놓고 싶은 사람.
떠나자할 때 불러보고 싶은 사람.
작은 추억이라도 나눠 본 기억을 여전히 품고 있는 사람.
2024년.
특별해지기 보다 서로의 특별함을 알아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다시 더 큰 흥미를 찾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