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폴리스 박물관+파르테논 박공벽에 대한 고찰
어차피 한번사는 즉흥적인 인생사
이틀전 계획대로라면 나는 코린도스를 거쳐 미케네에 있었어야 했으나, 어제 계획대로라면 미케네 또는 델피를 향해 가는 길이었어야 했지만, 오늘 늦은 아침 아테네에서 눈을 뜬다.
일찍 일어나면 델피나 미케네를 당일치기로 다녀와야지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지만 사실 내가 일찍 일어나지 않을것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근데 나중에 델피를 다녀와보니.. 이날 어디든 멀리 갔다왔으면 큰일날뻔 했다. 크리스마스 로도스섬 셀프감금 모드를 버티기 위한 식량조달이 불가능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어나서 그냥저냥 먹을만했던 조식이 포함되어있어서 빵맛...보다는 꿀맛 잼맛으로 식사를 끝내고 호텔을 나섰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앞으로의 짐보관이나 다른일정들이 뱅글뱅글 돈다. 그래도 뭐 볼꺼는 봐야되지 않겠냐.. 계속 돌아다니다 보면 뭔가 머릿속에서 불이 번쩍 하면서 좋은 생각이 나타나 줄 것이야. 일단은 기운내서 나가보자.
일단 첫날 유로 자전거나라 도보투어를 하면서 나중에 따로 한번 가보라고 했던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 근처에 있다. 숙소를 구태여 교통의 요지인 신타그마쪽을 고집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삼각형 부분의 조각들이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3층에서 파르테논을 바라보는 전망이 또 엄청 멋있다고 하니 안 갈 이유가 없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feat. NO PHOTO)
이런 식의 관람형태는 사실 중국 시안에서 먼저 본건데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탁월한 선택인듯. 처음 체험해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는데. 과거 유적 위를 이렇게 발로 걸어볼 수 있다는 신기함. 최근 우리나라 서울시청 내부의 군기시유적지도 요래해놓은거 보고 살며시 미소지었던 기억도 있다.
근데 1층에서는 넘나 사진찍지 말라고 감시하는 분들이 많아서, 그분들 진짜 무섭게 관람객들을 저지해서 사진이 없다. 간간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형태로만, 그리고 완전 빛의 속도로 노플래시로 훅 찍어서 제대로 수전증 인증되는 몇 장이 전부다. 다른 박물관과는 다르게 도록을 판매하고 있었던게 그렇게도 사진촬영을 막았던 이유가 아닐까 싶었던. 근데 사실 여기보다는 고고학 박물관에 더 유명한게 많았던 것 같은데. 거기서는 사진 찍어도 뭐라고 안했는데..
전시작품은 조각상들이 주로 있었고 고고학 박물관에서 봤던, 그리고 검색해서 찾아보고 그 뜻을 이해하게 되어 신기했던, 보면서 "이거 이집트꺼 아니야?" 했더니 정말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쿠로스와 코레- 소년조각상, 소녀조각상들도 있었다.
고고학박물관과 비교해서는 그 양이 물론 적긴했지만 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파르테논에서 주워온 것들이 대부분이고 고고학박물관은 이것저것 짬뽕해놓은 것들이므로 규모가 다른 것은 당연쓰. 그리고 더 신식이고 건물도 깨끗했지만 한국어 오디오가이드만 있으면 참 완벽했을텐데. 그건 좀 아쉽다. 그리고 최근 박물관을 하도 여러군데를 다녀서 기억이 좀 짬뽕되었다랄까. 사진을 몇장 안 찍었더니 기억해내기가 참 힘들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feat. PHOTO)
본래는 파르테논 부근의 에렉테이온 신전에 있어야 될 애들인데 일단 여기에 떼서 전시 중. 한 소녀는 역시 영국 者의 소행으로 인해 대영박물관으로 납치되서 생이별한지 어언 몇백년. 왠만하면 그냥 돌려줘라.
삼각형의 박공벽에 대한 단(短)상..이 아닌 장(長)상
그래도 3층은 사진촬영이 가능했다. 3층에서 바라본 파르테논 사진이다. 솔직히 이 사진촬영 금지 원칙은 2층 중반부터는 깨져서 대놓고 대왕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직원들도 그냥 모르는 척 해주는것 같았지만 나는 뭐 구태여 힘을 들이진 않았다.
그리고 운이 좋았던 건지 올라가마자 하프랑 오르간의 협주가 흘러나오고 있었음. 키보드에서야 버튼을 누르면 나온다지만 실제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무슨 음악회나 가야 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잘 안찍는 동영상도 찍었다. 거리에서 처럼 하는 버스킹 같은 공연은 아니었다. 그냥 관람객을 위한 서비스.
들었던대로 그 파르테논 신전상단의 삼각형부분, 이걸 '박공벽'이라고 하는데 여튼 거기 조각이 여기 이렇게 있다. 아마도 파르테논 신전의 복원이 끝나고 나면 이것도 복원해서 다시 붙이겠지. 현재 남아있는 돌뎅이들은 침략자들이 밑으로 추락시키고 깨버리는 통에 조각조각이 나있지만, 그래서 뭐가뭔지 잘 모르겠지만, 아래 복원모형이 있는걸 보니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지 싶다. 헌데 나의 얕은 지식으로 당시 나는 이게 진품이라고 생각했었다. 진짜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얘네들 가품이다. 진품은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고 이건 그냥 나중에 돌려받을 것을 대비하여 자리를 잡아놓은 것 같다. 하기사 그래서 사진촬영이 가능했었던가 보다. 그리고 이게 진품이었다면 이렇게 허술하게 전시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적어도 아래 100% 복원품과 같이 뭔가 유리로라도 방어막을 쳐놨을 듯.
여튼 뭐 이 복원해 놓은 모형. 이거 자세히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다. 뭔가 생동감있고 옛날답지 않게 코믹한 요소도 섞여있고 그렇다. 아니 뭐 당초에 만들때는 어떤 생각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게 보였다.
아니 근데 이걸 좀 자세히 적어보겠다고 책이랑 웹이랑 기사랑 이것저것을 다 뒤져봤는데 난관에 봉착했다. 정말이지 멘붕이 왔다. 처음에 난 저 부분이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기 전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근데 알고 보니 '아테나의 탄생'을 표현한 거였네. 결론은 가운데 주인공 격인, 의자에 앉은 님하는 포세이돈이 아니라 제우스다. 포세이돈이라면 삼지창을 들고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또 저 사진이랑 웹에서 찾은 복원도에는 좀 차이가 있다. 파르테논의 역사를 소개한 동영상에서 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크리스찬 애들이 파르테논을 교회로 쓰기로 하고 이 조각들을 부셔버릴 때 중앙은 특히 심하게 파괴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인 즉슨 정가운데에 십자가를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상력+추정 기타 등등 요소가 결합되어야 하므로 뭐가 정설이다..라고만 우길수는 없는 것 같다.
위의 사진의 중앙부분과 복원품의 가운데 부분은 확연히 다르다. 이 사진에서는 아테나가 제우스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 딱 봐도 '아테나의 탄생'에 걸맞는 표현이다. 아테나가 태어나기 전에 아빠인 제우스보다 더 뛰어난 신이 될 거라는 계시가 있어 제우스는 걍 태어나지 말라고 삼켜버렸음. 그러던 어느 날 제우스님하가 두통이 넘나 심해서 헤파이스토스한테 어케 좀 해달라 하니 그가 손수 도끼로 머리를 깨줬음. 그러자 머릿속에서 거기서 장성한 아테나가, 그것도 무장을 한 아테나가 뛰쳐나왔댄다. 저거 딱 봐도 "아빠 미안 아팠지? 호~~~~" 이러고 있는 듯 한 모양새.. 그리고 뭐 주변의 기타 등등 다른 신들은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이야기가 끝이란 말이지.
근데 복원품에는 뭔가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이미지가 즈언혀어어어 풍겨오지 않는다. 뭔가 되게 썸..이 아닌 초긴장을 타고 있는, 서로 심하게 째리고 있는, 터지기 직전의 부녀가 보인단 말이지.
그리고 아테나의 옆으로도 다른 여러 신들이 보인다. 하나같이 표정이 살아있다. 딱 봐도 삼지창 든 포세이돈과 하프를 든 아폴론은 누군지 구별이 된다.
포세이돈은 아테나의 옆에, 이 상황에 완전 빠져셔는 아예 의자도 그 쪽으로 돌리고는 얌전히 삼지창 들고 앉아서 구경 중이다. 여튼 얘를 보고 내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음. 나는 원래 주인공을 제우스와 아테나 부녀가 아닌 포세이돈과 아테나로, 그들이 제대로 싸우기 전 탐색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상상했었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포세이돈이 아닌 제우스가 자리에 얌전히 앉아서 "내 딸 화나면 무서운데.." 하면서 구경 중인 것으로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제우스가 삼지창 들고 다녔나 싶어서 여기저기 '제우스 삼지창'으로 검색도 해보고 별 생쇼를 다 하다가 진실을 알게 되었던 것. 지금 생각해보니 신들의 왕인 제우스가 가운데가 아닌 사이드에 있었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고. 그렇게 뭔가 풀리지 않던 수학문제가 풀린 듯한, 제우스와 포세이돈을 치환하니 따박따박 끼워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참고로 사실 이부분은 실제 파르테논 오리지널 신전에 일부 구현을 해 놓았다. 역시 가품이다. 사실 당시에 파르테논에서 올려다 볼 때는 당연히 이것도 진품인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뒤져보니 아직 저 부분도 대영박물관에 그대로 있는 사진을 보고 등 뒤에서 땀이 아주 심하게 났다. 지금 또 사진을 자세히 보니 베이지톤이 아닌 복원의 색인 흰색을 띄고 있네. 부끄러운 오스나씨의 얕은 지식.
이제 다른 조각으로 돌아와서, 이번 조각의 주제는 '아테네 시의 탄생'이다. 중간에 위치한 두 남녀(?)주인공의 격한 돌격에 그 주변으로 다들 놀라는 모양새다. 이것봐 여기는 포세이돈이 몸매를 뽐내며 삼지창 제대로 잘 들고 있다. 우야된동 아테네 시를 차지하기 위해 아테나와 포세이돈이 경쟁을 했다. 아테네는 시민들에게 올리브나무를, 포세이돈은 물을 준다고 꼬드겼고 뭐 아테네라는 이름에서도 티가 나듯이 시민들은 올리브나무를 선택했지.
그외의 것들
방을 벗어나니 이제 출구와 가까워 지는 듯 하다. 하이라이트를 보고나니 뭔가 마무리 되는 느낌.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에서는 아크로폴리스 전체를 레고로 만들어서 전시도 하고 있었다.
이거 근게 생각보다 굉장히 디테일하게 만들었다. 파르테논 아래에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은 물론 아고다, 그리고 깨알같은 사람들 까지 다 구현해놨음은 물론 건설 당시 파르테논 안에 있었을 황금 아테나 상, 그리고 현재의 복원공사를 위한 크레인까지 전부 있다.
이건 아까 조각상들을 구경하면서 파르테논이 그랬던 것처럼 조각상 들도 원래는 염료로 채색이 되어있었다는 설명을 봤었는데.. 그때 썼던 염료들인가보다.
이집트가 확실히 잘 나가긴 했나보다. 이집션 블루라니. 생각해 보니 이집트갔을 때 들은 바로는 다른 여러 색들 중에서 파란색이 제일 고가이고 귀한거라고 했었는데. 그래서 그런갑다 하고 찍어둠.
뜬금포 입/출구 쪽에는 상해에서 공수해온 중국에서 온 보물도 전시중이었다. 꼴랑 2개 였는데 뭐 되게 오래된 건 아니고 비교적 현대인 청나라때꺼였다. 여기 이 박물관에 막 기원전 유물들이 넘쳐나는 거에 비하면 정말 최근의 유물.
마무리 멘트
영국者 엘긴이 대규모로 파르테논의 조각품들을 훔쳐간 뒤 엘긴 콜렉션=엘긴의 마블 특별관이 대영박물관에 설치되어 있는 것은 넘나 유명하고, 이번에 이것저것 찾아보다 알게 된 것은 이 파르테논 박물관이 그런 그들에게 펼칠 논리를 위해서 만들어 진거라는 것. 영국애들이 "이렇게 귀한거 너네가 가져가봤자 보존도 못할거면서 뭘 그러냐 이건 내가 잘 보.관.^_^!" 이러길래 듣던 그리스 애들이 어이털려서 만든 박물관이랜다. 근데 최근 기사가 2015년이고 그 이후로는 잠잠한걸 보니 논란은 다시 수면 밑으로 들어간 것인가? 음냥흉냥 잘 모르겠다. 남들 다 하는 얘기들, 유물은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둥 그런 류의 식상한 멘트는 생략.
그렇게 박물관을 나선다. 꽤 오랜시간 놀아제낀것 같은데 아직도 갈 길은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