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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왕초보의 편지

브런치와 함께 롱런을 꿈꿉니다

by 금강이 집사


브런치 10주년 팝업에 전시되는 100편의 글에 이 편지가 포함됐습니다.





브런치 스토리에 첫 글을 쓴 지 일주일도 안된 왕초보예요. 교과서보다 소설책을 더 많이 보던 학창 시절에 소설가를 꿈꾸기도 했지만 대학 때 영화에 빠지면서 꿈이 바뀌었어요. 2007년 한 시나리오 공모에서 수상하면서 영화, 드라마 업계에 발 들인 지 19년 차입니다.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결과물을 대중에게 선보일 수 있는 이 업계에서 무릎이 꺾이는 별별 일 다 겪었고, 한동안 좌절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적 여러 번이었어요. 그러다 몇 년 전, 전혀 몰랐던 동물 반려 세계를 접하면서 늪에 빠져 있는 시간이 확연히 줄었어요.


너무 점잖아서 '선비'라 불리는 금강이. 은평한옥마을에서


제게 그 세계를 알게 해준 건 친구네 개 '금강이'예요. 저는 ‘간헐적 반려인’입니다. 친구에게 일이 생기거나 제가 금강이를 보고 싶으면 종종 금강이를 반려합니다. 금강이와 산책할 때 대형견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불편해 한적한 길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다 처음 가본 길들에서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광을 만나기도 합니다.

산책하다가 발견한 길들 말고도 금강이 덕분에 처음 가본 길이 여럿이에요. 국립공원 반려견 동반 시범사업에서 반려견 크기 제한을 없애 달라는 ‘청원’도 해보고, 언론 방송사에 보도 자료 수십 통, 반려견 관련 유명인에게 DM 수백 통을 보내고, 경찰서에 가서 손 덜덜 떨면서 ‘집회 신고’도 해보고, 결국 규정이 바뀌는 신기한 경험도 했어요.


시범사업 시작점인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앞. 금강이 1견 시위가 되지 않게 해준, 너무나 감사한 소형견 '로미'


국립자연휴양림 운영 아이디어 공모에 "차별 없는 모두 행복 휴양림"이라는 제목으로 반려동물 크기 제한을 없애고 동물을 싫어하는 분들을 배려해 “반려동물 동반 가능 주간”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서 뽑혔고 관련 시범사업이 만들어지는 것도 보게 됐어요. 철도청의 반려동물 동반 열차 이용 규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 달라는 청원도 했고 반려동물 관련 자격증도 땄어요.

작년에는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마물’이라는 작품으로 수상했는데 이것도 금강이 덕분이에요. 십여 년 전 쓰다가 막혀서 방치해 뒀던 이야기를 금강이 때문에 관심 갖게 된 세계에서 돌파구를 찾아 완성했으니까요. 저는 제 삶에도, 제가 만드는 이야기에도 ‘재미’와 ’ 의미‘를 중요시합니다. 금강이 덕분에 알게 된 의미 영역은 앞으로 제가 쓰는 글과 제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칠 거예요.


어느 한여름 날 산책 후, 흔치 않은 대형견 실내 동반 가능 카페에서



골든 레트리버와 진돗개 믹스인 금강이는 생김새 때문에 안내견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아요. 금강이는 그런 안내견은 아니지만 제 ‘인생 안내견’이에요. 금강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길, 경험하지 못했을 길, 엄두도 내지 않았을 길들을 앞으로도 걸어갈 겁니다.

‘천국에서 온 다섯 잎 클로버 편지’도 금강이가 안내해 준 길을 따라오다가 쓰게 됐어요.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반려인에게 써 드리는 편지인데 반려동물 자격증 교육 과정에서 이 기획이 떠올랐어요. 편지를 엮어서 책을 내야겠다 싶어서 펫로스 경험자를 찾는 홍보를 나름대로 했지만 사례가 몇 모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편지를 공개하면서 사례를 계속 모으려고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했어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이 책을 꼭 출간할 계획입니다. 저는 아직 여러 사정 상, 한 동물을 전적으로 반려하지 못하지만 용기 내 한 생명을 반려하고 그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 반려인들을 존경합니다. 그분들이 펫로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구조와 돌봄이 필요한 동물들을 장기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이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천국에서 온 다섯 잎 클로버 편지’ 1권, 2권, 3권...... 연작 출간을 꿈꿉니다. 호호할머니가 되더라도 자판 칠 힘만 있다면 계속 브런치북 연재와 출간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연재 과정에서 이 편지를 쓰는 제 진심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을 계속 만나고 싶습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 연락을 늘 기다리겠습니다.


활자가 영상에 맥없이 밀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활자 시대의 종말"이라는 말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활자 세계 안에서 천천히 음미하고 사색하고 위로받는 분들은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 이상 존재할 거라고 믿습니다. 어느덧 10년이 된 브런치 스토리가 점점 더 깊어지고 단단해질 20년, 30년, 40년....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100년, 200년 후에도 브런치 스토리가 건재하기를, 활자 세계가 건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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