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힘들었던 시간. 극한의 고독의 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오뚝이


수험생활 하면서 언제 가장 외롭냐, 언제 가장 고독하냐라고 물으신다면 단연 시험 전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지방에서 로스쿨을 다녔기 때문에 초시, 재시, 삼시는 익숙한 공간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좋을 거 같다고 판단하여 자교에서 시험을 보았다. 가지고 내려가야 할 짐, 책들이 너무 많아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이삿짐센터 수준.. 부모님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 정말 감사하게도 내가 로 3 때 지냈던 원룸 주인아주머니께서 변호사시험 기간 동안 그 원룸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주셔서 세 번 다 그곳에 머물며 시험을 쳤다. 엄마, 아빠랑 짐을 내리고, 엄마랑 한 번 뜨겁게 포옹을 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나 홀로 남은 원룸방.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듯한 고독의 방.


이제는 되돌아갈 수도 없고, 오직 내 힘으로만, 나 혼자서의 싸움을 해야 한다. 그동안 공부한 것들을 머릿속에 쑤셔 넣다 보면 금세 새벽이 되어있었다. 그 적막함. 그 외로움. 긴장감. 두려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극한의 고독함이었다.


네 번째 시험 때는 굳이 멀리 가지 말고 서울에서 시험을 보기로 했다.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준비가 됐냐가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부모님을 고생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코로나 전에는 전국에 7개의 고사장밖에 없었는데 코로나를 겪고 나서 전국 25개 모든 로스쿨이 시험장이 되었다. 10월 경에 원서접수를 하는데 그때 원하는 고사장을 3 지망까지 쓸 수 있다. 나는 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시험장을 썼는데 떨어지고 2, 3 지망으로 지원한 학교도 모두 떨어져서 엉뚱한 곳에서 시험을 치게 됐지만 어쨌거나 서울 내에 있는 로스쿨에서 시험을 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삼지망 모두 서울권 학교를 쓴 사람이 부산에 있는 학교에 배정된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았던 것이다.


내가 시험을 보는 학교의 기숙사에서 지내려고 했는데 학교 측에 연락해 보니 2인 1실이고 그마저도 소수의 방만 개방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근처에서 숙소를 잡는다고 나한테도 그러라고 했다. 그래서 시험장 근처에 숙소를 잡고 시험 전날 숙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였다. 로 3 때 시험 중간에 엄마를 부른 학생들도 있었고 처음부터 엄마와 함께였던 동기들의 말을 들어보니 도시락 말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면서 시험을 보니 밥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엄마와 함께니 훨씬 심리적으로 안정감이 있어서 좋았다고 하여 엄마에게 부탁해 시험기간에 함께 있어달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엄마와 함께니 외롭지도, 고독하지도 않았고 엄마가 아침마다 버스 정류장에 나와 배웅을 해줘서 긴장감도 훨씬 덜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ㅠㅠ)


5일간의 대장정이 끝나고 본가로 돌아가는 그 길. 마냥 시원하지는 않고 허탈함이 더 컸던 순간.


이번에는 내 인생 마지막 시험이니 정말 홀가분하게, 시원하게 시험을 보고 나오고 싶다.


이제 정말 끝이다.




첫 번째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두 번째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세 번째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네 번째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그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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