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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피아 안녕. 스파르타 안녕?

스파르타를 향해 버스는 구불구불 산길을 달렸다.

by 오스나씨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조식은 생략, 다소 밍기적 밍기적 여유를 부린탓에 후딱 짐을 싸고 시간을 거의 딱 맞춰 나왔다.

참 사이좋아보이던 노부부. 영어가 서툴어 마음과 다르게 말수가 적었던 할머니. 언제든 커피준다고 내려오라고 하시던 할아버지. 언제였더라. 1층 현관 근처 계단에 두분이 나란히 앉아서 함께 담배를 피우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왠지 그들만의 공간임이 너무나 짙어보여서,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할수 없는 결계속에 앉아 계시는 듯한 그런 느낌이어서, 무언가 몇십년간 이어져온 습관같은 자연스러움이 있어서, 호텔 내부에서 담배를 피우건말건 어쩌건간에 일개 나라는 존재는 감히 비난을 할 수 없었던 특이한 경험.


그렇게 올림피아의 헤르메스호텔과는 안녕한다. 호텔주변의 올리브나무와 오렌지나무들. 그 이후로도 많은 나무를 보긴했지만 그 곳만큼 탐스럽게 열린 곳은 보지 못했다.



다시만나기 위한 약속일거야

스파르타로 향하기 위한 첫 걸음인 올림피아-트리폴리구간 버스는 12시15분에 도착한다고 했던 것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기고..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나와서 일단 버스타는 곳으로 나가본다. 어제 군것질거리를 사면서 물어본 바로는 역 앞이 시외버스 정류장인것은 듣긴 했는데, 앞을 몇번 지나가긴 했는데 신경쓰고 보질 않아서 정류장표시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다시 가보니 뭐 표지판이 있긴한데 정말 이 곳이 다른 지역으로 가기 위한 시외버스정류장이 정녕 맞는지 의문스러워서 어제 도움을 많이 받았던 레스토랑으로 다시 가서 마지막으로 철판 한번만 더 깔고 민폐모드를 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점도 먹어야 했고 무언가 확실히 하고 가는게 나을 것 같아서.


식당오너겸 쉐프겸 웨이터겸 여행사직원인 아저씨에게 버스정류장을 위치를 물으니 역시나 역 주변이라고 말씀해주시고, 얼핏 봤던 택시타는곳 근처냐고 하니 원래는 버스정류장-역-택시타는곳 순서라며, 그리고 역을 등지고 길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최대한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좋을거라 하신다. 이 말은 처음에 들었을때는 왜 구태여 정류장이 아닌 오른쪽에 서 있어야 하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게된다. 그리고 당최 부근에 작은부스같은것도 안 보였던지라 버스표는 어디서 사냐고 하니 그냥 버스에서 사면 된다고 하신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승객이 없으면 여기 올림피아에 들르지 않는다고 했다. 정류장 어디냐고 아저씨가 확인 차 한번 더 전화를 하셨었는데 그때 들으셨던 모양. 한마디로 밥먹으러 안왔으면, 물어보러 안 왔으면 난 버스를 못탔을거라는 이야기. 정말 다행이다.


함께했던 시간은 이제 추억으로 남기고

오늘 아침은 칼라마리와 착즙쥬스로 한다. 여전히 맛있다. 사실 빵은 잘 안 먹는데 매일 이렇게 많이 주시니 다 못 먹어서 아까울 따름이다.


아침식사, 그리고 서비스로 from house에서 가져다 주신 디저트


내가 식사를 하고 있는 중간에 아저씨는 나만 냅두고 두 번이나 자리를 비우셨다. 먹튀할사람이라고 감히 생각하지는 못하셨던거겠지.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손님은 나뿐이다. 그리고 외출 하시는걸 지켜보니 가죽잠바를 입는 멋쟁이시다. 어차피 시간도 넉넉하고 해서 핸드폰 보고 놀고 있는데 두번째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시면서 무언가를 가져따주심. 달달구리한 그리스식 디저트인데 from house라고 하시는걸 보니 이걸 가질러 나갔다 오신 것 같기도 하고. 우야된동 맛있게 먹었다.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You are really good person!"을 몇번이고 외쳐주고 작별악수를 한뒤 아저씨와 안녕을 한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딱히 갈 곳도 없고 해서 그냥 정류장이 있는 역 부근에서 대기하기로 한다.


역앞 정류장, 그리고 대기타던 벤치. 내 파란색 배낭 특별출연


그런데 12시15분에 온다는 버스는 계속 오지 않는다. 뭔가 대형버스들이 계속 지나가긴 했지만 로컬버스가 아닌 관광버스들인것 같았다. 잘은 모르겠지만 유적지나 어떤 곳에 적어도 백명이 넘는 단체손님이 있어서 특별히 실어나르거나 정기적인 통근버스 내지는 셔틀버스 용도인 듯한 느낌이었다. 버스마다 종이로 출력한 듯한 시간이랑 번호가 붙어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버스에 붙어있던 글씨들을 읽으려고 노력했지만 나중에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너무 많이 지나가서.


내가 서있던 정류장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 같이 서있었다. 뭐라뭐라 말씀을 하셨는데 1도 알아먹지를 못하겠고 당황하면서 귀를 가리키며 나 못알아듣는다 하니 소리가 작다는 말인줄 아셨는지 이번에는 더 큰소리로 침을 튀기시며 말씀을 하신다. 계속해서 역시나 영어가 아닌 그리스어다. 텔레파시로 "너 어디가?" 뭐 이런 신호를 보내시는 것 같길래 "트리폴리!"하니까 고개를 끄덕이신다. 제대로 읽은 것 같다. 이 분도 거길 가시는건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니긴 하셨음.


사람들이 내 뒤쪽으로, 역 앞으로 예닐곱명정도 몰려들기 시작했다. 왠 중국인 가족들도 보이고. 느낌상 피르고스로 가는 사람들일 것 같았다. 어제 식당아저씨가 적어준 종이는 부적처럼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어서(사실 여행이 거의 끝나갈때까지도 계속) 꺼내서 확인해보니 한 시간정도 후에 피르고스행 버스가 올 것이라는것을 알았다.



서로 가야할 길 찾아서 떠나야 해요

그렇게 계속 기다리는데 점점 포기하고 싶어졌다. 나도 저들을 따라서 그냥 피르고스로 가야하나.. 포기해야하나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계가 어느덧 1시, 예정도착시간을 45분 이상을 넘기자 이제는 성질이 났다. 추운데 이렇게 서 있는것도 힘들어서 일단 오른편의 벤치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앉아서 생각을 좀 해 볼 참이었다. 같이 서 있던 할아버지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지만 아랑곳 않고 일단 좀 앉기 위해 걸어갔다. 그러던 차에 눈 앞으로 지나가던 버스 하나. 버스 앞부분에 지독히도 선명한 그리스어로 '트리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 레스토랑 오너 아저씨가 역 앞이 아니라 더 오른쪽으로 가있으라고 했던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 버스는 역앞의 정류장에 정차하는 것이 아니라, 역 오른편의 사잇길에서 튀어나와 그대로 우회전을 해서 가는게 정식 루트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정말 기막힌 타이밍으로 나는 벤치가 있는 역 오른쪽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었고, 그 순간 포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버스를 타지 못했을것이다. 버스기사 아저씨와 나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꽤 있었지만 나는 우리의 눈이 순간 마주쳤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기사아저씨가 세워주지 않고 그냥 가버렸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거리였기 때문이다. 나의 슬프고 간절한 눈빛을 그는 읽었으리라. 급히 탄다고 배낭을 그대로 두 손 들고 뛰어간 뒤 짐 칸에 넣을 생각도 못하고 후다닥 함께 버스에 오른다. 참 인생만사.. 가지려고 하면 가질 수 없고 비로소 포기하면 가질 것이니라.



뭐 예상했던 경치좋은 산길 드라이브

일단 올라탄 버스+중간에 아저씨가 손수 적어주신 버스표


예상대로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 버스는 달렸다. 지대가 상당히 높아서 볼거리가 무진장 풍부했다. 2차선 도로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가는 동안 몇 군데의 마을을 지나고 사람들은 몇몇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고, 나처럼 올림피아서 종점인 트리폴리까지 가는 사람은 기사님 빼고는 없는 듯 하다.


경치좋아요
하늘 구름 나무
강제하차지점

올림피아를 떠난지 한두어시간 지났을때 아저씨가 갑자기 내리라신다. 아니 표까지 끊어주시고 왜? 주변을 살펴보니 눈 앞에 다른버스 한대가 더 있었고 대충 느낌상 저 앞에 있는 버스로 갈아타라는 소리인것 같다. 이렇게 그냥 길 위에서 비공식적인 환승이 이루어졌다. 승객도 적고 길도 험하다보니 이런일이 가끔 일어나나보다. 시키는대로 일어나서 옆에 널부러져 있던 파란 배낭을 끌어안고 잠시나마 정이 붙었던 버스에서 내려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다른 버스에 옮겨탔다. 버스는 계속 달린다.



여전히 길은 높고 구불구불합니다.


중간쯤에서 누가 탔는데 버스안내양 역할을 하는 아이인지. 완전 조증걸린 듯한 아이였음. 자꾸 말시키고 혼자 크게 노래부르고, 스파르타 간다니까 친절쓰하게 시간이랑 기타등등 이것저것 자꾸 말해주려하고. 생각해보면 이 루트로 버스를 타는 한국인여자애가 몇 명이나 있었을까 싶다. 오늘 만난사람들 모두 다 영광인줄 알아!!



트리폴리 도착, 목적지까지 코 앞

트리폴리 버스터미널

아까 1시쯤 버스를 탔었으니 서너시간 걸려서 트리폴리에 도착한것 같다. 사진을 보니 시계가 16시 24분. 그런데 버스에서 내렸는데... 하... 진짜 무진장 추웠다.


여기서 스파르타 가는 버스는 1~2시간에 한대는 무조건 있으니 일단 안심한다. 표를 끊는데 끊어주는 언니가 버스가 금방 올것처럼해서 서둘러서 나도 급히 나가있었는데 낚였다. 예정시간보다 몇십분이 지연되어서 도착했다. 버스가 들어 올때마다 이 사람 저사람 붙잡고 이거 스파르타냐고, "스파르타?" "스파르타?"만 계속 반복해서 물어보다가 드디어 마지막에 물어본 여자애랑 함께 같은 버스에 올랐다. 당황스럽게 근데 버스에 자리가 한 개도 없다. 같이 탄 여자애는 어찌어찌 껴앉았지만 나는 배낭메고 서서간다. 뭐 얼마 안걸리는 거리인 것 같으니 그냥 참고 가겠다. 다만 배낭을 둘 마땅한 공간도 없었던 관계로 그대로 메고 있으려니 조금 민폐가 되는 것 같았...지만 어쩔수 없다. 꿋꿋하게 서서 한국에서 다운받아온 OCN 모 드라마 1편을 보기 시작했다. 아 근데 넘나 우울한 드라마다. 보고 있으려니 축축 쳐진다.



안녕 스파르타?

드디어 스파르타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오래걸렸다. 도착하니 벌써 스믈스믈 저녁때가 되어간다. 결국 꼬박 하루를 소비한 셈이다.


그리스에서 버스타는 것은 좀 도가 튼 것 같은, 아쥬기냥 이제는 자신감이 조금은 생긴 느낌이 든다. 이제 어디에서 내리는지 정도는 지도에서 바로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 마법의 단어는 'KTEL'이다. 이제는 넘나 익숙한 단어 'KTEL'. 첨에는 버스정류장 또는 버스와 관련된 것들에 그리스 문자로 'ΚΤΕΛ' 욜케 써있어서 '크테아'로 읽었었는데, 이제는 정확하게 '크텔'이라고 읽는다. 그리스 버스회사 이름인지 시스템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그리스 구글지도에서 'KTEL'을 치면 왠만하면 버스정류장이 검색된다. 나중에 가게되는 로도스나 델피에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아까 스파르타로 오는 도중 버스에서 배낭메고 힘들게 서있다가 한 손으로 예약했던 호텔은 대충 터미널에서 1~2킬로 떨어져있는것 같으니 그냥 걸어가기로 하고 다시 배낭을 고쳐멘다. 참고로 부킹닷컴에서 예약할때 한글로 스파르타라고 치니 아무것도 안 나오더라. 스파티라고 쳐야 나온다. 영어로 쳐도 안나오길래 구글지도로 가서 스파르타에 있는 아무 호텔이름이나 가져와서 부킹닷컴에서 재검색한결과 알아냄. 잘은 모르겠지만 영어식 이름이 스파티인가? 여기 사람들은 그냥 스파르타라고 발음하던데.


호텔을 향해 걸어가면서 보니 은근 스파르타는 큰 도시이다. 뭇 블로거들이 볼거 정말 없다고 아테네와 비교하면 제대로 망한도시라고 거기 왜 가냐고 하는 수준이라 그냥 고만고만한 올림피아같은 작은 도시일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차도 엄청 많고 사람도 많다. 퇴근시간이 되어가는지 길도 제법 막힌다.


메인도로, 호텔 테라스에서 찍음


호텔은 완전 중심지에 있었다. 부킹닷컴에서는 2성급이라고 했는데 내가보기엔 적어도 3성급 이상은 되는것 같다. 사실 가격이 제일 싸서 고른건데 가성비 최고였음. 이 동네가 물가가 싸서 그런걸수도 있고 바로 전에 있었던 헤르메스랑 비교되서 그런걸수도 있고. 뜨거운물 콸콸나오고 난방도 쩔고. 무엇보다 굉장히 피곤하고 귀찮았음에도 불구하고 물이 필요하니 밖에 나가려고 했는데 냉장고에 물이 두통이나 들어있다는 것. 냉장고가 있는 그 자체도 신기했는데.


스파르타->미스트라스 버스 출발 시간

리셉션언니도 넘나 친절하고. 스파르타 지도를 펼쳐지더니 갈만한 곳들을 하나하나 다 찍어주는 것은 물론 언제 문열고 문닫는지까지 볼펜으로 다 적어준다. 그리고 미스트라스 얘기를 한다. 사실 미스트라스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 걸어갈수 있는 거리가 아니라 포기했었는데 버스가 있댄다. 또 손수 터미널에 전화해서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을 받아 적어준다.

미스트라스는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니 아침 9시반이나 11시반 버스를 타고 갔다가 돌아오면 최고일것 같다. 네네. 내일 가보겠어요.









현재 오스나씨 위치 : 트리폴리 찍고 스파르타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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