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올리브 나무 아래는 참으로 평온했지.
스파르타를 떠나는 날이다. 오늘은 애껴두었던 유적지랑 박물관을 오전중에 마무리하고 13시15분 코린토스행 버스를 타는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사실 좀 출발 전부터 찜찜하긴 했다. 피르고스에 올때 잠시 들렀던 코린도스는 시티내부가 아니라 그냥 그런 휴게소였던지라. 설마 거기서 나를 버리고 가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근데 뭐 거기서 내려도 무슨 수가 있겠지. 이젠 나도 KTEL의 시스템을 이해하게 되어서, 아니 이 그리스에 너무나도 적응해버려서 겁이 없어져 버렸던지 허세가 작렬했음이 분명하다.
About 스파르타
스파르타야 뭐 아테네랑 비교해서 자주들이야기 하시는데 어렸을때부터 나는 희안하게 아테네보다 스파르타가 더 좋았다. 뭔가 민주주의의 시초랍시고 뭔가 굉장히 띄운다는 느낌에 거부감이 들었었다. 원래 남들이 다 하면 왠지모를 반발심이 생기는 나란 사람. 그리고 뭔가 아테네는 잔꾀가 많은 얍실한 이미지 그리고 스파르타는 무식하게 직진만 하는 뚝심있는 이미지. 남자로 따지면 밀당쩌는 나쁜남자 vs 츤데레 날리는 무뚝뚝한 남자랄까? 알아보니 '라코닉'이라고 하는 스파르타 화법이 유명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패기쩌는 마케도니아 왕이 "내가 스파르타를 정복하면 어케하고 어케하고 어케어케하겠다" 협박을 길게 늘어놓았는데,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스파르타인은 그냥 한마디만 툭 던지고 말았다는거. "만.약.에." 이 얘기듣고 소름이. 유사한 예시가 300에서도 나온다. 그 유명한 대사. 앞말 뒷말 다 필요없어. 뭘하다 왔는지 뭐하기 위해 왔는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그런 건 아무것도 모르겠고, 그냥 "This is Sparta!"
그리고 스파르타 하면 뭔가 독재정치의 표본, 일반인들의 의견은 쌍그리 무시하는 비민주적인 국가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권력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왕을 두명씩 배출하는 등 견제를 위한 장치들이 꽤 많았더라. 그리고 신기했던 것은 아테네 여인들이 주로 칩거하며 지냈던 것과는 달리(그리스 신화의 여신들이 그렇게 자유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 여인들은 야시꼴랑한 자유분방한 옷들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것도 특이했다. 그리고 노인공경사상이 널리 퍼져있었다는 것도. 많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분들이라 그만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라 했다. 올림픽을 구경하러 온 어떤 노인이 아테네쪽 관중석에는 자리가 없어서 이리채이고 저리채이다가 스파르타 관중석 쪽으로 오니 모든이가 일어서서 자리를 양보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
또한 공동으로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똑같은 메뉴로 함께 식사를 했다는 것. 저녁은 꼭 같이 먹었다는 것. 그리고 평소 생활은 근검절약과 절제가 몸에 배어있었다는 것. 반면 모든 그리스인들이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을 기피했던 것과 달리 자유로운 장발족이었다는 것도 완전 신기했다. 그리고 이러한 스파르타가 멸망한 원인은 결국 저출산때문이었다는 것도 소름이 돋았다. 나라가 몰락해가면서 당장 내가 먹을 것도 없는데 아이를 낳아도 양육이 불가하여 출산을 포기하게 되는. 그리고 출산율이 떨어지니 키울 전사가 부족하고, 그러다보니 전쟁이 불가하고 그러다 보니 only 정복전쟁을 통해 물자를 공급하던 그들은 더더욱 몰락하고. 이제는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서 안전불감증 마냥 와닿지 않는 우리나라의 저출산 고령화. 이것을 과거 사례에서도 만날 수 있을 줄이야. 글을 적기 전에 이것저것 찾아보니 내가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았다.
비맞을 운명을 오늘도 자처하는 오스나씨
여기서 참 빙구짓을 하는데 그냥 리셉션에 우산은 없는지 물어봤었으면 되는데 물 튕겨내는 비옷스러운 회사잠바도 아니고 수분과 접촉하면 100% 흡수율을 자랑하는 싸구려 오리털파카를 입은 주제에, 배낭안에 우산도 있었으면서 다시 올라가기는 귀찮아서 대체 무슨 똥배짱이었는지 그냥 뛰쳐나갔다. 비야 뭐 조금 오다가 말겠지 하는 정말이지 패기 넘치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목표가 생기면 잔머리 안 쓰고 그대로 밀고 직진하는 스파르타의 기상에 홀렸던 것이 분명하다.
일단 호텔을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꺾는다. 저기 그 유명한 레오니다스의 동상이 있을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부근에 유적이 있댔지. 호텔 체크아웃 시간은 나올때 물어보니 12시라고 했었다. 이제 겨우 9시. 시간은 충분할 것 같다. 이거저거 둘러보고 밥먹고 들어가서 짐 가지고 나오면 되겠지 뭐.
레오니다스님과의 조우
메인도로의 끝에 동상이 있었다. 님하가 바로 그 유명한 300의 주인공. 살라미스 해전을 아테네가 치를수 있었던 것도 알고 보면 이 사람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스파르타가 주축이 된 그리스 동맹군이 페르시아 군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살라미스 해전하면 아테네인데, 여튼 그 공이 너무 아테네로만 쏠린것은 아닌지. 뭐 결국 그로 인해 페르시아가 삐끗하며 뒷통수에 불이 번쩍한 것은 맞긴 맞지만. 하기사 뭐 근데 어차피 월드컵에서도 패스로 골을 넣도록 도와준 사람은 잊혀지고 결국 골을 넣은 사람만 기억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냥 인생이 그런거야.
그러나 이 유명한 테르모필레 전투에 동원된것이 only 300명뿐인 걸로 다들 착각을 하시는데, 특히 영화를 보지 않아서 대충만 알고있는 나같은 사람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랬다. 사실은 300명은 레오니다스의 호위병들이자 진짜 순수 스파르타 혈통의 시민들이었고, 그 외 1,000명, 도합 1,300명의 스파르타 국적의 군인들이 전투에 나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이 페르시아를 저지한 기간, 그래서 살라미스 해전이 가능하게 했던 그 3일은 그리스에서 모였던 꽤 많은 수의 연합군들이 페르시아를 저지한 기간이며 실제 1,300명의 스파르타인들은 몇 시간도 못 버텼다고 한다. 영화에서 제대로 재탄생 되었던건가 보다.
굉장히 결론이 씁쓸하긴 한데 그래도 개죽음당할 것을 알면서도 당시 왕족을 포함한 지배계층의 신분으로써 참여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테지.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후방에서 기꺼이 희생했다는 것. 뭐 그래도 님하를 주인공으로 영화도 만들어지고 이렇게 동상까지 세워준거 보면 그래도 성공한 인생인듯 싶습니다. 또 혹자의 말에 따르면 전투 중 장렬히 전사한게 아니라 돌아가는 길에 허망하게 화살에 맞았다는 말도 있더만. 이러한 평가들이 의도된 것인지 우연히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해지다가 감히 내가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싶기도 하고. 우야된동 영화는 보지 않아서 그 감동이 쬐금 덜하긴 하지만 나는 감동했다고 말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면 그냥 멋있었으니까.
비 피한다고 건물에 붙어있는 캐노피에 찰싹 달라붙어서 동상을 보고 있자니 별 잡생각이 다 든다. 왠지 비가 더 그칠것 같지는 않으나 다시 돌아가기는 여전히 귀찮귀찮. 이제 동상과는 안녕하고 유적지를 향해 갑시다.
스파르타 유적지 (feat. 장대비 콸콸)
동상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돌아서 가면 유적지가 나온다. 헌데 얇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가려니 역시나 귀찮음에 그냥 비를 맞는것을 택한다. 아호. 왜 안 돌아갔니? 호텔 방 내 배낭속에 1회용 비옷이랑 우산이랑 다 챙겨왔으면 뭐하누. 에이 뭐 그래도 좋은 경험이라 쳐두자. 시간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스뽜르타에서 스뽜파르타식으로 강한 전사의 기운을 받아 빗속으로 돌진하던 오스나님. 참 너 빙구다..라는 야유가 아닌 박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유적지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뭐 표 파는 곳도 없고 그냥 무료입장인것 같다. 표지판들도 있고 한거보니 관리를 아예하지 않는 건 아닌데... 뭐가 대체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여기 진짜 좀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그냥 돌뎅이만 즐비한 이 작금의 사태에 대해 통탄을 금치 못했을듯. 특히 그런사람들한테 입장료 받았으면 분노를 더 금치 못했을거라능.. 하지만 오스나씨는 폐허도 즐기는 편이라.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그 공간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라. 그리고 무엇보다 여길 보기 위해 스파르타에 왔던 까닭에 전혀 분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래된 올리브나무가 많다 했더니 올리브나무 주인들과의 보상관련 갈등으로 인해 유적지 발굴 및 복원은 거의 멈춰있는 중이라고 한다. 뭐 덕분에 나는 무료로 입장한건가요? 그리고 그 언젠가 몇 년후? 몇 십년 후에 가면 뭔가 다른 모습으로, 쌔삥하게 브랜드 뉴하게 변해있을지도 모르지. 그 전에 다녀와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그나마 좀 이게 뭐다라고 보이는 것이 이 극장이다. 여기서 잠시 비가 그치는 듯 해서 넘나 기분이 좋았다. 걸어왔던길 보다 극장은 지대가 좀 낮은 아래쪽에 있는데 극장 안 쪽으로도 걸어서 관통이 가능하도록 오픈되어 있는 것 같아서 내려가보기로 한다.
근데 여기서부터 비가 진짜 엄청나게 왔다. 비 그따위꺼 무시하고 내 갈길 가고 있었는데 이건 진짜 아니다 싶었다. 비를 피할데라고는 올리브나무 아래뿐이다.
여기서 꽤 오랜시간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그나마 기둥이 다른 나무들에 비해 좀 넓었다고 해야하나. 왠만하면 장대비를 뚫고 가보겠지만 그때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 시야를 완전 가리는 상황이었던지라. 근데 허허 기분 진짜 묘했다. 사람은 1도 없는 폐허같은 스파르타 유적지의 올리브나무 아래서 홀로 비를 피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나중에 다시 추억하면 정말이지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계속 그러고 있는 것도 무리가 있어서 출구쪽으로 걸어나오면서 나무밑으로 숨었다가 잠시 쉬다가 다시 나와서 빨리 걷는것을 반복했다. 한국에서 우산 아래 있을땐 바람이 불면 빗방울이 뭉탱이로 떨어지는 게 싫어서 일부러 나무밑을 피했던 것 같은데, 여기서는 이렇게 나무밑이 언제 나올까 갈구해가며 걸어나올줄은. 여기서 또 인생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유적지 탈출, 장대비 탈출, 스파르타 박물관 입성
그렇게 유적지를 빠져나왔다. 건물들이 모여있는 시티중심에 다다르니 건물에 붙어있는 캐노피들 덕분에 그리 많은 비를 맞지는 않아도 되었다. 그 참에 여새를 몰아서 박물관에 가보기로 한다.
박물관은 메인도로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비수기인데다가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이라 그랬는지 아니면 비에 완전 젖은 내 모습때문인지 서너명되는 박물관 직원들은 나를 보고 무진장 놀라는 듯 했다.
학창시절에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참 많이 비교하는데 그것을 몸소 깨닫던 시간. 왼쪽이 스파르타꺼, 오른쪽이 그리스 고고학박물관에서 찍어두었던 아테네꺼다. 그리스 정부자체가 아테네 유적들은 복원도 열심히 하고 관리도 열심히 하는 반면 스파르타꺼는 후순위로 밀려서 이렇게 된 것일수도 있는데.. 또는 이후에 그리스를 지배한 로마나 기타등등 다른 민족들이 아테네를 정통으로 치고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도 있는데... 실제 기본적인 이유는 배웠던 이유 바로 그것. 폐쇄적이고 강한 군인중심의 스파르타민족의 특수성때문에 예술쪽은 상대적으로 소홀했기 때문. 그래도 나름 할것들은 다 했다. 만들것들은 다 만들었다. 아예 유물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자꾸만 Dioscuri가 반복되길래 뭔가 찾아봤더니 디오스쿠로이... 쌍둥이자리의 두 주인공이었다. 카스토르와 리데우케스. 아빠는 제우스 엄마는 레다. 첨에는 이게 왜 여기있는지는 잘 몰랐었지만 일단 쌍둥이자리라니 반갑다. 참고로 오스나씨는 변덕쟁이 쌍둥이자리입니다.
그리고 쌍둥이랑 남매지간인 헬레네 되시겠다. 그래서 아까 쌍둥이자리의 주인공들이 있었던 거로군. 남자는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로 추정. 헬레네는 원래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랑 결혼했는데 파리스랑 바람나서 트로이로 가지요. 그래서 트로이전쟁 일어나고. 네네 바로 그 헬레네랑 파리스인듯. 근데 이 여자도 챰 정략결혼도 아니고 본인이 고른 남자인데 아무리 에로스가 화살을 쏘았다지만 지조없이 굴어서 전쟁까지 하게 만드냐능.
오우 그리고 이게 여기있는줄, 실제 있는 조각을 동상으로 만들었는줄은 몰랐다. 후에 레오니다스는 영웅으로 추앙받고 후에 신전도 세우고 축제도 하고 해서 이런 조각품도 남아있는 거겠지. 사실 정보도 많이 없고해서 무대뽀로 온 박물관이었는데 이런게 있구나. 그리고 제일 마지막 방, 제일 끝에 있는걸 보니 이게 하일라이트였던것 같다.
스파르타는 모자이크도 유명했나보다. 사실 이렇다 할 유물들이 보존이 안되어서 다 사라지고 그나마 남은 것이 이런 거라 유명했나보다...라고 내가 감히 추측하는 걸 수도 있지만. 이 작은 박물관은 중앙을 기준으로 왼쪽방 오른쪽방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4분의 1정도가 이 모자이크들로 채워져 가득 있었다는...
박물관은 늘 그렇듯 방마다 감시자들이 대기한다. 모여서 노시다가 내가 들어가니 나를 따라 들어오던 직원님들. 사실 이제 별로 신경도 안 쓰인다. 그냥 나대로 보고 사진도 찍고 찾을 것이 있으면 찾기도 하면서 혼자서도 눈치안보고 잘 논다. 그리고 언제 어디선가 외국인들이 하는걸 보고 배웠는데 항상 관람을 마치고 나갈땐 땡큐를 잊지 않는다. 감시해줘서 고맙다는 건 물론 아니겠지만. 이렇게 전시해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하는거겠지. 여튼 어색어색하게 나오는 것보다 진짜 이렇게 한마디라도 해주면 분위기가 많이 유해진다. 스파르타 박물관을 나오면서도 어김없이 보이는 직원들에게 땡큐를 방사해드렸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런 그들을 보고 밝게 웃었다. 그들도 나를 따라서 정말 밝게 웃었다. 우리는 왜 웃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사실 박물관에 간건 분명 실내는 따뜻할테니 옷도 좀 말리기 위함도 있었는데... 옷이 마를정도의 따뜻함은 커녕 박물관 정말이지 입김이 나올정도로 개추웠다. 안타깝다. 생각보다 시설이 정말 넘나 부실했다. 쟈쟈 이제 다시 빗속으로 뛰어들자.
아점은 넘나 맛좋은 샌드위치로
그냥 호텔로 들어가려다가 호텔 근처에 있는 베이커리로 들어갔다. 사실 첫날 도착했을때부터 봤던 곳이다. 샌드위치가 참 먹음직스러워서 유심히 봤었다. 이대로는 버스터미널까지 이동도 해야하고 하니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식당가서 뭔가를 먹는다는 것은 무리일것 같고 차라리 저걸 사가지고 호텔에 들어가서 먹으면서 옷도 말리고 신발도 말리기로 한다.
12시까지 꽉꽉채워서 체크아웃을 하고 나왔다. 폭싹 젖어버린 옷을 갈아입으려다가 짐을 이미 다 싸놓은 상태라 다시 풀기도 그래서 걍 입고 나왔다. 그리고 젖은 옷을 배낭속에 다시 우겨넣는 건 더 미련한 짓처럼 보였기 때문에. 사실 근데 옷이 젖은 것은 상관없었는데 나의 이 오리털 방한화가 젖어버린 것은 너무 싫었다. 발냄새 나는거 아니야? 그래도 뭐 답이 없었다. 신발이 하나뿐인 여행자의 한계올시다.
버스터미널로
버스터미널 도착해서 당당히 "코린도스!!" 하면서 표를 끊었는데 뜨헉 3시꺼를 준다. 원래 타려고 했던 1시15분 버스는 없거나 매진이었던것 같다. 시간 맞춰서 왔던건데 갑자기 시간이 넘나 많이 남아서 이걸 어째야하나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택배회사도 아니고 뭐라해야하나... 도시와 도시간 버스를 이용해서 짐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인가? 여튼 거기 오피스로 들어가서 당당하게 짐을 좀 맡기겠다고 했다. 아재들은 이건 뭐 이리 황당한 시츄에이션?? 뭐 이런 애가 다 있니?? 라는 표정이셨지만.. 결국 뭐 말도 안 통했지만 또 마음으로 대충 알아먹으신듯하다. 1시간만 있다가 온다며 검지 손가락 하나를 펴서 보여주고 "쪼오기 가따가 다시올게"를 한국말+바디랭기지로 시전했다. 근데 나중에 떠날때 버스안에서 자세히 보니 저 사진과 같은 짐 표시 그림이 보이긴 했다. 짐표시가 있으니 맡겨주기도 하는건지. 이건 혹시 가시거든 직접 시험해보시길.
잠시 짬을 내어 갔던 올리브 박물관
그리고 선택한 곳은 올리브박물관이다. 메인배낭은 아까 터미널에 맡기고 작은 배낭만 메고 드디어 가져온 우.산.을 개시하고 걸었다. 우산은 사실 여행용이라 엄청 가벼운, 그래서 좀 부실하긴 했는데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버스터미널에서 올리브 박물관까지의 거리는 좀 되었다. 스파르타시에서 버스터미널과 올리브박물관은 끝과 끝이었다. 그래도 비오는 스파르타를 내가 또 언제 걸어보겠냐 싶어서 즐겁게 걸어갔던것 같다.
우야된동 스파르타 요 일대가 올리브가 유명하긴 한가봉가. 사실 호텔의 어메니티들도 다 올리브였다. 비누도 써보니까 좋아서 일부러 하나 챙겨서 가져오기도 했을 정도로.
사실 이것들은 유물도 아니고 내가 왜 여기있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뭐 시간은 정말 잘 때운것 같긴하다. 호텔언니도 추천한 곳이고 했으니깐.. 근데 좀 슬펐다. 여기는 댄따 따뜻하고 완전 건물도 신식인데다가 동선이고 뭐고 잘 짜놓고 설명도 잔뜩... 한마디로 오전에 본 고고학 박물관이랑 차원이 달랐다. 스파르타가 유적으로 안되니까 올리브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건지... 좀 씁쓸했다.... 이 돈이면 차라리 고고학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잘 조성하면 좋았을것을....
사실 생각보다 볼게 없어서.. 아니 사실 흥미가 없어서 그리 긴 시간을 보낸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여기는 특이하게 관람객이 있긴 했었다. 2명.
이제 돌아가자 터미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