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리스 로도스(Ρόδος)섬 입성

산토리니 따위 나는 몰라몰라

by 오스나씨

로도스행을 선택하기 까지 + About 로도스


여행루트를 결정할때 참으로 많은 경우의 수가 있었다. 이번 여행은 특이하게 세부적인 일정까지 다 짜서 온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굵은 루트 몇가지는 결정해야만 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제일 고민했던 것이 어떤 "섬"에 들어가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섬에 가고자 했던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1) 대항해시대2 플레이를 하면서 바다에 흩뿌려져 있는 "섬" 들 사이를 배로 누비고 다녔던 기억

(2) 그리스 하면 산토리니로 대표되는 "섬"에 방문하는 것은 뭔가 공식처럼 존재한다는 느낌

(3) 솔로의 외로운 크리스마스는 외로운 "섬"에서 보내는 것이 외로움의 증폭이 가능하다는 점

(4) 그리스 본토와 마찬가지로 섬들마다 세계문화유산들이 즐비함

(5) 이후 일정은 터키로 잡았는데 거리상으로 "섬"에서 가는 것이 아테네에서 가는 것 보다 더 가까운듯


처음에는 그리스 본토에서는 아테네 정도만 고려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섬에 투자하고 마지막에는 역시 배편으로 터키로 넘어가는 것은 어떨까도 생각했는데 겨울 비수기라 배편이 그리 많지가 않았다. 사실 있었을 수도 있는데 검색하다가 포기해버렸다. 선사들마다 홈페이지도 있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이상한건지 검색도 잘 되지 않고.. 그래서 결국 한 군데만 가는 걸로 하고 섬 순례는 그렇게 쉽게 포기.


그럼 어디를 가야 할까? 혹자들 처럼 당연히 산토리니에 가야하나 생각하다가 겨울철의 휴양지라. 가서 찬바람 맞으며 해산물만 먹고 올 것 같은 그런 느낌. 나와는 정말 안 맞는다. 그럼 다른 곳을 탐색. 자킨토스, 이드라, 에기나, 포로스, 역시나 휴양지로 유명한 섬들이다. 전부 지우자.


사실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은 델로스섬이었다. 섬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이고 아폴론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헌데 여기도 가려면 일단 미코노스를 가야하는데 왠지 비수기라 일단 미코노스에 가더라도 미코노스-델로스 페리를 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 물론 뭐 가서 버팅기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내가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어서 혹시나 모를 위험을 감수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마지막까지 고려대상에서 제외하지 못하다가 막판에 되서야 포기했다.


크레타섬도 찾아봤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엄청 유명한 미노스가 지배했던 바로 그 크레타섬. 제우스가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크레타섬. 박물관도 있고 유적지도 있고 의미도 있긴 한데 섬 자체가 너무 크고 넓다. 왠지 섬에서는 렌트를 해서 다녀야 할 것 같은 분위기. 불가능하다.


그러다 선택한 곳이 로도스섬이다.


(1) 일단 아테네에서 연결되는 국내선 항공편이 매일 몇 편씩 있어 교통편은 나쁘지 않다.

(2)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3) 사람들이 잘 안가는 곳이라 비교적 한적할 것 같다.

(4) 일본문화에 심취해있었던 동생을 통해 '로도스도 전기'의 오프닝곡인 '기적의 바다'를 엄청 들었었다. 왠지 가보고 동생한테 인증샷 날리며 자랑하고 싶다.


로도스섬은 세계문화유산인 성벽으로 둘러쌓인 중세도시를 품고 있다. 거기에 더해 고대 그리스, 헬레니즘, 비잔틴 제국은 물론 이슬람 유적까지 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다. 세계사 속에서 등장하곤 하는 유명한 십자군들과 관련이 깊은 도시이며 이런 유적군들이 대부분 한데 모여있어 큰 무리없이 도보로 관광이 가능할 듯 보였다. 원 없이 며칠을 콕 박혀서 혼자놀기에 충분한 곳이리라.



Go to 로도스


20171224_063054.jpg?type=w580 미리싸둔 배낭을 짋어지고 길을 나섰다. 아직 해뜨기전.


신타그마 광장까지 가면 공항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거리도 꽤 있는 편이고 정확한 정류장 위치를 몰랐던 터라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는 것을 택했다. 아테네공항까지는 갈아타야하지만 여튼 지하철로 연결된다.


20171224_063119.jpg?type=w580
20171224_070833.jpg?type=w580
아크로폴리스역 도착 후 지하철을 두번 갈아탔다.


공항까지는 약 1시간반정도 걸렸던 것 같다. 생각보다 시간이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당초 아침 10시 비행기인줄 알고 출발 했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티켓팅 해보니 9시 비행기였더라. 서두르지 않았으면 비행기 놓쳐서 멘붕왔었을듯. 탑승까지 시간이 2~30분 여유가 있음을 깨닫고 그대로 PP라운지로 직행하신다.


20171224_081913.jpg?type=w580 가방을 던지고


20171224_081906.jpg?type=w580 미친듯이 흡입. 물한병도 잊지 않고 챙겼지.


20171224_083828.jpg?type=w580 올림피아 항공 09:00 아테네 출발



로도스 착륙

로도스섬이 보인다

와 근데 진짜 인간적으로 바람이 너무 셌다. 올림피아 항공은 저비용 항공사인 에게안항공이랑 합병을 했다. 기종 자체도 모블로그들에서 봤던 무시무시한 프로펠러기가 아니라 A330정도는 되는 나름 괜찮은 항공기였다. 근데 진심 내가 타본 비행기중에서 제일 무서운 비행기였다. 섬 부근에서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어서 1차 착륙을 실패하고 섬을 가로질러 저쪽까지 다시 갔다가 2차 착륙을 위해 공항으로 되돌아왔다. 근데 턴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심하게 기울일줄은.. 창문으로 창밖보고 있다가 토쏠리는 줄 알았다. 정말이지 쪼매난 항공기였으면 더 사색이되어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기장님은 두번째 시도에서는 무사히 착륙에 성공하셨다. 혹시 착륙하면 승객들이 단체로 기립박수치는걸까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도 박수는 치지 않았다; 사실 박수쳐줄만 했는데 나라도 칠껄 그랬나?



이제 숙소를 향해 갑니다


정류장. 시티에서 돌아올때도 같은곳에서 내려준다 + 버스티켓, 기사님이 발권해준다.

짐은 어차피 수하물 옵션이 없는 항공편을 선택했던지라 안 부치고 배낭두개를 그냥 들고 탔었다. 두개 들고탄다고 뭐라고 하는건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무사히 통과. 덕분에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시간낭비를 하지 않고 바로 터미널 구역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바로 나가지 않고 잠시 공항을 좀 둘러보니 인포메이션 카운터가 보인다. 시티로 가는 교통편을 비롯한 여러 정보를 얻을까 해서 다가가 봤지만 문은 닫혀있었다. 비수기라 운영을 하지 않는 듯 했다.


터미널 밖으로 나오면 건물을 뒤로하고 왼쪽 끝에 야외 커피숍이 있고 그 앞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왠지 버스정류장이 있는 것 같았다. 용기내서 다가간 후 "로도스 시티?"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구태여 택시 탈 필요는 없겠다.


버스는 서쪽 해변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약 30분 정도 달렸고 중간중간에 작은 마을을 들러 사람을 내려주기도 하고 태우기도 했다. 공항직행버스는 아니고 동네 일반버스라고 봐야하는게 맞을 것 같다. 그렇게 사람구경 경치구경 하다 보니 시간 잘 간다. 버스는 이제 시티로 들어선다. 구글 지도를 보고있다가 대충 숙소랑 가까워질때쯤 무사히 내렸다. 내려서는 한 10분정도 걸었나? 숙소는 골목안에 있었다.

20171224_105522.jpg?type=w580 Efchi Suites 1904, 숙소 앞 골목길


도착했는데 문이 잠겨있었다. 역시나 심카드 살때 전화까지 되는걸로 충전해서 다행이다. 사실 너무 일찍 도착하긴 했다. 문 밖에 적혀있던 핸드폰번호는 받지 않았고 부킹닷컴에 적혀진 호텔번호로 걸었더니 문 뒤에서 전화벨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바로 받는다. 어디냐길래 in front of your space. 하니 헉쓰! 하며 바로 문을 열어준다.



Check in Efchi Suites 1904

들어가니 내 전화를 받았던 한 어린소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얘길 들어보니 주인장은 크리스마스휴일이라 육지에 갔고 잠시 본인이 일을 봐주고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약간 어색한 기운이 감돌다가 이름도 묻고 뭐하는 동안 조금은 친해져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그녀는 크레타섬에서 공부를 하고있는 학생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휴일이라 알바하고 있었던 듯. 호텔주인은 본인의 이모였던가 여튼 친척이라며. 불편한거 있으면 연락하라고 따로 자기 폰번호도 적어주고 했다.


근데 솔직히 난 이 숙소에 도착전에는 "내가 묵는 일정이 크리스마스 휴일인데 거기 식량 살 곳은 있냐"는 질문을 따로 남겨놓기도 했고, 혹시 몰라서 옵션으로 조식요청도 하기도 했지만 응답이 없었어서 그닥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인이 휴가간다고 그런 질문과 요청들은 나몰라라 했던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뭔가 인수인계 과정에서 삔또가 났던 것 같기도 하고.


여튼 그녀는 내게 조식은 어찌 할 것이냐고 물었고 만약 먹으려면 미리 돈을 내는게 좋겠다고 한다. 내가 먹는다고 해야 누군가 와서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근데 사실 이미 아테네에서 쌀도 사왔고 이것저것 반찬들도 많이 사왔던 터라... 그리고 이 나라의 빵뿐인 조식에는 너무나도 정이 가지않아서-여러 서양인들이 조식이 훌륭했다고 후기에 칭찬을 늘어놓았음에도 불구하고-추가하기 싫었지만 짧은 영어로는 대화가 진행이 안된다. 이럴때는 그냥 무조건 나도 모르게 Ok가 튀어나온다. 결국 맛보는 셈 치고 딱 한끼만 먹어보는 걸로 했다. 먹어보고 괜찮으면 추가하면 되겠지 하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숙소비도 지금 지불하라고 하는 통에 바로 ATM을 찾아나서야만 했다. 나 근데 사실 돈을 거의 안 들고 섬으로 들어와서... 카드결제가 가능하면 지금 있는 걸로 어찌어찌 그냥 버틸 생각이었는데.. 혹시 나중에 주면 안되냐고 하니까 이 아이가 주인이 아니고 알바개념이라 후정산 같은 그런 권한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배낭은 그냥 리셉션에 던져놓고 설명해주는 대로 ATM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 인출을 해 온 뒤 지폐를 내미니 이미 부킹닷컴 시스템을 통해 숙소비가 카드로 결제가 완료되었다고 한다. 아까 요망하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던데 얘가 돈 뽑지 말고 그냥 오라고 전화했었나 보다. 여튼 덕분에 유로가 많이 남아서... 이후 그리스 일정은 물론 터키, 카자흐스탄에서도 있는 걸로 버티고 한국에 까지 들고 왔다.


그리고 떠나는 날 비행기가 저녁시간이라.. 6시 50분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혹시나 해서 늦은 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었다. 사실 이것도 별도요청으로 체크해놨었는데.. 나는 부킹닷컴 지니어스 회원이라 요청이 가능했었는데... 근데 역시나 이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았던듯. 소녀는 주인이모에게 물어보고 나중에 말해준다고 한다.


이 호텔은 분위기가 딱 직원들이 상주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이 아이를 다시 만나기가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너를 볼수있냐 하니 내일 오후 5시쯤에는 새로운 손님이 와서 여기 리셉션에 다시 나와볼거라고 한다. 알겠다고 하고 이제 드디어 방으로 안내받는다.




로도스 우리집을 소개합니다

20171224_112049.jpg?type=w580 2층 구석방ㅋㅋ 대문


사진은 조명탓에 좀 누렇게 나왔는데 실제로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하늘색 파스텔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묵었던 베스트 숙소중에 감히 상위에 랭크될것 같은. 비수기라 리셉션과의 연락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은 단점이지만 며칠 쳐박혀서 묵고 가기엔 더할나위없이 사랑스러운 곳이었다.


20171224_112218.jpg?type=w580 꺅!! 침대와 충분한 쇼파들



20171224_190726.jpg?type=w580 쇼파위의 이 조명도 참 멋있었다.


20171224_112224.jpg?type=w580 주방도 깔끔ㅋㅋ있을꺼는 다 있음



20171224_112301.jpg?type=w580 욕실도 깨끗하고 좋다ㅎㅎ


20171224_115516.jpg?type=w580 한상 벌려봄아테네에서 공수해온 식량들. 쌀, 소세지, 미트볼, 라면3개, 스팸, 캔오징어, 소고기육수(?), 스프, 어딘가에서 샀던 초콜릿, pp라운지에서 가져온 생수




집에서 놀기

아직 시간은 많이 일렀지만 방콕을 결심하고 빈둥빈둥대다가 달콤한 낮잠도 몇시간 자고 그렇게 여유로운 한때를 보냈다. 사실 물을 사러 나가야 되나 했었는데 이미 아까 ATM을 찾으러 갔을때 상점들이 거의 문을 닫은 것을 목격한 뒤라 쉽게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아까 PP라운지에서 하나 공수해온 물도 있고 냉장고에 추가로 물이 두개나 들어있었음은 물론 커피포트와 구비된 차 티백도 많으니 끓여먹자하면서 나와 타협을 했다. 그렇게 그냥 집에서 놀다가 저녁때가 되니 배가 고파져서 식사준비를 했다.


오징어캔을 반신반의하며 뜯었는데 정말 먹을만 했다. 스파이시라고 적혀있어서 양념이 되어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쏘세지랑 같이 넣고 볶으니 역시나 훌륭한 반찬이 되었다. 밥은 그냥 냄비에 해야되나 하다가 스프를 끓이는 포트인건지... 여튼 적당한게 보여서 저 작은 포트에 딱 1인분만 하기로 했다. 뚜껑이 없는 것 같아서 대접을 대신 사용했다. 결과는 성공.




20171224_190908.jpg?type=w580 단촐한 한끼ㅋㅋ간만에 먹는 쌀밥ㅋㅋ넘나 맛났음


저녁먹고 놀고 일기쓰고 그러다가 다시 잠이 든것 같다. 주변은 너무 조용했다. 이 큰 숙소에 묵는 사람은 나와 한 커플인것 같았는데, 그나마도 나는 2층 구석, 그들은 1층의 나와 반대편 구석으로 방배정을 시켜놔서 소음은 정말 1도 안들렸던것 같다.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 그리고 내가 떠나기 전 한국에서 상상하고 계획했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뿌듯감이 몰려왔다랄까? 슈퍼마켓 장보기 미션, 로도스섬 입성 미션, 숙소까지 버스로 이동하기 미션, 밥하기 미션 모든게 성공한 것이었으니깐. 심지어 어느 것 하나 장애물없이 순탄하게 성공한 것이었으니깐. 게다가 이 동네가 원체 여름에만 번성하는 동네이고 겨울에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않는 한적한 섬인 관계로 만족도는 더 올라갔던것 같다. 그렇게 뭔가 기대하지 않았는데 선물을 받은 느낌이랄까. 이게 바로 내 크리스마스 선물인 듯.


크리스마스 이브, 0시가 되니 숙소 바깥에서 폭죽소리와 함성소리가 들리긴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숙소 뒤편이 교회인것 같더라.


그래그래 메리크리스마스.




로도스_1일차.jpg 현재 오스나씨의 위치 : 로도스섬 로도스 시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