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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파란'을 아시나요?

by 고정문


나는 금사빠다. 금방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또, 금방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이다. 동방신기가 세상을 평정할 시절에도, 사춘기를 겪을 때에도, 나는 어떤 연예인에게도 헤어 나오지 못한 일은 없었다. 늘 금방 '덕통 사고'를 당해, 심장을 부여잡고 며칠(대략 이틀 정도)을 그 연예인의 뒷조사를 시작하지만, 또 금방 애정이 식곤 한다. 그렇게 '팬질'에서조차 제대로 푹 빠지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만 좋아하는 나다.


그런가 하면, 또 청소년기의 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연예인을 좋아하지 못하는 저주에 걸렸었다.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때문일까. 당시 동방신기 아니면 슈퍼주니어를 좋아하는 것이 마땅했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저주에 걸린 몸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열심히 자기 오빠들을 나에게 세뇌시켜 대도, 나는 뜬금없이 아카펠라 그룹을 표방하는 '파란'이라는 그룹에 빠졌다. '첫사랑'이라는 노래의 애틋한 감성이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사춘기 소녀들 무리가 그렇듯, 연예인을 좋아하는 건 꼭 참여해야 하는 일종의 문화였기에, 나도 이번엔 이들을 '내 가수'로 정하고 팬으로 활동해 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금사빠(금방 사랑에서 빠져나온 사람)인 내가 의리를 가진 팬으로서 했던 주된 일은, 노래를 계속 계속 듣는 것뿐이었다. 친구들은 돈을 모아 콘서트를 가고, 밤을 새워 음악방송 녹화에도 참여하며 열심이었지만, 나는 그 정도의 열정은 아니었다. 앨범도 여유가 되는 경우에나 사고, 음악방송이나 예능의 본방사수도 일정이 맞는 경우에만 했다. 콘서트는... 슬프게도 '파란'에겐 있지 않은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정말이지 딱, 친구들 앞에서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만 좋아했다. 딱 팬덤 친구들과 어울린 3년 간, 너무 많은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나오는 앨범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음에 만족하면서. 그래서일지, 나는 '응답하라 1997'의 감성처럼, 지난날 전성기의 오빠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훔치거나, 그때 그 시절 내 가수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떠올리지는 못한다.


그래도 그렇게 한 그룹을 오래도록 좋아했던 기억이 어느덧 내 추억으로 자리 잡아있다. 내가 그렇게라도 오래 좋아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최장기간 팬으로 머물렀던 '내 가수'.


4년 전, 슈가맨에 파란이 나왔어도, 사람들이 한두 가지 히트곡만 잔잔히 기억하는 정도의 가수 '파란'. 더구나 지금 방송활동을 하지 않는 이들이기에, 일부러 내가 찾아 듣지 않는 한,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의 노래처럼 그때 노래가 들려올 일도 없다. 그래서 내가 일부러 파란 앨범의 수록곡을 찾아 듣는 날이면, 이렇게 아무도 모를 노래를 내가 알고 있다는 자부심에 머쓱해진다.


비록 엄청난 인기를 누리지 못해 사라진 가수의 열렬하지 않던 팬이었을지라도, 누군가 "너는 학창 시절에 어떤 가수 좋아했어?"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파란!'하고 소리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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