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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나씨 Aug 23. 2021

ENFP의 시간강박과 정상 그 사이 어딘가(1)

그녀도 가끔은 계획적일 수도 있다.

다음 질문을 연두에 두고 아래 예시를 읽어보자.

[질문] "이 사람은 계획적인 사람인가요?"



[현 상황]

퇴근 후 거실에서 나홀로 한바탕 치킨파티를 벌였다.

다 먹었으니 이거 치워야되는데...

에이 지금 보고있던 것만 마저보고...

헌데 슬슬 끝이 나려하네... 치워야 될까?



[생각]

나는 우선 화장실도 가고 싶고, 

치킨이 조금 짰었나? 목이 마르네...

음.... 또 뭐 할거 없나? 생각해내라고!

아 그래.. 아까 세탁기 전원버튼을 눌렀던가?

어제 빨래걷고 옷걸이가 아직 베란다에 있던가?

흠.. 전부 드레스룸으로 가져다 놓은 것 같음.

아까보니 화분이 축 쳐졌던데 물도 줘야겠네.

치킨도 다 먹었는데 이제 뭐하지? 

그림이나 그릴까? 물컵이 어디있더라?

흠.. 뭐 이정도면....이제 움직여도 될듯

윤허함.


[계획수립]

소요시간 1초


[실행]

(거실) 보고 있던 TV는 우선 끈다.

리모콘이 손 닿는 곳에 있으니까.

나는 앞으로 짧은 여행을 할 것이니, 

그 동안에는 보지 못할테니까.

다음에는 쓰레기와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분리한다.


(현관) 재활용 가능한 치킨박스는 현관문 근처에 두고 

내일 출근할때 가지고 나갈것이다.


현관은 좁아서 재활용 박스를 별도로 두는건 불가능하고

주방쪽 다용도실 이런 곳에 재활용들 모아놨다가

한꺼번에 가져가는거는 정말 비효율적이야.


우선 재활용들을 모을 수 있는 박스를 따로 만들어야 하는데

어디선가에서 온 대용량 택배박스는 뭐 1회용이고

대용량 택배박스를 다시 득템하기전까지

재활용품들은 바닥에 굴러다녀야 해..

결국 뭔가 반영구적 재활용 박스를 사야하는데

그거 쓰면 혹시 모를 이물질로 인해 세척도 해야되고..

무엇보다 뭘 사야되나(재질? 크기? 등등) 고민하는 것도 굳이..

그냥 비닐봉지에? 아아아 생각하기 귀찮아!!

그때그때 고민해야되는 것이 싫어!!

동선도 별로야. 

택배를 뜯는 곳은 보통 현관 앞,

치킨이나 피자를 먹는 곳은 보통 거실,

it means 보통의 재활용품들이 

거실에서 나오는데 뭐하러 주방까지 감?

밖에 나갈 때 손에 잡힐 수 있는 만큼만 들고 나가는게 최적임.

그래서 난 여기 치킨박스를 두고 다음코스를 향해 떠남.


(이동)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동. 

욕실 앞 탁자에 있는 센서등이 내 길을 밝혀준다.

진짜 잘 산듯. 칭찬해!


(주방) 식탁 옆에 있는 주방조명 스위치 ON

근처에 있는 작은 비닐봉지를 벌린다.

오돌뼈까지 다 긁어 씹어먹어서 

잔해만 남아있는 닭뼈를 집어넣고 있는 힘껏 밀봉한다.

그리고는 일단 거기 둔다.

옆에 두었던 남은 쓰레기들,

냄새가 심하게 안 날것 같은 물티슈나

나는 안 먹는데 자꾸 넣어주는 소금봉지

치킨을 감쌌던 종이 등등은 쓰레기통으로 직행.

센서쓰레기통도 정말 잘 샀어. 너무 편해!

치킨을 덜어먹었던 그릇이나 음료를 마셨던 컵 등은 

당분간 주방에 다시 들를 일을 만들기는 싫고 

음식물이 그릇에 눌러붙은 다음에 설거지하면 

시간이 두 배로 들테니

바로 싱크볼로 데려가서 설거지한다.


(다용도실) 싱크대 옆에 있는 미닫이 다용도실 문을 열고 

세제를 넣고 세탁기 전원버튼을 누르고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뒤

소음방지를 위해 다시 문을 닫아둔다.


(주방) 아까 놓아둔 닭뼈가 든 봉다리를 손에 든다.

식탁옆 주방 전원스위치를 끄고 

스위치 바로 옆에 있는 냉장고방으로 간다.

냉장고를 열면 방이 환해지니까 굳이 불은 안 켠다.


(냉장고방) 왼쪽 냉동실 문을 열고 닭뼈 봉다리를 던져넣는다.

오른쪽 냉장실 음료바에서 물을 꺼낸다.

냉장고 오른쪽편에는 자석선반이 붙어있고

그 위에는 실리콘 덮개가 있는 물 전용컵이 있다.

물을 양껏 마시고 다시 덮개를 덮는다.

이거 그냥 열어두면 먼지와 사투를 벌이다 결국 싯어야 하니까.

냉장고방까지 오는게 귀찮아서 정수기를 설치하고자 하였으나

(추가로 페트병을 주기적으로 버리는 수고로움도 덜고)

수압약한 구축 탑층은 정수기를 설치할수가 없더라.

아저씨 왔다가 뜯은 정수기 다시 담아서 돌아가셨음.

결국 라벨이 안 붙은 스파클 생수를 배달해주는 

인터넷상점이 내 단골.

이 정도로 현실과 타협을 함.


(이동) 주방을 살짝 비껴 욕실쪽으로 방향을 튼다.

아까와 같이 센서등이 내 길을 비춰준다.


(욕실) 욕실에 들어서는 순간 

변기 옆에 놓아둔 또 다른 센서등이 켜진다.

시원하게 볼 일을 보고

변기위에 놓아두었던 할리스 플라스틱 컵을 든다.

손을 싯으며 컵에 물을 함께 받는다.

손을 닦고 컵을 들고 욕실을 나가면서

근처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

다 주지는 않고 3분의 1정도는 남긴다.


(이동) 거실로 돌아오는 길에 

현관옆에 있는 드레스룸쪽으로 가기위해 몸을 튼다.

현관앞을 지나니 센서등이 켜진다.


(드레스룸) 한 손에는 물이 들어있는 컵을 들고

그리고 또 한 손에는 드레스룸에서 득템한 옷걸이를 들고 나온다.


(거실) 드디어 거실로 돌아왔다.

탁자위에 컵을 놓고 

동시에 다른 손을 뻗어 스툴위에 옷걸이를 둔다.

빨래가 다 되면 베란다에 옷을 넣을테니 

그 근처에 두는 것이다.

옷걸이를 놓은 손은 

어느새 스툴 근처에 있는 이젤에 손이 뻗어있다.

컵을 놓아둔 탁자 근처에는 쓰다남은 물감과 붓, 

그리고 붓을 싯고나면 닦는 수건(행주)가 있다.

이젤 앞 쇼파에 앉을 준비를 한다.

오는 길에는 리모콘을 줍는다.

TV를 켠다.

그림을 그릴때는 대부분 청각으로만 TV를 보니까

팬텀싱어와 같은 음악방송을 고른다.

빨래가 다 될 때까지 이렇게 알차게 시간을 보낼 참이다.




이 사례를 다 읽고 난 다음 당신의 느낌은?


나는 지독하게 계획적이라 생각만해도 피곤한 사람일까?

만사가 이런식이면 머리가 터져나갈 것이라고

대충 살지 뭐 저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하고 싶은지?

혹은 누구나 저 정도는 하는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


언뜻보면 이번 사례는 ENFP의 주특기인

이상과 이론과 예측을 따르는 직관(N)이 아닌,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감각(S)을 사용하는 것 처럼 보인다.

또는 자율적이고 유동성이 지배하는 인식(P)이 아닌,

목적과 계획과 절차에 따라 행동하는 판단(J)을 사용하는 것 처럼 보인다.



회사에서 이렇게 S와 J가 잘 나와주면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는 않을텐데.

참 편할텐데.

하지만 나는 보통 이 무기를 잘 꺼내지 못한다.

억지로 윗님들이 납득할 만한 적당한 수준에서 

어쩔수 없이 그저 보여주기 식으로만 사용할 뿐

실제로는 SJ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불편. 


그럼 대체 나는 왜 이러는 걸까?

그냥 편하게 치킨먹고 TV보고 널부러져 있다가 

화장실 가고싶을때 가고,

물먹고 싶을때 가고,

생각날때 빨래하고 빨래널고 하면 안되나?

왜 굳이 저렇게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걸까?

유연+관대하지 못한 저 태도는 무엇이지?!

일단 의문점을 남겨놓고 다음단계로 가자.



우리가 보통 

계획적이라고 얘기하는 부류에 대해 얘기해보자.

극단적 SJ성향의 누군가.

목표가 주어졌을때 우선 계획수립은 필수다.

나의 계획수립 소요시간이 1초였던 것과 대조적으로

그는 많은 시간 계획수립에 시간을 할애한다.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할 행동-발생가능한 위험에 

대비하는 계획도 추가된다.


업무는 이렇게 한다.

관련법령/근거확인을 시작으로

사례조사는 무조건x무조건 필수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그렇게 업무 시작.

해야하는 것들 목록보고 열심히 한다.

빼먹지 않고 열심히 한다.

남에게 맡겨놓은 것들은 진도체크도 겁나 한다.

짜놓은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 힘들어지거든.

혹시 결재과정에서 들을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변까지 준비하고 나서야 마음을 놓는다.


이게 바로 계획적인 사람 아닌가?

치킨먹던 나와 다른 사람인가?


감히 얘기할 수 있는데 다른사람이야! 

읽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답답해져 오고 있다..

근데 왜 나는 그렇게 행동했던 걸까?




답답해 죽겠지?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뭐냐고?

그래. 이제 결론을 내려보려고.


우선 나는 내가 계획짜서 행동하고 있는지도 몰랐어.

진짜야!

다른 글을 쓰는 도중에 깨달았어. 오늘 아침에.


그냥 나는 시.간.낭.비.가 싫어.

나만의 평화로운 휴식시간, 노는시간, 

자는시간, 여유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갖고 싶어.

뭘 하는 도중에 다른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는 ENFP,

한 번에 여러가지를 동시에 하고 싶어하는 쌍둥이자리.

우리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끼거든.


시간되면 사례를 한번 다시 읽어봐.

그럼 명확하게 알게 될듯.

나는 한 가지 목표, 

즉 내가 해야만 하는 노동과 의무에서 해방되어

최대한 빠른시간 안에 나만의 시간을 만드는 것.

그리고 빈 시간은 창조적인 무언가로 채우는 것. 

그게 나의 목표야.

그리고 나에 대한 보상이야.


오직 그것을 위해

나는 시간, 도구, 돈,

그리고 내가 싫어하는 

정말 귀찮은 행동들을 하는 것과 계획짜는 것까지

그렇게 모든 것을 기꺼이 투자했음.



이제 알겠지?

그래 나 좀 피곤한 사람이야.

그래도 너한테 뭐 피해를 입히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을

전혀 스트레스거리로 여기지 않으니 걱정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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