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
발길 닿는대로 흐느적흐느적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나와서는 호텔과 반대 방향, 아테네 첫날 유로자전거나라에서 도보투어를 하고 헤어졌던 그 갈림길에서 시장통이 펼쳐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내려가니 사람이 점점 많아지더니 "아 여기 와봤던 곳!!" 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사실 나... 그 때 알려줬던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했었는데... 당시 지도에 딱히 표시를 해 둔것도 아니라서 꼭 그런것만은 아니겠지만... 여튼 결론은 못 찾았다^^ 진심 요새 느끼는것 같은데 길치 맞는것 같다... 분명 여기가 그 길이고 익숙한 길인데... 분명 와본 길인데... 심지어 부끄럽지만 바로 포기한 것도 아니고 좀 많이 돌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못 찾았습니다. 대단해요.
뭐 그러다보니 구글지도에서 본 것 같았던 프레아 마켓(Flea market) 도 보이고 그런다. 역앞 광장에서는 드디어 출발 전 그 존재를 알고 있었던 보다폰(Voda Phone)소년도 만나고. 블로그들에는 얘를 만나 심카드를 사는 것이 가장 싸다고 그랬는데, 이전까지는 전혀 보지 못했었다. 여튼 이게 말로만 아니 글로만 보던 보다폰맨!
걷다보니 성당도 보여서 잠시 들어갔다가 나온다. 추위도 피하고 멍도 때리고 이것저것. 아 참고로 저는 무교입니다.
결국 그날 갔었던 깔라마리가 유명하다던 그 식당을 찾는 것은 포기하라는 신의 계시가 있었다. 걍 근처에서 대충먹자 싶어서 성당 앞에 있는 식당으로 훅 들어가서 미트볼과 언젠가부터 1인 1잔을 하고있는 프레도 카푸치노를 시켰다. 맛은 그냥 쏘쏘했다. 근데 이 식당에서의 미트볼의 경험을 되살려 이따 슈퍼마켓에서 괜히 용기내어 냉동 미트볼을 구매하는 우를 범한다.
배 채우고 다시 흐느적 흐느적
먹고 나와서는 이전까지는 아크로폴리스 위에서만 바라봤던 로만아고라(Roman Agora)쪽으로 가보기로 밥을 먹으며 구글지도와 협의했다. 아테네의 아고라는 고대 아고라와 이 로만 아고라, 두 구역으로 나뉘는 듯 했다. 사실 대항해시대2 초보들에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아테네 항구에 가보고 싶었으나 또 뭐 타고 뭐 타고 가야하니 시간이 너무 걸릴 것 같아서 포기했고, 아고라를 가긴 가긴 가야겠어서 지도만 보고 추후 방문해야 할 슈퍼마켓까지 고려하여 몇 군데를 골랐다. 사실 로마스러운 유적보다는 헤파이스토스 신전이 있는 고대 아고라쪽으로도 갔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아니 그리고 근처에 분명 있었을 것도 같았지만 정보의 부재+길치모드 재발동으로 인해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지나갔다.
우야된동 아고라는 아테네 시민들의 토론의 장+정치 활동이 이루어지던 곳이다. 기원전 6세기엔 시장이 들어섰고, 장보러 나온 그리스 남자들이 이곳에 모여 마음껏 떠들었다. 사실 아크로폴리스 부근은 경찰도 많고 해서 그런가.. 유달리 아고라 근처에서는 사기치려는 애들이 좀 보였다. 뭔가 분위기가 좀 달랐다.
누군가 흑인오빠들이랑 주먹 부딪치는거 하지 말랬는데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 자기 나이지리아에서 왔다고 이따 광장에서 춤 출거라고 구경하러 오라고 하면서 너무 친근하게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리고는 듣던 대로 레파토리가 정말 100% 일치한다. 선물이라며 손목에 실로 만든 팔찌를 걸어준다. 이거 걸어주고 돈 받을 거라는거 알지롱. 대따고 풀라고 하니까 공짜라고 한다. 그러다 잠시 후 역시나 돈 좀 달라고 한다. 없다니까 스몰머니라도 좀 달라고 슬프게 얘기한다. 그래도 미안한데 스몰머니도 없다고 진짜 없다고 몇 번하니까 "오케이, 괜찮아~" 한다. 해꼬지 할까봐 엄청 쫄았는데 승질도 안내고 팔찌만 도로 풀어간다. 생각보다 기타 등등 다른나라 사기꾼에 비하면 넘나 착하다.
그리고 왠 여자애가 장미 꽃다발을 들고 있다가 장미 한 송이를 뽑아서 건넨다. 너 이쁘니까 그냥 주는거야 막 이러면서 한송이를 주는데 거부한다. 이것도 수가 뻔히 보이는데 어케 받겠니.... 계속 받아라 싫다 받아라 싫다 실갱이 하다가 결국 여자애가 포기하고는 심하게 승질을 내고 머라머라 하면서 멀어져 간다. 아마 욕을 했겠지? 근데 이 여자애 나 기억못했는지 호텔근처에 가서 다시 만났다. 또 장미꽃 주려고 하길래 "노땡큐~♡" 를 던지고 서둘러 호텔로 도망갔었다.
장을 보았습니다.
이제 관광객모드는 접고 현지인 모드로 슈퍼에 장보러 갑시다. 어디갈지는 이미 지도에서 찾아놨다. 부실한 번역의 구글지도 리뷰를 보니 그래도 부근에서는 좀 큰 슈퍼마켓인것 같고 대충 나와있는 사진을 보니 괜찮을 것 같아서 믿고 가보기로 했다. 참고로 12월 24일인 내일부터 그리스는 크리스마스 휴일이다. 상점이고 레스토랑이고 거의 문을 닫는다고 했다. 며칠간 버티려면 식량이 필요했다. 그래서 다음 목적지인 로도스섬에서는 일부러 주방있는 숙소를 예약해놨었지.
근데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다. 지도에는 그냥 모든 길이 평지인 것 같은 착시현상이 있다. 실제 가보니 가파른 계단과 언덕을 올라야해서 엄청 힘들었다. 물론 어김없이 지름길로 가보겠다고 머리쓰다가 길도 한 번 헤맸고. 어디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하는 씨잘데기 없는 별 효과도 없는 선택의 기로들을 여러번 겪고 드디어 힘들게 도착했다. 이 슈퍼 완전 주택가 안에 있어서 오는 내내 현지인들로부터 '쟤는 뭔가? 여기 관광객들 잘 오는 구역인데 신기한 여인네군...' 이라는 하는 텔레파시를 왕왕 받았다.
사실 이 사진은 로도스 도착하자마자 짐 풀고 찍은 건데, 일단 한번 꺼내본다. 초콜렛2개, 소세지, 물만 부으면 되는 듯한 스프, 쌀, 미트볼(-_-), 라면 3개, 소고기 육수인듯한 무언가, 참치, 오징어를 절인듯한 무언가. 참고로 미트볼이 4.33유로로 제일 비쌌는데 다 못먹고 왔다는 슬픈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집에왔으니 짐 싸자
호텔에 돌아와서 짐을 싸봤다. 큰 공수한 식량들을 포함 다시 짐을 싼다. 일부를 미니배낭으로 분리해서 남미에서 했던 것처럼 배낭을 앞뒤로 메고 가는걸로 결정 하니 무리없이 다 잘 들어간다. 아니 대체 어떻게 이것까지 보탰는데도 짐이 다 들어가냐.아 나 진짜 진심 짐싸기의 달인이 맞는 것 같다. 사실 식량이 더해지는 관계로 기존 배낭으로는 택도 없을 것 같아서, 짐들이 배낭안에 다 안 들어가면 보조가방을 구매 하거나 쇼핑백 또는 큰 봉투를 구해서 짐의 일부를 거기 넣고 호텔에 놔두고 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리셉션에 문의도 해놨었다. 리셉션에서는 로도스섬에서 복귀한 뒤 이 호텔에서 추가로 1박을 더 하면 오케이라고, 내일 새벽에 체크아웃할때 말해달라는 얘기까지 듣고 왔던 차였다. 근데 생각해보니 사실 그리스의 마지막날인데 좀 좋은 호텔에 가고싶은 마음도 있었고 혹시 일정이 바뀌어서 로도스에서 아테네로 안들어오고 터키로 바로 넘어갈수도 있는거고... 만약 복귀해서 델피를 가게되면 여기가 아닌 터미널 근처로 갈 수도 있는거고... 결론은 어차피 배낭에 다 들어가고 하니 맡기고 뭐하고 귀찮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전부 들고가기로 합니다. 님 힘 세시잖아요?
왜 또 이런 시련을..
가뿐하게 짐을 싸놓고 나서는 발은 미니냉장고 위에 걸쳐놓고, 냉장고를 감싸고 있는 서랍장(?)위에 핸드폰+생사고락을 함께 하고 있는 블루투스 키보드를 올려놓고 이것저것 밀린 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블루투스 키보드에 붙어있는 세가지 색 불들이 진짜 미친듯이 오색찬란하게 깜빡깜빡발광발광거린다. 얘가 왜이러나? 고장난건가? 응? 혹시 충전해야되나? 핸드폰 충전기가 어디있더라? 아놔 근데 생각해보니 핸드폰 V20으로 바꿔서 마이크로 머시기...A타입인지 B타입인지... 어.. 그래 그거.. 이전꺼랑 충전기 꼬다리가 틀리.... 이러던 차에 진짜 키보드가 꺼졌다. 만세!! 방전이다!!! 로도스섬가면 나는 어떡하라고.. 섬에서 나 혼자 뭐하라고.. 그때 밀린 일기들 다 적기로 했었는데 이러면 곤란하단 말야.. 누구야? 누가 지금 갑자기 내 앞통수를 이렇게 세게 때렸니? 왜 불이 번쩍했니?
잔머리는 이렇게 쓰는겁니다.
일단 리셉션에 가서 충전기 있냐니까 오브콜스 있다고 하길래 럭키!!하고 달라고 해서 봤더니 아이퐁짹이다. 슬픈 눈으로 그럼 어디가서 사야되나 물으니 가게 위치를 가르쳐주긴하는데 추가로 덧붙이는 한 마디. 아마 시간이 늦어서 닫았을거라고. 이미 해가 진.. 당시 시각이 8시 쯤 되었던 것 같다. 상점 주인장들 이미 문 닫고 집에 가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아 물론 포기할 내가 아니다. 잔머리가 미친듯이 돌더니 저녁 먹을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 강제 식사를 하기로 하고 한 식당으로 향한다. 나름 부근을 돌면서 고르고 고른 식당이다. 충전기가 있을만한 곳으로 우헤헤... 소중한 나의 건강을 위해 그릭샐러드랑 그릭요거트를 시켰다. 이 야밤에 남들은 술먹는데 얘는 뭐야? 하면서 바라보던 직원에게 충전기를 문의하니 없다고 한다. 뚜쉬 작전 실패인가? 그럼 늬들은 핸드폰 충전을 어케하냐? 라고 물으려던 차에 한 저~~쪽 바(Bar) 쪽에 계시던 다른 직원아재인지 사장인지 여튼 그분이 "온니 삼숑~~!!"요러시면서 일루와보라고 하신다. 가지고 가서 꽂아보니 나 전기 잘 먹고 있다며 키보드가 녹색불을 켜준다!! 그래 꿀떡꿀떡 맛나게 잡솨. 만쉐이!! 한국 내 서랍속에는 적어도 10개는 넘게 굴러다닐듯한, 가져왔어도 재사용의 가능성이 희박한 그 케이블 샀다면 분명 밥 값보다 더 비쌌을 것 같은 데 참 잘했어요.
일부러 충전 이빠시 되라고 츠어어어어언천히 먹었다. 사실 이 키보드 충전은 얼마나 시켜야하는지 감이 안와서... 무조건 많이 많이. 근데 웨이터가 충전은 투머치 투머치를 외치며 이제 충분하다고 헐레벌떡 뛰어서 내 자리로 가지고 돌아오고. 뭐죠? 충전기가 터질 것 같았나요? 뭐 덕분에 이후에도 계속 잘 쓰고 지금도 무사히 한국와서까지 잘 쓰고있다.
이제 집에가자. 근데 영수증 보니 예고 없이 가져다 주던 물은 안 먹겠다고 돌려줬었는데 그대로 넣어놨다. 이 정도 그리스어는 이제 읽을 수 있단 말입니다. 그래 뭐 충전값+팁인 셈 치기로 하고, 따지기도 무섭고 해서 걍 냅두기로 하고 다 냈다. 근데 또 희안하게 거스름돈을 구태여 동전으로 왕창주네.. 팁을 달라고 그러는 건지요? 허나 이미 물값을 받아갔으니 그냥 나의 해맑은 웃음을 받으세요. 글구 생각해보니 너 직원님은 충전기 처음에 없다고 하지 않았냐능?
어찌어찌 이렇게 아테네에서 또 하루를 빈둥빈둥 잘 보냈네. 이런 여유 좋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서 공항으로 이동. 국내선 비행기로 로도스섬으로 간다. 크리스마스 연휴는 한적한 섬에 쳐박혀서 보낼 생각이다. 크리스마스에 혼자인 외로움을 배로 만들기 위한 나의 탁월한 선택이랄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