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응원받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
나는 K-장녀다. 언제나 모범생이었고, 말썽 부린 적 한 번 없고, 엄마, 아빠에게 혼난 적도 손에 꼽는다. 항상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철저히 계획된 일이었고, 매일 앞만 보고 달렸다. 로스쿨 1학년 여름방학 때였나? 시험만 보면 지나치게 긴장하고 과호흡이 오고 시험 전에 화장실을 대여섯 번을 가는 나의 상태를 보아하니 변호사시험 전에 이를 고쳐야 할거 같아서 엄마와 대학병원 정신과를 찾았다. 그때는 개인 병원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무작정 대학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어떻게 바로 대학병원 정신과를 올 생각을 했냐며 공부할 때는 당연히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라고 별 문제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검사는 받아보라고 했다. 뇌파를 측정하는 장치를 머리에 덕지덕지 붙이고 무성영화를 틀어줬다. 찰리 채플린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이런저런 검사들을 하고 몇 주 후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다소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언제 머리를 크게 다친 적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 적 없다고 답하니 뇌파 검사 결과 뇌가 온통 빨갛다고 말했다. 빨간 것은 안 좋은 뇌파가 나오고 있어서 그런 거고 아주 중한 우울증 환자의 뇌와 같은 상태라고 하셨다. 진료실에 나 혼자 들어갔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듣고 진료실에 나와 엄마에게 의사가 한 말을 전했다.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그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만 물었다. 엄마의 반응에 내 마음속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최근에 정신과에 다녀온 이야기를 엄마에게 할까 말까 고민했다. 어차피 엄마는 별 반응이 없을게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망감에 더 힘들어질까 봐 얘기를 안 하고 있다가 그래도 엄마가 내 상태를 알아야 할거 같아서 전화로 내 상태를 알렸다. 엄마는 역시나 공부가 끝나면 해결될 일이라고 하며 지금 당장 나의 힘듦을 헤아리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또 너무 큰 기대를 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괜찮아. 힘들지?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렸을 때 엄마는 아깝다고 했다. 괜찮아. 충분해. 이미 너 자체로 충분해. 란 말은 엄마의 언어에는 없는 것인가.
집 안에 한 명의 수험생이 있으면 온 가족이 수험생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나는 집을 떠나 살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공부하는 수험생보다는 덜하겠지만 부모님이 항상 마음 졸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은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보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려 하는 분들이라는 것 또한 이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따뜻한 말 한마디를 받고 싶은 사람은 부모님이다.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는 걸까? (이런 부모님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지금 내가 공부에 잘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공부를 한다. 공부 외적인 것은 결국 다 잡생각이기 때문이다. 잡생각을 얼른 흘려보내야 한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도 참 고생 많았다고, 괜찮다고,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