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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에서 살던 원룸의 짐을 뺐다.
계단이 없어서 삼층까지 짐을 가지고 내려오느라
땀이 뻘뻘 났다. 책을 다 버렸다. 짐을 다 빼고 내려오니 그 새 폐지 수거하시는 분들이 책을 가져갔나 보다. 책이 사라져 있었다. 나의 손 떼 묻은 책. 마지막에 볼 곳에 붙여놓은 인덱스와 포스트잇이 왕창 붙여져 있는 문제집과 암기장과 온갖 자료들. 새삼 열심히 했구나 싶었다.
시험이 끝나고 계속 잠만 잤다.
이틀 내내 잠만 잤다.
체력이 0이 된 거 같다.
필히 체력을 키워야 될 거 같다.
시험이 끝나니 더 우울하다.
신림에 간 김에 정신과를 찾았다.
선생님께 말했다.
이번에 안될 거 같다고..
마지막 날 시험을 너무 못 봤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이번에 되면 되는 대로 하면 되고
설령 안된다고 해도 이게 인생의 끝이 아니고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기 마련이라고.
정말 그럴까?
한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릴까?
내가 좀 더 성숙한 인간이면
내가 지금보다 좀 더 어른이었으면
지금 이 시간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일상에 만족하며 소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며
살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이 우울이 언제쯤 사라지고
노력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까.
제발 좀 편해지고 싶다.
다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