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는 겉모습만 다를 뿐, 같은 꼰대다.
처음에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전자레인지가 없었다.
그래서 임대인 사장님께 입주 전에 전자레인지를 넣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넣어주신 전자레인지.
이건 도저히 쓸 수가 없는 전자레인지. 몇 년 됐는지도 모르겠는, 도저히 청소를 해도 벗겨지지 않던 겹겹의 세월의 흔적.. 이정도면 안 쓰는 전자레인지를 나한테 버린거나 다름 없는 수준이었다. 결국 전자레인지를 사비로 산 후, 넣어주신 전자레인지를 집 앞에다가 내놨으니 가져가시라고 했다.
그러니 하시는 말.
"왜 전자레인지에 문제 있었어요?"
"도저히 쓸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리 청소를 해도 때가 벗겨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새로 샀다니까 하시는 말이 더 가관.
"잘했어요."
아 네…..
며칠 전부터 싱크대에서 물이 줄줄 세기 시작했다. 싱크대를 쓸 때마다 물이 줄줄 세길래 임시방편으로 물이 세는 곳에 걸레를 깔아놨다. 아 임대인 사장님하고 대화하기 싫은데. 귀찮은데. 하던 찰나 부모님이 오셨을 때 부모님께서 임대인 사장님한테 말씀하셨나 보다.
그날 저녁 임대인 사장님이 싱크대를 손보러 오셨다.
그런데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였다. 싱크대에서 물 나오는 곳이 샤워기 처럼 되어있는데 그곳의 연결 부분이 헐거워져서 그런 거였다. 그 부분을 단단히 조이니 물은 더 이상 세지 않았다.
임대인 사장님은 장황하게 설명을 하시기 시작했다.
"진짜로 싱크대가 터졌으면 이렇게 물만 세지 않아요. 완전 물바다가 나고 난리가 나지. 그러면 아래층에도 문제가 생기고 블라블라블라........."
"아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시는 말.
"그런데 부모님이 이런 쪽 잘 안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이것도 몰라?"
네? 저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다른 임차인과 헷갈리신 거 아닐까요...
그리고 왜 갑자기 반말하시나요... 저 서른여섯쨜인데여...
나는 친근함의 표시인지 뭔지 모를 말들로 선넘는 사람을 극혐한다. 내 바운더리를 넘는 사람이 싫다.
임대인 사장님은 나를 볼 때마다
"공부 잘 돼 가요?"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고 물으신다.
처음에는 살갑게 대답을 했었는데 이제는 그 물음이 반갑지가 않아서
"넵!"하고 금방 발걸음을 옮긴다.
며칠 전에는 한 외국인이 복도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길래 무슨 일이냐 물으니 오늘 하룻밤 묵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임대인 사장님한테 전화를 걸어서 일을 해결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더라.
요즘에는 이렇듯 기본적인 인사를 안하는 사람들이 많은거 같다. 그들은 아예 고마워할 일, 미안해야할 일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는거 같다. 알고서도 안하는게 아니라 정말 몰라서 안하는거 같다.
내가 전에 살던 집의 임대인 분은 처음 계약한 날에 말씀하셨다.
"혹시 밤에 아프거나 응급실 가야 할 상황 있으면 저한테 연락해요. 전에 살던 아가씨도 밤에 갑자기 아파서 나한테 연락을 해서 내가 병원에 같이 갔었어. 혼자 살다가 그런 일 생기면 위험하잖아요."
그리고 그분은 나를 볼 때마다 "공부 잘 돼 가냐고 물어보는 거는 불편할 거 같고 어련히 열심히 하고 있을 테니 괜히 안 물어볼게요." 하시며 손에 한가득 사탕을 쥐어주시던 분이셨다.
그리고 내가 계속 시험에 낙방하자,
"우리 집 터가 안 좋나... 열심히 했는데... 내가 미안하네..."라고 하셨다...
내가 전에 살던 집의 임대인 사장님이 참 특별한 분이셨던 거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임대인 사장님은 어쩌면 보편적인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묵묵히 공부를 한다.
말투 하나하나에 긁히지 말자.
어차피 그냥 다 지나가버릴 일.
짜증 내지 말자.
화내지 말자.
마음을 다스리자.
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