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인생 시험

하루 시간표 & 고시촌 풍경

by 오뚝이



종종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블로그에 들어가 눈팅을 하는데 어떤 분이 변호사시험은 마치 '인생 시험' 같다고 쓴 것을 보았다. 인생 시험. 내 인생을 총체적으로 테스트하는 시험. 그리고 내 인생을 걸고 치는 시험.


이는 비단 변호사시험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고시 공부가 그럴 것이다. 인생 시험이 뭐냐. 그렇게까지 거창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인생 시험이라는 표현에 공감한다. 고시 공부란 것은 공부만 열심히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본성, 욕구, 욕망을 억누르고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하는 것이다. (거의 수녀님..)



심지어 학원에서는 연애금지령(?)을 내리기도 한다(원장님이 오티 때 구두로 말씀하심. ‘학원에서 연애하려고 하는 남자들은 찌질한 놈들이고, 그 남자들과 연애하려고 하는 여자들도 찌질하다’ 비웃는게 아니라 진짜 너무 웃겨서 워딩을 그대로 적어본다. 사실 이는 고시판의 국룰인데 원래 연애하던 사람은 공부하는 동안에는 절대 헤어지지 말고, 원래 짝이 없는 사람은 절대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대학원 졸업한 수염 난 성인들에게 원장님의 말씀이 들릴 리가 없음… 아무튼 한 눈 팔지 말고, 절박하게 공부하라는 말씀이시겠지(나는 원장님을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꼭 밝히고 싶다.).



또한, 방대한 양을 줄이고 줄여 시험 전날에 1 회독할 수 있게 만들려면 평소에 절대적인 공부량을 지켜야 한다. 벼락치기란 통하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매일매일 꾸준히 성실했냐를 시험하는 시험인 것이다. 속사정 없는 사람은 없을 텐데 다들 자기만의 말 못 할 속사정을 가지고 그저 묵묵하게 공부를 한다. 해야만 한다.


14회 변시 시간표. 내년엔 1월 6일(화)부터 시험이 시작된다.


시험 당일에는 또 어떤가? 아프면 안 되고, 시험 중간에 화장실에 갈까 봐 물도 벌컥벌컥 못 마시고, 점심도 죽 같은 소화가 잘되는 밥으로 골라 먹고, 시험이 끝나고 해가 다 진 후에야 집에 돌아와도 바로 잠들지 못하고 다음날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정말 체력이 좋아야 한다. 이 정도 쓰고 보니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공부를 시작했나 싶은데, 애초에 부귀영화는 바라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내 앞가림을 잘하고 싶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알콜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운동 중독인 내 친구 놈은 헬스장 가는 횟수를 줄였다. 그럼에도 시간은 너무나 빠르게 흘러가고, 사람은 무조건 먹고, 자야 에너지가 생기니 그 시간을 제외하고 눈 뜬 시간 동안 온전히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데,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말이 쉽지 막상 행하기는 어렵다.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하나 하자면 예전에 함께 공부하던 사람을 좋아했었는데 그때 공부에 집중이 안 돼서 내 심장을 뜯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가 되고 싶었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고 말았다(잘 지내니?). 그때 다짐한 것은 모든 사람을 돌로 보자.이다.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누가 나의 마음을, 내 멘탈을 흔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극단적인 결심을 한 데에는 내 멘탈이 쿠쿠다스멘탈이기 때문. 바사삭.



그렇지만 수험 생활 속에도 소소한 행복은 있다. 내가 준 귤 한 봉지가 비타민과 과자가 되어 돌아오기도 하고, 항상 가던 밥집 사장님이 기분 좋은 날은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시기도 하고, 교실 문에 비가 온다며 어떤 학생이 포스트잇에 우산 챙기라고 적어놓은 것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질 때도 있고(누굴까? 그 천사는?), 공부가 잘 되는 날은 엔도르핀이 돌고 하나도 피곤하지가 않다.


오늘부터 나의 철칙은 7시 30분 기상

8시 책상에 앉기

11시 30분 점심

1시 오후공부

5시 10분 저녁 - 긴 산책(산책하며 머리로 문제 풀기)

7시 30분 저녁공부

12시 잠


지금부터 딱 5개월. 못 할거 없다.

달리자.

학원 옥상에 써있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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