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아테네 고고학 박물관 + 오모니아에 대한 고찰
그리스 개관, 그리고 도착
2017년 겨울, 시간이 좀 생겼다. 러프하게 목적지는 그리스와 터키로 결정하고 우선 출발티켓과 귀환티켓은 안전하게 한국에서 결제하고 떠나는 걸로. 한국에서 그리스까지 한번에 가는 항공편은 없고 무조건 환승을 해야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참 탁월한 선택을 한다. 인천공항이 아닌 김포공항에서 출발해서 베이징을 경유하여 아테네까지 날아가는 36만원짜리 에어차이나. 경유편 이용자의 경우 베이징 무비자입국도 가능하고, 이전에 쓰던 위안화도 좀 남았고, 배낭도 김포에서 아테네까지 바로 부쳐준다고 하니 이전에 못 봤던 것들 보면서 잠시 놀다가는 걸로. 이때 보았던 명13릉 등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언급하는 것으로하고 우선 패스.
그리고 드디어 그리스 도착이다. 게을러서 막바지에 바둥바둥 준비해서 늘 여행갈때마다 완벽한 준비를 못해오는 나이지만 그래도 사력을 다해 알아오는 것 한가지, 바로 시티까지 어찌 가는지에 대한 것이다. 아테네 공항에서 시티까지의 접근은 24시간 운행하는 버스를 이용해서 남들도 다 가는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기로 한다(산티그마 광장인줄 알았다가 나중에 알게된 것은 안 비밀). 정류장 근처에 계시던 아재가 알려주시는 대로 버스표를 사긴 샀는데 코 앞에서 버스 문 닫고 가버리는 매정한 기사님. 아재도 함께 속상해하며 'next bus!'라며 위로해주시고. 나는 괜찮아요 저 시간많아요라고 속으로만 말하고. next bus가 왔을땐 또 갈까봐 미리 타고 있었는데 아재가 다가오셔서 내 표를 내리는 곳 옆에 붙어 있던 기계에 댄다. '삐비빅!' 한다. 응? 엄청 놀랐다. 그냥 종이 주제에 이런 기능이 있다니. 이게 카드였네! 나중에 알고 보니 LG에서 만든거라고. 지하철-버스 환승시스템도 처음 생겼다는데 서울시에서 벤치마킹 했다는 소리에 한번 더 놀랐고.
오모니아
신타그마 광장에서 내려서는 어차피 숙소까지 걸어갈 생각을 했던지라, 그래서 비교적 도보로 이동 가능한 그 곳에 숙소를 잡아놨었다. 그래서 선택한 오모니아(Omonia)지구의 모 호텔. 헌데.. 오모니아.. 아... 오모니아.... 아아아.... 오모니아..... 알고 보니 너무나 악명 높은 동네였다. 분위기도 음산하고 뭔가 툭툭 튀어나올것 같은 분위기다. 어쩐지 숙소비가 다른곳에 비해 싸더라니. 출발직전에 호텔 후기들을 보고 범상치 않은 지역이라는 것을 알긴 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헌데 직접 와보니 등골이 오싹하다. 해지면 칼같이 호텔에 쨩박히기로 다시 한번 마음속에 되새긴다. 호텔은 좁긴했지만 나름 테라스도 있고 깔끔했다. 그러나 테라스가 있으면 뭐하나.. 방이 지상에서 꽤 떨어진 6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가 볼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밤에는 가끔 괴성들이 들렸다. 괜히 서있다가 해꼬지 당할까봐 방 안에서 창밖을 보고 있다가도 큰소리가 들리면 무서워서 커텐뒤로 몸을 숨겼다. 아직도 불가사의하다. 그날 그 무리에게는 무슨일이 있었을까? 여자의 괴성이 들리는것 같더니 왠 무리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져갔었는데 쩜쩜쩜......
결론 : 오모니아는 위험한 동네다.. 숙소가 싼 건 이유가 있다..
아테네 국립 고고학박물관
첫날은 가볍게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을 관람하고 쉬기로 했다. 사실 오모니아에 호텔을 잡은 또 하나의 이유는 지도를 보니 박물관이 도보로 가능한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호텔을 나와 그리스식 첫끼를 했다. 뭘 몰라서 대충 있는거 시켰더니 정말 맛이 없었... 그러나 배고프니 다 먹긴했다. 그렇게 꾸역꾸역 먹고나서 길건너 박물관 도착, 겨울 시즌이라 할인된 가격에 해피하게 입장해주십니다.
요 박물관은 1866년경 최초 설립되어 이후 증축을 거듭하여 현재의 규모가 되었으며, 주로 미케네 시대부터 헬레니즘 시대에 걸친 유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의 미케네는 그리스의 또 다른 지명이다. 물론 본인이 가려고 하는 리스트에도 올라와 있는 지역이다. 그리고 '미케네 시대'는 미케네가 번영했던 시기로써 주로 후기청동기 시대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후기청동기 시대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청동기유물하면 민무늬 토기나 이름은 분명 거울인데 거울같지 않은 청동 거울들이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가 시작되는 초기 철기시대 쯤 되야 뭔가 납득이 갈만한 무언가들이 등장하던 기억이 있다.
박물관에는 일단 들어서자마자 아폴론을 비롯한 미소년 조각상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띄엄띄엄 영어인지 그리스어인지를 읽다보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딩시절 내가 미술시간에 손수 그려드렸던 아그립빠? 아그립빠는 어디있는게냐? 그 분은 구태여 영어를 읽지 않아도 정확하게 얼굴을 찝어낼 수 있습니다만. 그러다 뭐하는 분이신지 몰라서 구태여 찾는 것은 포기하기로 한다.
참고로 내가 이것들을 실제로 보던 2017년 12월에는 분명 이들이 포세이돈인것으로 당연히 생각했었는데 최근 기사를 보니 제우스 인것 같단다. 삼지창을 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번개를 들었을 거랜다. 여튼 뭐 둘다 '설' 이니 믿거나 말거나.
그리고 무척이나 유명한, 부끄러워하는 아르테미스상들, 그리스식 스핑크스 상들 기타등등을 지나쳐서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가멤논의 마스크였다.
뭐 실제로 아가멤논 본인이 썼던 것은 아니며 그저 당시 발굴의 영예를 안았던 하인리히 슐리만이 추측하여 붙인 이름일 뿐이라고는 하지만 요 이름으로 엄청 유명하다. 아가멤논은 분명 이름들은 많이 들어보셨을텐데? 네네 그러하다. 그리스 신화에도 나오고 일리야드에도 나오는 유명한 왕이다. 역사적 고증은 일단 모르겠고 대항해시대 2에서 내가 찾았던 발견물을 바라보며 눈이 반짝이고 있을 뿐. 잘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A급은 되는 보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딘가의 국왕에게 어서 발견물을 보고하러 가고 싶은 느낌.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발견물 보고가 가능한 궁전이면... 이스탄불이려나?
그밖에 아테나의 도시답게 승리에 한껏 취하거나 승리를 향해 이끄는듯한 표정의 아테네상도 참 많았다. 아테네가 아테네인것은 아테나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넘나 탐나는 도시라 포세이돈이랑 아테나랑 서로 가지겠다고 쌈질을 하다가 협의한게 아테네 시민들이 직접 결정을 하게하고 그 결과에 승복하기로 한것. 포세이돈은 물을 주겠다고 했고 아테나는 올리브나무를 주겠다고 했는데 아테네 시민들은 올리브나무를 선택했다. 그래서 아테네는 아테나의 도시가 되었댄다.
이 중에서 더 유명한 언니가 오른쪽 언니임. 실제 파르테논에 내부에 있었을 것이라는, 지금은 흔적도 찾아 볼 수 없는 황금과 상아를 제작했다는 12m 아테나상과 가장 비슷할 것이라 한다. 손에는 니케. 투구에는 스핑크스와 그리핀. 갑옷에는 메두사의 머리.
박물관 규모가 그리 크다고는 못 느꼈는데 애초에 베이징 경유하면서 추운데 뽈뽈거리고 돌아다녔던 것은 물론 뱅기에서 제대로 잠도 못자고 새벽부터 내려서 누비고 다녔더니 피곤이 몰려온다. 아쉽지만 피곤의 여파로 막판에는 지나친다. 뭐 그래도 알차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그리스에서 치킨간 먹기
부실하게 먹은 점심은 이미 꺼진지 오래라 박물관을 나와서는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를 누비며 마땅한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여튼 왠 노부부의 길 안내도 하게되고-그들은 출력한 지도가, 내게는 비록 데이터는 쓸 수 없어도 오프라인에서도 쓸모있는 구글지도가 있었으므로. 그리고 생각보다 식당이 많지가 않아 좀 헤매다가 억지로 발견한 어떤 식당, 마침 비도 올것 같고 어디 가기도 귀찮고 해서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점심식사때 대참사를 겪어서 무조건 가격이 좀 비싸도 그리스식 식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스 음식에 대해 고민해 보았으나 소박한 기억력은 오직 '수블라키' 만을 기억해낸다. 수블라키는 그리스식 꼬치요리다. 세계 어느 곳에서건 고기를 시켜서 실패할 확률은 0%이다. 그러나 점원은 없다는 제스쳐를 취할뿐이고.. 영어가 거의 안 통해서 어찌해야할까 난감해 하다가 점원 뒤로 펼쳐진 음식 더미를 가리키며 뭐냐고 텔레파시를 보내자 "치킨"이라고 답한다. 어차피 말도 안통하고 귀찮아서 그냥 그거 달라고 하고는 비구경도 하고 주변도 살피고.
그러다 머릿속에 불이 번쩍하면서 깨닫게 되었는데 내가 앉아있는 곳이 아랍인들인지 인도인들인지 내 능력으로는 구분이 안되는, 여튼 그리스사람이 아닌 분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었던 것. 어쩐지 그래서 식당이고 뭐고 간판에 아랍어가 써 있었던 거구나. 오모니아는 이런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내 음식은.. 바로 나오긴 했는데 난 분명 치킨을 시킨것 같은데 뭐가 이렇게 퍽퍽한 거냐.. 이것의 정체는 몇 개 더 주워먹어보고 알게 되었다. 간이다.....간이라고요.... 치킨 간인가 보오... 살다살다 내가 치킨 간도 먹어보는 구나. 퍽퍽해서 진짜 억지로 억지로 넘나 미안해서 다 남기지는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꾸역꾸역 반 정도 먹고 마무리했다. 그리고 이 나라도 뭔가 음식을 시키면 샐러드랑 튀긴감자랑 빵을 엄청 준다. 배터지겠다. 결론은 근데 샐러드가 제일 맛있었다..쿨럭.. 나는 그렇게 그리스에서 아랍식 식사를 했다.
집에가자
비는 계속 추적추적 내려주고 슬슬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해서 호텔로 직행한다. 아니 직행 안했다. 아니 직행 못했다. 호텔 근처까지 와서 바보같이 좀 헤메다가 들어왔다. 해가 지니까 무서운 동네는 더 무섭게 보여서 걷는건지 뛰는건지 모를 정도로 빗속을 쏜살같이 내질렀다.
뭐 어쨌든 아테네 잘 도착했고, 박물관도 하나 클리어했고, 무사히 호텔로 복귀했으니 첫날치고는 많이 성공이라고 해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