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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주 김석민 법무사 Dec 22. 2021

아빠, 배무룡의 변(辯)

꿈에서 아빠가 성폭행했다.

장화의 외가에서 신문고를 치다.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니 장화와 홍련의 제상이 차려져 있다. 정 부사와 배 좌수는 제상을 마주 보고 앉았다. 한 식경(약 30분)이 지날 때까지 둘은 아무 말도 없다. 촛불이 흔들린다.


이 사건은 원래 두 아이가 자살을 한 사건으로 한양에 알려졌다. 그런데 귀주의 장화 외가에서 임금에게 억울하다 상소를 올리고, 신문고를 치더니, 격쟁(擊錚)을 하기도 하여 한양에 떠들썩  알려졌는데 두 아이의 자살에 원인이 있을 것이니 조사를 하자는 여론이 한 파벌이 되었고, 이미 자살로 끝난 사건을 들추어내어 양반집 아녀자의 행실이 도마에 오르는 것은 백성들에게 좋지 않고, 매번 신문고를 울릴 때마다 조사를 하다 보면 조선 팔도에 자살을 한 사건마다 임금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하니 이는 법도에 맞지 않는다는 여론이 한 파벌이 되었다.


여름이 지나도 격론이 줄지 않자 가을 초 임금께서 억울함이 있으면 풀어야 하고, 괜한 소문이라면 진상을 밝히라며 정 부사를 철산에 보낸 지 이미 3달이 되어 사건의 진상에 대한 장계를 올려야 할 것인데 여전히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그래도 이제는 수 일 내로 장계를 올려야 할 시간이 되었다. 오늘이 사건의 내막에 대한 자복을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일 것이다.       



꿈에서 아버지가 자기를 겁탈하였다.


배 좌수가  움찔하며 침묵을 깬다.    

“나리! 홍련의 유서를 제가 볼 수 있을는지요?”

“좌수께서는 유서를 보시기 전 그동안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제게 다시 설명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배 좌수는 “휴” 짧은 단말마의 한숨을 뱉는다..


“사또께서 아시다시피 장화가 아침에 일어나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저와  죽은 어머니 장 씨를 보았다’는 등의 헛소리를 하여 몸이 좋지 않은 듯하여 약을 달여먹였습지요. 제가 밖에서 일을 보고 들어오면 밤마다 장화의 옆에 가서 보살폈지만 차도가 없었습니다. 허 씨가 장화에게 태기가 있다고 하였는데 아무리 장화가 행실이 좋지 않아도 그런 일은 없다고 제가 오히려 허 씨를 야단쳤습니다. 그런데 올봄 3월 11일에 장화의 방에서 방금 태어난 아기가 발견되었다고 허 씨가 제게 달려왔습니다. 그날 하도 놀라 허 씨와 상의를 하자 태어난 아이는 죽은 듯 하니 뒷산에 빨리 묻자고 하여 그 말대로 하였습죠. 알고 보니 저 밖에 있는 허 씨 계집이 저를 속인 것입니다. 아니 장화의 방에 쥐의 털을 뽑은 핏덩이를 갖다 놓고 장화가 외간 놈과 정을 통해 애를 낳은 것이라고 저를 속일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어리석어 악랄한 계집에게 깜빡 속았습니다. "


배 좌수가 말을 연이어 간다. 이미 수 차례 진술한 내용인지라 이제는 거의 외운 듯했다.


"그래도 제가 딸아이를 보살피려 했는데 아이의 정신병 증세가 점점 더 나빠져 부득이 4월 28일 귀주에 있는 장화의 외가로 보낸 것입니다. 저 장쇠 놈이 제가 장화를 죽이라고 말을 했다지만 저 장쇠 놈은 나리가 보시듯 정신이 나가 미쳐 있는 놈이므로 믿을 바는 못 됩니다. 나으리...”      


“좌수께서는 4월 28일 굳이 그 야밤에 장화를 몸종도 하나 없이 장쇠와 같이 보낸 이유는 무엇이요?”


“허 씨가 하루가 급하다고 재촉을 하고, 장화는 ‘꿈에서 아버지가 자기를 겁탈하였다’고 헛소리를 하니 더 이상 동네에 소문이 돌까 두려워 허 씨의 말대로 하는 수 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 야밤에 보내야 하니 아무래도 남자를 보낼 수밖에 없었고, 장쇠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죠..”



형방의 초검 보고서


고개를 숙이고 잠시 뜸을 들이던 배 좌수는 다시 말을 이어간다.

“사또께서도 형방의 보고를 지 않으셨는지요?”


정 부사는 부임 초 받아 본 형방의 초검 보고서가 생각이 난다.    


형방 최무상의 ‘장화의 자살’에 대한 초검 보고서

「장화가 죽은 다음 날 초검을 실시하였는데 장화의 코에서 풀이 나온 것을 볼 때 물에 뛰어들기 전 숨을 쉰 것이고, 손톱에 연못 진흙이 있으니 살아서 물에 빠진 것이고, 장화의 꽃신이 가지런히 놓여 있으니 자살이 분명하다. 또한 허 씨가 장화의 책상에서 찾은 유서에 ‘아버지랑 새어머니, 키워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는 글이니 유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고, 허 씨의 말에 따르면 장화가 행실이 난잡하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여 약을 먹이던 차에 아비를 모르는 아이를 출산한 이후 충격으로 자살을 하였다고 하니 이는 정신병에 의한 자살임이 분명하므로 사건을 종결함」  


 형방 최무상의 홍련의 자살에 대한 보고서

장화가 자살한 장소에서 홍련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그 증상이 장화에 같고, 배 좌수의 말에 따르면 장화가 죽은 후 홍련이 많이 슬퍼하더니 그 행실이 장화와 같아지다 갑자기 언니를 따라 자살을 한 것이라고 하니,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언니를 잃은 슬픔에 의한 자살이 분명하므로 사건을 종결함」   


형방 최무상의 보고서는 ‘무원록(無冤錄)’따라 볼 때 대략 맞았다. 다만 내용이 틀린 점은 부임하여 보니 백성들이 장화와 홍련이 억울하다는 말들을 한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홍련은 행실이 반듯하였다고 하고, 장화가 죽는 모습을 지켜본 장쇠가 날만 저물면 장화 아씨, 홍련 아씨 하면서 울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다니니 인심이 흉흉해졌다는 것이다.    


정 부사는 나직이 말했다.

 “좌수! 내가 부임하여 장화가 출산을 하였다는 아이는 어찌 됐느냐 형방에게 물었더니 동네 뒷산에 매장하였다 하여 확인하고자 하였으나 좌수와 허 씨가 두 딸이 죽은 것도 서러운 데 장화가 애를 낳았다는 증좌가 밝혀지면 철산에서 낯을 들고 다니지 못한다며 한사코 반대를 했소! 그래서 내가 좌수에게 그대 두 부부는 관아에 와서 두 딸의 행실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키워 철산에 모르는 이가 없는데 이제와 소문은 문제 삼을 바 못되고, 오히려 진상을 명확히 하여 더 이상 해괴한 말들을 없애 백성을 안정시켜야겠다며 당신네들의 동의를 받아 그 자리를 파 보니 사람의 인골이 아닌 짐승의 뼈만 있었던 것을 기억하시오”   



계략에 속았을 뿐입니다.


 “네” 배 좌수에게 떨림을 기대했지만 어느새 좌수는 다시 냉정을 찾은 듯 차분히 대답을 한다. 배 좌수의 시선은 여전히 홍련의 유서에 쏠려있지만 아까의 흔들림은 없다.    


“나리! 저의 죄이니 백 번, 천 번을 죽이신다 하여도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털을 뽑아 아기로 둔갑시킨 자는 허 씨이고 저는 계략에 속았을 뿐입니다.”  


허...


배 좌수가 스스로 자복할 사람이 아님은 그동안 지켜본 바이다. 술시를 알리는 관아의 종이 ‘댕’하며 울린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게 시간만 보내니 오늘도 허사로다.      


“나으리.. 장화가 죽은 이유는 장화에게 물어보시고, 홍련이 죽은 까닭은 홍련에게 물으셔야 진실을 알 게 될 것입니다. 짐승의 털을 뽑아 아이를 만든 이유는 저는 모르니 허 씨에게 물어보시면 될 것입니다. 홍련의 유서 내용은 어찌 되는지요?”     


저놈이... 이제 와서는 죽은 아이들에게 물으란다. 허...


시간이 이렇게 흐르도록 유서를 보여주지 않는 이유가 홍련의 유서에 증좌가 될 내용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정 부사는 노기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그대 말이 옳소! 다만 홍련의 유서는 나중에 봐도 문제 될 것이 없고 좌수 말대로 허 씨에게 물어볼 말이 있으니 좌수는 나가 보시고 형방에게 허 씨를 들라 이르시오.”


“네 나으리..” 좌수가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가는데 저녁 무렵 관아 대문을 열고 들어오던 당당함이 다시 보인다. 신을 신는 배 좌수가 일부러 휘청하고 형방이 소란을 떨며 좌수를 부축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살의 이유는


장화와 홍련에 대한 형방의 보고서는 평안 감사도 칭찬을 할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그러나 「자살의 이유」가 틀렸다. 자살의 이유가...


초검 보고서에는 장화와 홍련의 행실과 정신병이라 했으나 여러 증언과 증좌와 맞지 않았고,

얼마 전 형방의 재검 보고서에는 계모 허 씨의 재산을 노린 학대에 의한 자살로 쓰였으나 재검 보고서도 여전히 의문이 있었다.     


첫째. 사흘이 멀다 하고 왜 배 좌수는 야심한 시각에 장화의 별채에 들어가 새벽녘에 나왔는가? 배 좌수는 장화가 허약하고, 잠을 자지 못하며, 꿈이라고 헛소리를 한다고 하여 돌보느라 했다고 하나 주변의 말을 들어보니 배 좌수가 장화의 별채에 들어가던 작년 봄부터 장화가 잠을 자지 못하고 꿈이라고 헛소리를 했다고 한다. 더욱이 배 좌수가 장화의 별채에 들어간 작년부터 장화는 자해를 했다고 하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둘째. 장화가 아이를 출산하였다고 하는데 매일같이 장화의 방에 밤마다 들어가 아이를 살폈던 배 좌수가 장화가 임신했다면 모를 수 없다. 계모 허 씨가 장화가 아비를 모르는 애를 출산했다고 했을 때 당연히 의심했어야 하는데 배 좌수는 허 씨의 말만 믿었다고 하니 믿기지 않는다.  


셋째. 장화가 죽은 후 장화가 자던 별채로 홍련을 굳이 옮긴 이유는 뭘까?  그때부터 홍련도 '꿈'이라고 헛소리를 했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계모 허 씨가 초라한 몰골로 방문을 열고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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