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정말 있어 그를 만나게 된다면, 나를 성가대에 들어가도록 이끌어줘서, 그 시간들로 나를 채워줘서 너무나도 감사한다고 말할 거다.
2012년, 나는 가톨릭 대학인 서강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이것도 운명이니, 성당을 제대로 다녀봐야 되겠다 싶었다. 노래를 좋아하니 학교 성당 동아리 중 성가대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세례를 받지도 않았던 나는 1년 안에 세례를 받는 조건으로 성가대원이 될 수 있었다.
학교 성가대는 일요일인 주일에 미사를 위해 학교에 나와야 했다. 또, 매주 수요일 저녁 2시간씩 연습을 해야 했다. 토요일에는 학교 성당 혼인미사에서 축가를 불러야 했다.
요즘 ‘살코기 세대’라는 말이 있다. MZ세대들이 만남에서 실익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버리고, 중요한 것들만 취한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다. 2012년 당시에도, 동아리 하나를 들어도 취업에 도움이 되는 경영, 마케팅 동아리를 들고, 아무리 1학년이라도 학점관리를 잘해두어야 한다는 ‘살코기 정신’이 주류를 이루었다.
나와 성가대 동기들은 이런 ‘살코기 정신’에 기반해, ‘종교 동아리에 일주일의 3일을 투자해서 내게 무슨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을 품곤 했다. ‘성가대는 무슨 공부나 열심히 할 걸’하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우리는 ‘살코기를 취하지 못한 아쉬움’을 공공연한 화제로 삼았다. 하지만 마치 우리가 없으면 성가대가 없어질 것처럼, 우리는 의리 하나로 성가대를 지켰다.
개강파티, 부활절, 크리스마스와 같이 특별한 날이면 우리는 ‘레이더스’라는 술집을 장악했다. 다른 학생들에겐 학교 근처에 있는, 레드락이 참 맛있는 맥주집에 불과하지만, 성가대와 오래도록 연이 깊은 곳이었다. 성당을 다니는 사장님께서 운영하셔서, 성가대 행사가 있는 날이면 휴일에도 열어주시던 가족 같은 맥주집이다.
성가대 사람들만이 가득 찬 레이더스에서 레드락에 취해가며 깔깔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한 선배가 어김없이 기타와 성가집을 꺼내 들어 성가를 선창 하곤 했다.
“세상아 들어라 너희에게~ 진리를 선포하노라~”
그러면 우리는 암구호라도 부르는 것처럼 다 같이 비종교인들은 모를 노래를 이어서 불러댔다.
“가자~ 갈릴레아로~”
우리는 그렇게 밤이 새도록 우리만 아는 노래를 불렀다. 레이더스 사장님은 미소를 띠고 노래를 부르는지 악을 쓰는지 모를 우리를 밤새도록 지켜보곤 하셨다.
학교를 졸업하고 성당에 발길을 끊은 후로는,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 가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이 보통이 되었다. 대중가요도 아닌, 내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가사의 성가를 부르느라 나의 좋은 날들을 ‘소진’했다는 사실을 종종 후회하기도 하면서, 나는 서서히 성가대에서 멀어져 갔다.
그런 나도 옛 시절이 그리워지면, 어쩔 수 없이 ‘성가대였던 나’를 꺼내는 수밖에 없다. 그게 내 어린 날의 가장 큰 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전엔 좀처럼 부끄럽게 느껴져서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녹음본들을 추억팔이하며 듣는 내가 되었다. 때론 노래를 듣다 이유 모를 눈물을 펑펑 쏟아내기도 하면서.
어쩌면 사실 나는, ‘살코기 정신’을 가진 우리 성가대 동기들은, ‘제대로 살코기만 취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노래 하나에 뜨거웠던 젊음, 열정, 의리, 웃음과 레이더스의 레드락 향기까지 모두 담아 10년 후의 나를 이토록 울리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