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스나씨 Nov 11. 2020

내가 상담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

H성인상담2기_다문화상담_8번째 과제

수년 전 2011년도 쯤 전문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직무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이었는데 사실 상담에 대해 원래 관심이 크게 있었다기보다, 그리고 나의 고민을 막 해결해봐야겠다 하는 적극적인 마음이 있어서였기 보다 그냥 원체 이것저것 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던 것이 크다.


상담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달려갈 때 가장 효과가 크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너무 당연한, 상담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례에서도 충분히 공감되는 이야기. 상담자는 분명 불타는 직업정신에 따라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가다듬으며 상담에 임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그녀를 믿지 않았다. 내 일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나 스스로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누군가의 조언을 들어봤자 내가 선택을 하는데에 있어서 조금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감히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성격이 이 모양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처세서는 극혐하여 잘 읽지 않는 사람. 본인 문제의 답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해라, 혹은 나는 이렇게 살았다고 자랑스럽게 백날 이야기해줘봤자 소용이 없고, 스스로 본인이 깨닫고 행동하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없다고.


태어나서 처음이자 일단 지금까지는 마지막이었던 상담이었던지라 난 그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가 어디서 만나서 무슨얘기를 했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상담 중의 나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상담 후의 나는 어떠했는지. 당시 팀에서 무진장 바빴던 시즌인 10~11월경으로 기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해주던 프로그램이었던 만큼 회사앞으로 와주셔서 편하게(하지만 나름 팀원들에게는 눈치도 보였던)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상담을 마치고 난 뒤의 내 느낌은 한마디로 내 안의 모든 것들을 털어넣을수 있어서 개운했다. 정도. 사실 당시의 나는 정신적으로 대혼란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것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주변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아니 있었어도 넉넉한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차마 주변인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스러운 얘기들까지 토해낸다는 기쁨이라고 해야하나. 덕분에 상담을 약 3~4회 진행했었는데 내 얘기만으로 참으로 많이도 채워넣었다. 오죽하면 마무리되는 시점에 조금 더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리고 상담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나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았다. 새삼 느꼈다. 대학시절 한 선배에게 내가 호감을 가졌던 이유는, 그가 '넌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눈이 반짝반짝 할때가 가장 예쁘다.'라던지, '너는 건강한 욕심이 많아서 그게 매력이야.', '넌 참 거울같은 사람이야.' 와 같은 이야기들을 곧잘 해주었기 때문이다. 알고 있다. 솔직히 난 연극이 굉장히 심한 사람이라 진정으로 날 아는 사람들은 친한이들을 제외하고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그 가면을 깨고 내면의 나를 말해주는 사람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 나에대해 관심을 가지고 충분히 관찰한 뒤에 내릴 수 있는 이와같은 결론들을 기꺼이 전해주는 그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것.


내가 꿈꾸는 상담가의 이미지는 아마 이 때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편한 대화상대. 꼭 상담의 목표가 무언가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푸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번 확신한다. 뭔가 끼워맞추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이런 나를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겉으로는 일에 집중도 안되고 재미도 없고 어쩌고 하는 고민들을 분명 말했을 테지만 그녀는 그것을 넘어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그냥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을 파악하여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이야기를 듣는데에 인내심을 가지고 집중해 주었다. 그리고 뽀너스로 '이렇게 하세요!'가 아닌, '당신은 사랑을 할 때 일도 잘하고 그 밖의 다른 일도 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 같습니다.'와 같은, 평가아닌 평가를 내려줬던 것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상담에 임하는 태도가 불신으로 가득차 상당히 껄렁껄렁했지만 결국 지금 생각해보니 그녀와 나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더라. 결국 나는 상담이 끝나는 것이 아쉬울 만큼 만족하지 않았는가? 역시 연륜과 경험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지!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당신이 상담에서 바라는 것은 무엇이냐?'라고 대놓고 질문하며 목표를 설정한 뒤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수는 있겠지만, 사회과학의 특성상, 그리고 인생만사의 특성상,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의 특성상 아닌 사람들도 있는 것이지. 또한 본인이 원하는 바를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누군가도 있다. 물론 질문을 하면 내가 원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하면서 답은 할 수 있겠지. 나처럼. 근데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상담자의 몫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급진 언어사용의 필요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