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캄보디아에 있는 NGO에서 근무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 나이는 이십 대 후반이었다. 얼른 취업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겼다. 캄보디아에서 나름 홍보업무를 했던 터라 사기업의 홍보팀, NGO 홍보/마케팅팀, 사회적 기업의 홍보팀 등에 지원했다. 내가 쓴 자소서만 해도 수십 개가 넘을 것이다.
서류 전형에서부터 떨어졌을 때도 있고, 인적성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도 있고, 최종면접에서 떨어졌을 때도 있다. 최종면접을 본 날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입김이 폴폴 나던 겨울이었고, 오랜만에 굽이 있는 검은색구두를 신은 날이었다. 면접을 보고 너덜너덜해져서 한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긴장이 풀리고 나니 발이 너무 아팠다. 발을 보니 발 뒤꿈치가 다 까져서 피가 나고 있었다. 내 모습이 처량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 NGO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캄보디아 현장에 있을 때와는 달리 100% 문서작업만 하는 현실 속에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어느 날 일을 하는데 갑자기 캄보디아에서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생각났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익변호사단체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홈페이지: www.kpil.org) 변호사들이 쓴 책인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이다.
캄보디아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도 한국에 돌아가서의 진로고민으로 머리가 아팠을 때여서 '와 법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이런 실질적인 일을 할 수 있구나'하며 감명을 받았었다. 그때 처음으로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원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내가 과연 그 공부를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이런 일을 하는 멋있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완전히 잊고 있다가 어느 날 번개를 맞은 듯 갑자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다니던 NGO를 그만두고 로스쿨 입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변호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몰랐다. 그리고 태어나서 변호사를 만나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변호사단체에서 인턴을 하며 알아보기로 했다. 운 좋게 한 변호사단체에서 인턴을 하게 됐다.
그곳은 지금도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공익법센터 ‘어필’이다. 그곳에서 약 8개월 간 인턴으로 근무하며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구체화했다(‘어필’은 취약한 이주민과 외국인의 인권 옹호를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단체로, 법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활동하는 공익변호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곳이다. 출처: 어필 홈페이지 apil.or.kr).
우리나라에 로스쿨은 총 25개가 있는데 그중 2 곳에 지원할 수 있다. 가 군에 한 곳, 나 군에 한 곳. 우여곡절 끝에 가 군에 지원한 로스쿨에 추가합격되어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고통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하하하.
내가 변호사가 된다면 일단은 3~4년 정도는 로펌에 취직해서 송무 업무를 배우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먹고사니즘이 중요한 사람이기도 하고 지난날 공부를 하며 가세가 기울었기 때문에(농담 반, 진담 반) 일단 나 하나를 먹여 살릴 수 있고 저축도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변호사 업무를 어느 정도 알게 됐을 때 나의 전문분야를 찾아볼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겠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그날을 위해 나는 오늘도 공부를 한다. 내일도 공부를 하고 모레도 공부를 한다. 하하.
오늘 두 편을 올렸으니 스스로 곤장을 두 번 칠 것이다.. 껄껄.. 그래도 주말이니깐 살살 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