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정문 Dec 02. 2023

회피형 인간의 번아웃 사이클

1. 잠을 자기 위해 침대 위에 누웠다. 하지만 가슴이 두근거린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들이 내 몸의 긴장을 놓지 말라고 말한다. 자다가 일어나는 일이 반복된다.     


2.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쌓인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저건 틀린 거 아닌가. 나만 책임감에 바둥거리는 것만 같다. 잘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자꾸 마음을 괴롭힌다.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지 불안감에 휩싸인다.     


3. 나의 상태에 대한 문제를 반추하기 시작한다. 환경과 주변에 대한 탓을 돌리기 시작한다. 아- 이게 이렇게만 되었어도. 저 사람이 이렇게만 도와줬어도. 아- 또 왜 하필 이번 달에 일이 몰아치는 거야. 불만이 쌓이기 시작한다.     


4. 회피할 생각을 한다. 그 사람과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게 낫겠어. 오늘 휴가를 써야겠어. 당분간은 혼자 있는 게 좋겠어. 내가 나서야 할 일이 아니면 그냥 모른 척 하자. 그렇게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     


5. 회피를 실천한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요즘 좀 바빠서... 최대한 중요하지 않은 순으로 나의 관계와 업무를 쳐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래도 쳐내지지 않는 일들에 대한 책임감에 여전히 가슴이 쿵쿵. 두근거린다. 문제가 뭔지 모르겠다.     


6. 완전한 도피를 꿈꾼다. 두근거리지 않는 불안이 없는 잠을 자고 싶다. 나를 제발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사실 모두가 내버려 두고 있는데도.) 내게서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도망치고 싶다. 그러면 모든 것이 편해질 것 같다.     


7. 완전히 도망친다. 단톡방을 나가고, 퇴사하고, 관계없는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고,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껏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왜인지 눈물이 흐른다. 여전한 이 답답함은 뭐지?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려나.


8. 내가 구속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서 기분이 편안해지는 시기가 온다. 역시! 나는 원래 이렇게 편안한 사람인데 말이야! 만족감을 느끼면서도, 한 편으로 허전함이 느껴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 지금까지 나의 고생이 무의미했었나 하는 생각에 무언갈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낀다.


9. 크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일을 다시 벌이기 시작한다. 적당히 나의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일. 사람들을 적당한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일을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다. ‘이 정도야 할 수 있지 않을까’하며 하나씩 시작해 본다. 무언갈 시작하는 일에 기분이 설렌다.

 

10. 새로이 시작한 일이 점점 하루를 채워간다. 처음의 설렘이 사라지면서 지루함과 부담감이 생긴다. 지난 일에 대한 트라우마로 작은 일에도 공포감이 올라온다.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11. 지난 경험이 있으니, 도망가선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도망가는 일은 오히려 더 쉬워졌다. 온몸이 도망치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닌 것 같은 건 아닌 거야. 스스로를 달래며 다시 회피한다.


12. 뭔갈 시작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에너지를 쏟아붓는 일의 양이 줄어들고, 사람들을 만나는 물리적 시간이 적어지면서, 작은 스트레스에도 예민하고 민감해진다. 그럴수록 스트레스를 주는 일을 피하기 위해 더욱 신경을 쓴다.


13. 외부 스트레스가 아주 적은 이 상황에서도, 인생이 만족스럽지가 않다. 내적 만족감이 전혀 없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괴로움으로 과거에서 원인을 찾느라 하루하루를 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게으른 야심가에서 벗어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