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성인상담2기_다문화상담_9번째 과제
나는 전문 여행가가 아닌 회사에 묶인 직장인들 치고는 꽤 여러곳을 다닌편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장기여행(그래봤자 5일 휴가내서 주말끼면 7일정도)은 1년에 거의 한번이 다이지만 그래도 내 주변에서는 많이 다녀본 편이다. 그리고 남들이 흔하게 가지 않는 특이한 곳을 여행지로 선택한 적이 많았던 지라 뭔가 오지 탐험가와 같은 수식어가 붙어있다. 프랑스 파리는 경유편을 이용해 반일정도 둘러본 것이 다이고 이탈리아의 경우 내가 원해서 갔다기 보다 어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수십명이 단체로 겉핥기식 투어를 한 경우라 조금은 특이한 경우이고 영국, 독일, 스페인 등 메인 관광지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하였다. 그리스를 갔지만 유명한 산토리니 대신 교통편이 참으로 불편했던 올림피아, 스파르타 등의 도시가 있는 펠로폰네소스 지방과 로도스 섬을 선택했다. 중국 중에서도 신장위구르 자치구, 삼국지 조조와 관련된 보저우, 허창, 합비 등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에 더 매력을 느꼈고 그 외 튀니지, 요르단, 모로코, 우즈베키스탄,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 멕시코의 팔렝케, 러시아 무르만스크나 이르쿠츠크 등 여행정보가 그다지 많지 않은 곳으로 참 많이도 다녔었다.
이는 내가 성격상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이 다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흥미가 없으며, 유동인구가 많은 번잡한 곳을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은 분명히 맞다. 그리고 역사에 관심을 갖다보니 세계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여행계획을 짜다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도 분명히 맞다. 이것들은 주변에도 자주 하던 이유들이고, 차마 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인지하는 인종차별과 관련된 사항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난 소위 강대국 혹은 선진국의 국민들, 그리고 도시사람들이 두렵다.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상태에서 더듬더듬 이야기하는 수준이지만 그런 그들 앞에서는 더 위축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하려던 얘기도 쉽게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던 것 같다. 인종차별이 존재함을 은연중에 내가 인식하고 상대방이 나를 겉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속으로는 하대하고 있을거라는 상상을 한다. 반면 내가 선택한 나라의 국민들은 그렇지 않았다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야기하는데 불편함이 없었고 마음속 깊은 얘기들까지 서툰 영어로 더듬더듬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친분도 몇몇과는 쌓았던 것 같다. 헌데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다. 나 자신부터 전세계 사람들을 줄세워서 레벨을 만든 다음 나와 비교적 급이 맞는 곳, 혹은 낮은 곳을 선택해 편안함을 느꼈다는 뜻이니까. 정말이지 뭐가 그렇게 잘나서? 가소롭기 짝이없군!
실제로 내가 해외에 나가서 인종차별을 겪었던 적이 있었던가? 대체 무엇때문에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되었던 것일까? 여행 비선호 국가에서 만난 여행 선호국민들, 그들은 나에게 어떠했을까?하하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행 비선호 국가로 여행을 온 사람이니 뭔가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먼 깨인 사람일 것이고 그래서 예외적인 상황이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아니 대체 왜? 뭐가 문제인걸까? 뭐 차별당했던 기억들이 몇 개 떠오르긴 한다. 호주에 잠시 체류하며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거냐는 그쪽 직원의 질문에 나는 전공이 회계학이니...따위의 말을 하니 굉장히 코웃음치며 '니 주제에 나와 같은 화이트 칼라를 하겠다고?' 하며 비웃었던 일이 생각이 난다. 당시 내 꼬라지가 옷을 갖춰입지 못했던 것은 물론 얼굴도 시커먼, 그들나라의 국민들은 잘 하지 않는-힘이 드는 노동일도 마다하지 않는, 뭔가 돈을 벌기 위해 발버둥치는 불쌍한 사람처럼 보였겠지. 아니 뭐 근데 이렇게 이해하려고 해도 분명히 차별은 있었기에 이해하고 넘어가기는 힘들다. 일하는 내내 그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을 차별했었다. 일본인들에게는 유달리 특별대우를 해주었다. 덜 힘든일을 시키고 그들과 별도로 식사도 곧잘 했던 것 같다. 한국인이 보기에는 그냥 우리 옆나라 일본이었는데, 해외로 나가니 그들은 선진국 사람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고 심히 놀랐었다. 당시는 삼성이나 LG가 크게 뜨지 않았던 때였던 지라, 특히 soccer가 아닌 football에만 관심이 있었던 호주에서는 우리나라를 2002 월드컵이 아닌, 본인들이 참전했던 1950년의 6.25전쟁을 더 기억하고 있을 때였으니 더 심했을것 같다. 그리고 당시에는 핸드폰 개통을 하려면 직접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어야 했는데 내 서툰 영어를 듣다가 의사소통이 안되니 화를 내며 전화를 끊어버렸던 그녀가 생각난다. 그때 상당한 충격을 먹었었다. 아직도 소리지르듯 'Thank you! BYE BYE!!'을 내뿜고 신경질을 부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서 맴돈다.
억지로 억지로 내가 왜 이런걸까에 대해 꺼내 보았는데 과연 이게 트라우마가 되어서 그런것이 맞는 것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의식하고 또 의식하다보니, 곱씹고 곱씹다보니 더 강렬해졌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상당히 내가 피해자인 것처럼 글을 쓰고 있는데 상담가를 하려는 너는 이래서는 안된다. 앞서 우려감을 표시했지만 그들을 어려워한다는 것은 분명 인종들간, 혹은 도시사람과 시골사람을 가르는 레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은 같은 레벨이라고 가정하고 내가 두려워마지않던 그들에게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첫 단추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우리나라 뭐 예전에 기브미 쪼꼬레또하면서 구걸하던 아이들이 넘쳐났던 나라였다. 지금도 뭐 너네나라에 비해 꼭 잘 산다고만은 할 수 없지. 근데 그게 왜? 그게 뭐? 그냥 국가환경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지 너랑 다른 건 뭔데?아니 그리고 뭐? 영어가 서툰게 뭐? 우리나라 말도 아닌데 그거 못한다고 뭐? 내가 뭐 죄졌어? 쓰다보니 넘나 열받네. 뭐 이렇게 레벨들간의 경계선 자체를 지워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 잘 하고 있다. 의미없는 레벨질은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