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꿈일 거야.
나는 합격자 발표날 집에 있어본 적이 없다.
집에 있으면 시간은 안 가고 더 불안하고 가족들에게 괜히 심술을 낼 거 같고 다리만 계속 덜덜덜 떨고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발표는 매년 저녁 6시경에 난다. 정말이지 이놈들은(누구라고 말은 안 하겠다.) 발표날마저도 사람 피를 말린다.. 좀 일찍 발표하면 안 되는 거니..)
세 번째 합격자 발표날.
나는 명동성당 안에 앉아있었다. 발표 시간에 맞춰 결과를 확인했다. 불합격. 명단에 없는 동기들한테 연락을 했다. 그러고 나서 사당에서 만나 술을 진탕 마셨다.
네 번째 합격자 발표날.
나는 다니던 대학교에 갔다. 거기서 미사를 드리고 친한 신부님과 카페에 가서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나서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를 보는 사이에 발표가 나서, 합격이라면 아마 축하연락이 와있을 테고 불합격이라면 내 휴대폰은 조-용하겠지 하며.
영화 시작 삼십 분 전.
상영관에 내가 예매한 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라고 떠있었다. 뭐지? 하며 직원분에게 물어보니 다음날 영화를 예매한 거였다. 젠장. 얼른 환불을 받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향했다. 어디로든 가야만 했다. 나는 계속 움직여야 했다. 조금이라도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발악이었다.
교보문고에서 한 책이 눈에 띄었다.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둡다.’
저녁 6시가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6시 10분, 6시 20분, 6시 30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어떻게 됐냐고. 나도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6시 45분이 됐다. 합격자 명단이 올라왔다. 수많은 이름 중 내 이름은 없었다. 애써 마음을 다독이려 했지만 그날 또 나의 하늘은 무너졌다. 와장창창.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떨어졌어. 엄마 미안해.’.
엄마는 얼른 집에 들어오라고 했다. 나는 저녁도 안 먹고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뭐라도 먹고 들어가겠다고 했다.
카페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는데 불합격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한바탕 울었나 보다(그 친구는 원래 울보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마지막에는 우리는 이번에 합격하면 돼! 힘내자! 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나는 희한하게 불합격할 때마다 눈물이 안 났다. 콧물도 안 났다. 차라리 펑펑 울고났으면 마음이 덜 답답했으려나 싶다. 그냥 한숨만 푹푹 나왔다. 하………. (욕 생략)
집에 가서 아빠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아빠는 그러게 잘 좀 하지라고 했다. 서운할 수도 있는 말인데 불합격한 충격이 너무 커서 그런지 타격이 1도 없었다. 그러게. 이번엔 잘할게. 하고 내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 합격자 발표날에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제발 합격해서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리고 싶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