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창 여중생 계부 딸 피해자인 친구의 아버지인데요... 오늘 방문드려도 될까요?” 작은 목소리이다.
“예 가능하시죠 그런데 제가 일이 있어서 4시 넘어서 방문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역시 작은 목소리이다.
(‘오창 여중생 계부 딸 피해자인 친구의 아버지’ 즉 ‘미소의 아빠’라는 말인데 이걸 설명하기 위해 엄청 긴 용어를 말씀하신다. 저 단어가 길 듯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브런치 글의 목표이다.)
오후 4시 넘어서 한 중년의 남성이 음료수와 서류 한 뭉치 들고 들어왔다. 오창 여중생 미소(가명)의 아버지 박순원(가명)이다. 자리에 앉으시라고 한 이후 도대체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하나 머릿속을 오락가락하는 단어들 중 무언가를 찾아냈다.
“아버님 죄송합니다. 청주시민으로서 또한 단체의 장으로서 이런 일이 없어서야 하는데 이 일은 저희 모두의 책임인 것 같습니다.”
“아니 왜 법무사님이.... 죄송하다고...”
인사말에서 시작한 대화는 점차 어려운 대화로 이어졌다.
미소의 아버지는 직업 특유의 대화법을 가지고 있었다. 차분차분 자신의 속생각을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말을 하며, 조근조근 설명을 한다. 그리고 끝에 가서 자신의 말에 동의를 구한다. 아무리 차분한 어조 속이지만 피해자 유족의 당연한 분노감이 튀어나왔다. 분노와 좌절의 공허한 눈빛, 미소 부친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건의 설명을 부탁드리면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툭툭 던진다.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아야 하는 심정이 된다. 더욱이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났기 때문에 박순원 씨의 기억도 정확치 않은 부분도 있고, 딸의 성폭력과 자살을 지켜본 아빠에게 사건의 재구성은 그 자체가 고통이다. 그러나 재구성을 해야 만 한다.
미소 부친 박순원이 파악한 사건 개요 (2021. 8. 17.)
「피해자 아름(가명)이 아빠가 안 계시니 집에서 같이 자자고 미소에게 말을 하여 부득이 미소의 엄마가 승낙을 하였다. 미소는 2021. 1. 16. 아름의 집에 갔는데 갑자기 아름의 계부가 왔다. 그날 계부가 주는 술을 마시고 아름의 방에서 자던 미소는 새벽에 성폭행을 당했다. 그날 이후로도 이 짐승 같은 계부는 아름을 시켜서 미소에게 자기 집에 와서 술을 마시라고 했다.
이후 영장이 3번 반려되더니만 아이들이 자살을 했다. 그동안 아름의 친모가 수사를 방해하면서 계부 편을 들었고, 아름은 계부가 무죄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했다. 아름은 왜 우리 딸(미소)을 데리고 같이 죽었느냐는 깊은 한탄으로 이어졌다.」
연이어 수사기관, 교육청, 피고인 변호인에 대한 여러 감정이 솟구쳤다.
법무사 김석민의 「갑질」에 따른 판단 (2021. 8. 17.)
* 그렇다 해도 사건 진행은 무죄 방향이다.
대부분 이런 일을 직접 당하면 감정이 이성을 앞서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피해자들의 말을 일단 의심해 보는 것이 직업 특성이기도 하다.
통상 「전문가의 합리적 이성」이란 상대방에게는 「갑질」이다.
「미소 부친의 말은 상당 부분 오해와 과장이다. 일단 영장이 3번 반려되었으면 증거가 없다는 것이고, 그동안 기자와 몇몇 사람들이 말했듯 아름이 말을 바꾸어 전체적으로 엉망이 된 것으로 보였다. 다만 성폭행은 진실로 보인다. 그렇다 해도 사건 진행은 무죄 방향이다.」
*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
일단 들은 바에 따라 얼개를 잡으면 질문을 한다. 이제부터 직업상 나오는 특유의 ‘갑질’은 ‘고문’으로 형태를 바꾼다.
“아버님! 그런데 미소가 아름의 방에서 성폭행당했다고 하셨죠. 그러면 그 방안에 아름이 있었나요?”
“예! 있었데요!”
박순원 씨는 그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대답을 한다.
“그러면 아름의 유서에 의붓아빠는 무죄라고 쓰여 있었다고 하셨죠?”
“예! 아니 그럴 수가 있나요?”
역시 박순원 씨는 심각성을 모른다.
* 아름도 무죄, 미소도 무죄의 가능성이 있다.
“아버님 말씀의 앞 뒤를 맞추어보면 ‘미소의 강간 현장에 있었던 아름이는 아빠는 무죄라고 했다.’는 한 문장이 되네요. 그러면 아름도 무죄, 미소도 무죄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순원 씨의 눈은 동그래지면서 아니 도대체 이런 무식한 놈이 법무사라고 앉아서 일을 하느냐는 눈빛이었다. 분명 그랬다.
* 법원에 가서 증거가 없으면 안 돼요.
“아니... 성폭행당했다는 문자 메시지도 있고요... 여러 증인도 증거도 있는데...”
“아버님!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도 법원에 가서 증거가 없으면 안 돼요. 일단 아버님이 말씀하신 증인들은 전문(傳聞, 전해서 들음)이거나, 강간의 구체성에 대해 말한 사람은 없어 보이고, 말씀하신 증거들도 정황은 설명되는 데 거기서 유죄로 더 나가지 못하는 것 같은데요. 죄송한 마음이지만 현실은 그래요.”
* 미소의 강간이라도 인정됐으면 좋겠다.
“아니... 미소가 해바라기센터에서 피해자 진술을 엄청 잘했데요..”
“아버님, 그 진술한 거 녹취록 가지고 계셔요. 한 번 보죠?”
“아니.. 그건 못 준데요.”
“저도 아름의 강간에 대해서는 모르겠지만 미소의 강간이라도 인정됐으면 좋겠는데요. 현재로서는 아름이 미소의 핵심 증인이네요. 아름이 썼다는 유서 내용을 보면 그렇게 희망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네..”
인정할 수 없지만 싸우고 싶지 않으니 별 수 없다는 답변이다.
* 엉뚱한 사람 고소했다고 할 가능성이 제일 커요.
“제가 볼 때는 아이들이 평소 본 음란한 동영상 본 기억에 따라 술 마시고 엉뚱한 사람 고소했다고 할 가능성이 제일 커요! 그러니 준비를 잘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네”라는 답변도 없다.
박순원 씨는 앞에 저 인간(김석민 법무사)을 이해시키는 것은 포기하자는 얼굴이었다.
* 그럼 증인도 증거도 없어서겠죠.
이후 박순원 씨는 국가에 대한 여러 불만을 토로한다. 글쎄 이게 국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결이 될 문제는 같지는 않은데... 역시 갑질의 본성은 어쩔 수 없었다.
“영장이 3번 반려되었다고 제가 들었는데 맞아요?”
“네...”
“그럼 증인도 증거도 없어서겠죠.. 최근 아동 성폭력에 대해 국가가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데 수사를 그냥 대충 했을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그렇게 신경을 썼는데도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구속을 못했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도 시청도 죽자, 살자 했는데 안 됐을 거예요.. 이렇게 아이들이 죽으면 유족들이 화가 나시는 것은 당연한데 솔직히 국가 기관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예요. 그 점도 쉽지 않습니다.”
아무 대답도 없다.
지금 당장 증거를 찾으셔야 돼요!
어느새 2시간이 지났다. 날이 저물어 가니 박순원 씨는 일어나기 전 말을 한다.
“탄원서인데요. 많이 받아서 법원에 제출하려고 하는데요.”
“아버님! 죄송한데 탄원서를 천만 장을 받아도 무죄가 유죄가 되지는 못하고요. 탄원서는 양형사유에 불과합니다. 지금 이 사건은 무죄 가능성이 높은데 양형은 따질 필요도 없고요. 아버님은 지금 당장 증거를 찾으셔야 돼요!”
역시 대답이 없다.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증거를 찾으라는 것이냐는 깊은 항의와 반발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말은 부드럽다. 타고난 성품과 오래된 학습인 것으로 보였다.
슬그머니 일어나는 박순원 씨를 보면서 주차는 어디에 했느냐 물어보는데, 몰골이 길 가다가 쓰러질까 걱정이 됐다.
같이 나갔다. 박순원 씨의 시선은 앞을 보고 걷고 있지만 정신은 나간 듯하다. 불러도 듣지 못하고 그냥 무작정 길을 간다. 제정신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지..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앞으로 연락은 전혀 없을 줄 알았다.
피해자 정보의 부재와 중요성
▲ ‘장화와 홍련’에서 정 부사가 한양에서 들은 철산의 장화와 홍련에 대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잘못된 정보에 근거를 두었다. ① 계모 허 씨의 용모가 추하다 했으나 백성들이 비난하고자 하는 악인(惡人)에 대한 표현과 소문이었고, ② 장쇠가 배 좌수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나 ‘장쇠’라는 이름에서 알 듯 누가 보아도 양반네 장남은 아니었다. ③ 장화와 홍련에 대한 행실에 대한 말은 대부분 배 좌수와 계모 허 씨의 말을 빌은 것인데 대부분 잘못된 정보였다.
「정확한 정보」는 사건의 이해는 물론 재판의 첫걸음이다. ‘미소와 아름’ 사건에서도 역시 초기의 잘못된 정보에 기초한 여러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