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와 홍련’은 전래 동화라고 알려졌으나 효종 때 철산에 부임한 정동흘이라는 부사가 처리한 살인 사건을 기본 모델로 한다.
‘장화와 홍련’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
"이거 완전 장화와 홍련이네.. "
어느 기자에게 한 말이다.
‘친족 성폭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주변에 있어왔고,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은폐되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화와 홍련’은 ‘미소와 아름’ 두 청주 여중생 사건과 매우 비슷하다.
만약 장화가 혼자서 연못에 빠지고 이후 홍련이 진실을 드러내는 노력이 없었다면장화는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정신병으로 자살을 한 아이가 될 처지였다.
역시 이 사건에서도 아름 혼자서 친족 성폭력을 견디다 자살을 했다면 결국 장화와 같은 처지가 됐을 것이다. 물론 다른 점도 있지만 여러 점에서 ‘미소와 아름’은 ‘정화와 홍련’과 닮아 있다. 이제 천천히 그 이야기를 써 보려 한다.
아비가 딸을 강간하는 것은 우리 조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철산 관아의 주변 길을 걷던 철산 부사 정동흘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틀 전 평안 감사로부터 회답을 받았다.
‘부사의 말은 이해 가지만 장화와 홍련의 아비 배무룡은 철원의 선비들이 스스로 뽑은 좌수(座首, 향청의 우두머리)이며, 아비가 딸을 강간한다는 것은 우리 조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철산은 압록강 동쪽의 추운 땅이며 오랑캐 거란으로부터 돌려받았으나 여전히 나라의 위엄은 서지 않고 있소. 먼저 오랑캐의 침범을 막는 걸 우선하였으면 하오. 좌수 배무룡을 고신(拷訊)하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오.’
역시 예상했던 바이다. 배무룡을 고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배무룡의 자백을 어찌 받아낼 수 있단 말인가. 이제 저녁이 되면 좌수 배무룡이 관아로 올 것이다. 홍련의 기일이 내일이니 장화와 홍련의 넋을 구천에 보내주고자 관아로 오라고 어제 기별을 넣었다. 오겠지... 오긴 오겠지...
소문은 소문일 뿐이다.
홍련이 자살을 한 5월 12일로 여름이 이제 한 치 앞인데 철산은 날이 일찍 저물었다. 말 그대로 철산이 사방을 가로막은 지역이니 날이 일찍 저무는 것은 당연하다. 날이 일찍 저무니 배 좌수도 일찍 올 것이고 내일 자시가 되기 전 배 좌수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오늘 자백을 듣지 못하면 이 사건은 이렇게 끝나 버릴 것이다. 걷다가 루틴처럼 도착한 관아의 대청에서 여러 생각에 빠져 있는데 아전과 노비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속에 저 멀리 검은 옷을 입은 좌수 배무룡이 철산의 유생들과 들어오고 있다.
키는 휜 칠하며, 얼굴은 크고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순하다. 또한 공부를 잘한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사냥과 무예가 뛰어났다 하며, 부인 장 씨를 얻어 재물이 늘자 유생과 무인과 두루 친하여 철산의 좌수가 된 남자..
부사로 부임하기 이전에 들은 소문에 의하면 재혼을 한 허 씨의 용모가 추하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와서 고신(拷訊)을 하며 보니 그만하면 어디 빠지지 않는 용모였다. 이외에도 부사로 부임하기 전 소문은 틀린 곳이 많았다. 장화가 강물에 빠질 때 근처에 있었다는 장쇠는 배무룡과 허 씨의 아들이라 하였으나 배무룡과 노비의 자식(허 씨의 자식은 아들 2명, 하기사 '장쇠'라는 이름만 보아도 하인의 이름인데 허 씨의 아들이 아님은 분명하지 않던가)으로 배무룡의 집에서 5리 떨어진 곳에서 배무룡의 일을 돕고 있었고, 배좌수가 첫 번째 부인 장 씨와 매우 돈독하였다 하나 주변의 말을 들어 보니 장 씨 생전에는 오히려 노비였던 장쇠의 모(母)를 매우 아꼈다는 것이 말들이었다.
철산에 부임하기 전 이 사건에 대해 한양에서 전해 들은 말들이라는 건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이 많았다.
유서를 확인합시다!
배 좌수가 인사를 하고 관아 마당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뒤편에는 철산을 대표하는 가문과 유생들이 엉거주춤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반은 억지로 끌려 온 듯하고, 반은 배좌수의 무죄를 강변하겠다는 눈빛이다.
“좌수는 올라오지 않고 어찌 마당에 무릎을 꿇는 것이요!”
“제가 미련하여 두 딸의 억울함을 듣지 못하고 저 허 씨(계모)의 계략에 속아 금쪽같은 제 두 딸을 죽였으니 부사께서 그 죄를 물어 저를 만 번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마당에 흐느끼는 배 좌수의 뒤로 철산의 가문과 유생들이 하나, 둘씩 눈치를 보다 무릎을 꿇더니, 죄다 꿇어앉아 배 좌수에 대한 선처를 바란다.
참으로 난감하다...
“좌수를 오늘 고신(拷訊)하러 부른 것이 아니오. 오늘은 장화와 홍련의 넋을 기리고 억울함을 달래고자 할 뿐이며, 며칠 전 잠을 자는데 산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지 못할 형체가 보여 잠이 깨었는데 홍련의 유서라 하며 나에게 주었소. 그대에게 장화의 유서를 가져오라 한 것은 홍련의 유서와 그 내용을 맞추어 보려 한 것이오. 장화와 홍련이 구천에 가는 길을 위해 준비한 제상에 가서 술을 한잔 서로 올리며 나와 단둘이 유서를 확인하자는 생각에서 부른 것이니 좌수는 이제 그만 일어나 나와 함께 방에 들어가십시다!”
둘째 아씨네. 홍련 아씨야!
귀신이 홍련의 유서를 부사에게 주었단다. 그 소리에 주위가 웅성거렸다.
“부사 나리, 홍련의 유서라 말씀하셨는지요?”
“그렇소! 그동안 좌수가 준 장화의 유서는 잘 읽어 보았고 홍련은 유서가 없이 죽었다 하였으나, 생각해 보면 홍련의 귀신인듯한데 내게 홍련의 유서라며 주더이다. 그 귀신의 키가 좌수보다 한 척 정도 적고 얼굴 왼 빰에 점이 있더이다!”
“둘째 아씨네... 홍련 아씨야” 주위가 웅성거렸다.
“다른 이들은 그 자리에 있고 좌수는 이제 그만 일어나서 방에 들어갑시다!”
정 부사의 말이 떨어지자 배 좌수는 일어나는데 다리가 휘청거렸다. 걸어서 올라가는데 금세 쓰러질 듯하다. 관아 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상복은 입었지만 당당한 모습이 아니었다.
“혹시 계모 허 씨와 장쇠에게 질문을 해야 할 수 있으니, 마당에 대령해 놓아라!”
“예”
정 부사의 말에 형방과 사령이 계모 허 씨와 장쇠를 옥에서 꺼내려 바삐 움직인다.
홍련의 편지 한 장을 든 정 부사와 장화의 편지를 든 배 좌수는 ‘장화와 홍련’의 넋을 기리기 위해 제상을 차린 방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